[Opinion] 당신의 모든시간, 모든 순간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4.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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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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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휴식이었다. 늦은 밤 혹은 새벽까지 바쁘게 보내다 얻게 된 휴일. 그날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를 읽었다. 어쩌다 보니 쇼파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봤지만 정말 이불 속에서 읽었어도 좋았을 책이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얻을 게 적은 책은 아니다. 하루 일과별 상황과 사계절마다 한 겹씩 풀어놓은 클래식 곡이 흥미로웠다.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양치를 하는 순간, 밥을 먹고 외출했다가 잠에 드는 모든 순간에도 추천해 주실 클래식 곡이 있다니. 하루를 여러 순간으로 쪼개고, 그 장면마다 들으면 좋을 곡을 추천하려고 고심했을 작가의 모습이 떠올라서 유쾌했다.


책에서 추천하는 곡은 QR코드를 넣어두어서 짧게나마 그 곡을 직접 들으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게 큰 장점이었다. 의도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곡을 찬찬히 듣다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거나 인상 깊었던 곡과 작곡가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이 정도면 취향을 발견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겠다.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은 건 관악기가 돋보이는 곡들이었다. 아무래도 관악기를 접해보았다고 귀가 익숙한 소리에 끌린 모양이다. 아침 출근길과 함께하면 좋을 곡으로 선정된 구스타브 홀스트의 <군악대를 위한 모음곡 2번> 중 다개슨. 윈드 앙상블을 위한 곡은 클래식 곡들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플룻이나 클라리넷, 트럼펫 등은 현악기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에서도 종종 참여하지만 색소폰 같은 악기는 함께 편성되지 않는 게 아쉽기도 했는데, 홀스트도 그런 마음으로 이 곡을 썼으리라 알게 되니 반가웠다.

 

책에서 소개해 주었듯이 홀스트는 말하지 않으면 서운할 <행성> 중 <목성>이란 유명한 곡을 남겼다. 웅장하고 멋진, 미지의 세계지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묻어나는 곡이다. 이 멋진 곡이 나올 수 있었던 게 트롬본 연주자로서 경험 덕분이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 왜 목관악기의 소리는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비슷할까? 바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한마디 건네는 호흡과 목관악기를 연주하는 호흡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밀도 높고 따뜻한 바람을 악기에 통과시켜야지만 좋은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바람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좋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p.102

 

 

아마 모든 관악기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저자가 교수님으로부터 "보일러 소리를 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습했다는 문구를 보고, 앞으로 내가 연습할 때도 그 말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늘 돌고 돌아도 첫 시작은 늘 롱톤이었다. 길고 따뜻한 숨, 음색처럼 그 숨이 내는 소리 몇 초만으로도 이미 끝났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 이후에 다양한 스킬이 빛을 발할 수 있다. 현악기는 첼로를 짧게 체험하고 지금은 기타를 배우는 중이지만 관악기와는 매력이 확연히 다르다. 우스갯소리지만 손이 아린 만큼 현악기에서도 아리고 마음 저리는 소리가 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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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될

시바 여왕의 도착

 

 

가벼운 언어유희를 담은 설명이 클래식 곡을 친근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외출할 때 추천해 준 클래식 곡 에마뉘엘 샤브리에 <에스파냐,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이 곡의 제목이 될 뻔했던 Jota(호타)를 J를 ㅈ로 발음했을 때 '조타'라고 하면서 '외출하기 조타!'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땐 멋지게 이 곡은 원래 호타라고 지어질 뻔했다고 알려준다면 감쪽같겠지. 우아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추천받은 곳이 오라토리오 <솔로몬> 중 <시바 여왕의 도착>인 건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들으면 교양이 철철 흘러넘치는 여왕의 걸음걸이 같은 곡에서 이름에 꽂히는 건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 화가 날 때 이 노래가 차오르는 분노, 비속어와 욕이 난무하는 두뇌를 잠시 정화시켜줄 수 있는 정비 시간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삐- 화면 조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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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에서 요즘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채널은 플레이리스트 채널이다. 혼자서 찾아서도 듣지만 어딜 가나 음악이 빠진 곳은 없다.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특히 그곳에서 틀어놓은 음악 하나로 매력이 더 돋보이기도 한다. 책에서 소개된 클래식 곡은 바로크 시대에 식사시간에 연주되었던 <식탁 음악> 제3집 중 서곡. 작곡가인 텔레만은 수많은 귀족에게 이 곡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던데, 세상엔 귀족은 많고 그 많은 귀족들은 열일 제쳐두고라도 식사는 꼭 할 테니 이쯤 되면 '식탁 연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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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과 커피하우스를 제패(?)한 텔레만과 바흐

