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콘의 표상 -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전시]

스스로 아이콘이 되어 아이콘을 만들어내다
글 입력 2021.04.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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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_게티이미지코리아.jpg

 

 

앤디 워홀 Andy Warhol.


작가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이름만 말해도 대표작을 여러 개 떠올릴 수 있으며 그의 예술에 대해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다. ‘팝아트의 제왕(King of Pop)’ ‘대중 소비 미학의 아이콘’ ‘전방위적 예술가’ ‘시각 주의 예술 운동의 선구자’ 등 그를 표현하는 다양한 수식어들에서 앤디 워홀의 명성을 알 수 있다.


전시는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6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이탈리아의 주요 미술관 투어를 성황리에 마친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전시로, 앤디 워홀을 대표하는 마릴린 먼로, 꽃 등 중요 작품은 물론이고 쉽게 볼 수 없었던 드로잉 작품을 포함하여 153점을 공개한다. 앤디 워홀이 생전에 제작한 작품이 90% 이상이라고 하니 기대할만하다.


전시 구성은 마릴린 먼로, 리즈 테일러 등 유명인사들의 초상과 함께 앤디 워홀의 어머니였던 줄리아 워홀라가 있는 [SECTION 1. FAME: MY LOVE, MY IDOL] / 캠벨 수프와 같은 일상의 소재를 선택해 본격적으로 상업 회화를 만들었던 [SECTION 2. ICON: NOW? NOW!] / 유명인사뿐 아니라 무명 인물들의 초상이 있는 [SECTION 3. UNKNOWN&ORDINARY PEOPLE: 타인의 초상] / 인공물에서