 

 

이번엔 바흐가 만든 <커피 칸타타>. 커피하우스의 요청을 받고 만든 곡답게 제목에도 커피가 들어가 있다. 원제는 가만히 입 다물고 말하지 말라는 뜻이라는데 조용히 하라고 만든 경고곡은 또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카페에는 온갖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데 잠시 이걸 들을 땐 잠잠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도 담겼으려나. 커피 칸타타는 제목에 비해서 내용은 가볍다. 커피에 푹 빠진 딸과 그 딸이 커피를 끊도록 돈을 압수(아빠 찬스 회수)하고 좋은 남자 소켜시켜주겠다고 채찍과 당근을 던지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누가 봐도 대립구도였던 이 부녀관계는 큰 갈등 없이 이상하게도 커피는 끊기는커녕 커피를 예찬하면서 끝난다.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서 그 남자가 커피를 마시면 나도 마실 수 있다고 얘기한 게 들킨 거 치고는 훈훈한 결말인데, 아버지의 뉘앙스가 그래 그 커피 한번 대~단하다는 비아냥 조인지, 커피를 맛보고 나니 본인도 끊을 수 없어서인지는 상상만 해보기로. 아버지 놀라실 것 없어요, 전 세계에 따님 같은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샷도 추가하고, 여러 잔 마시고요. 혈관에 카페인 수치가 높은 분이 한둘이 아녀요.

 

영화나 스포츠에서 먼저 만나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곡들도 많았다. 음악이란 게 참 신기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기억에 남으면, 그 순간도 생생히 기억이 나니 말이다. 셰에라자드 속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는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팅 프로그램에 썼던 곡이었다. 붉은 의상을 입고 링크를 가로지르던 김연아 선수도, 그 모습을 보면서 응원했던 나의 지난날도. 처연미(美)라고 불러도 좋을 바이올린 소리는 들을 때마다 즐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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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베르거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은 영화 <트와일라잇>과 동명의 책에서 이미 만났다. 매일 새로운 달이 뜨지만 그중 어디에라도 해당될 것 같은 잔잔하고 챠르르한 아름다움이 있는 곡이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드뷔시라면 특히 저자의 생각처럼 설명을 줄이는 게 낫다. 제목은 음악을 만든 드뷔시가 지은 것이지만 제목과 곡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누군가에겐 이건 달빛이지만 달빛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인생곡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번 듣고 스쳐 지나가는 곡일 수도 있다. 모두에게 똑같은 느낌을 주는 곡은 만들 수도 없거니와 목적이 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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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은 좋아하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들었다. 좋은 음악과 좋은 이야기, 영상이 만났을 때 그 효과가 오래간다. 불면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만든 곡이 시간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표현하는 곡으로 쓰이기도 하고. 아직 아껴둔 영화 양들의 침묵에도 나온다고 하는데 어떤 장면에 들어갔을지 궁금하다. 클래식 곡을 좀 더 친근하게 접하고 싶다면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서 찾아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곡 중에서도 이 곡들은 접해보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내적 친밀감이 무척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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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곡을 소개해 주는 책이지만 그 곡을 만든 사람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다. 곡을 알게 될수록 그 사람이 궁금하고, 그 사람을 알게 될수록 그 사람의 곡이 궁금해진다.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 <꿈>도 들어봤지만 책에서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었다. 클라라에겐 아버지, 슈만에겐 스승이자 장인어른인 비크가 슈만에게 클라라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고소를 했다는 점이다.

 

둘이 좋아야 하는 게 결혼이라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녀가 늘 아깝고, 상대는 늘 모자라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9살 차이가 나고, 딸이 미성년자인데 결혼하겠다고 하고, 제자이기 때문에 알만큼 아는 자칭 예비 사위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그나마 둘이 서로 사이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비크는 피가 거꾸로 솟아서 속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이런 걸 떠올리면 슈만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은 원체 유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이라, 전혀 다른 세계 사람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잊지 말자.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쓴 라흐마니노프.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곡이 좋아진 건, 책에서 소개해 주었듯 라흐마니노프가 다른 작품을 집필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그를 도와준 의사 니콜라이 달을 위해 헌정하며 쓴 곡이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곡임에도 끝까지 듣게 되는 건 무겁게 침잠하며 시작하는 곡의 마지막이 빛나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들었던 시간을 극복하는 마지막을 함께 하려고 말이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종종 했지만 이 곡은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다. 곡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한국인이 이 곡을 특히 좋아한다면 우리에게도 그만큼 힘겨운 일이 있고 그 힘겨운 일을 이 곡처럼 헤쳐나갈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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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클래식이란 코너로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그에 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지루하기보다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음악 앞에 좋고 나쁨이 붙을 수 있으려면 대상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고로 '내게' 혹은 '내가 듣기에'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은 존재할 수도 있다. 수많은 음악 장르가 있으니 사실 좋고 나쁨 사이에는 '모르는 음악', 낯선 음악의 지분이 더 많을 수도 있고.


내게 좋은 음악은 가사가 와닿는 음악이다. 어떤 가사가 마음을 울리는 건 무방비한 일이다. 피할 수도 없이 스며들어버린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대체로 신나는 곡보단 차분한 곡이 좋다. 복잡한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때문이다. 가사를 중요시하는 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기타 학원을 처음 갔을 때 음악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좋아하는 곡들을 적는 설문지가 있었다.

 

음악이면 당연히 귀에 감기는 게 중요하니 멜로디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문지를 모두 작성하고 나서 내가 가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사의 내용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내용이라면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논란조차도 명백한 범위란 건 없다. 불쾌감과 혐오, 상처는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 깊이나 범위는 산발되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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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는 콘서트 가이드인 저자의 시작과 마지막 멘트가 정해져 있다. 시작은 음악이 귀로 마시는 술이자, 사랑을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음식이라는 것, 마지막은 음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위로와 희망이라는 것이다. 관객으로서 일상이 바쁠수록, 삶이 건조해질수록, 마음을 다시 촉촉하게 살아나게 하는 게 음악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분명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는 바에야 음악이 우리에게 먹고살 수 있는 돈이나 밥, 집을 주진 않을 것이다. 때로는 그 음악을 듣기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할 때도 있다. 얼핏 보면 전혀 이득이라곤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음악을 향유하는 건 돈과 시간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음악 장르마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향유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클래식은 유명하면서도 여전히 알쏭달쏭한 제목이,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이, 과거에 만든 음악이라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한 권으로 클래식이 우리의 삶 안에 확실하게 자리 잡지 않아도 괜찮다. 여기서 소개된 곡을 들어보면서 어느 날 클래식을 들어볼까 싶을 때 좀 덜 낯설다면, 혹은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곡에서 '아 그때 들었던 곡이다!' 하면서 반가워한다면 충분하다. 제목을 잘 모르더라도, 여기에서 소개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모든 시간, 모든 순간 중 언제 들어도 클래식이 이상하지 않고 한결 자연스러워졌다면 이 콘서트는 성공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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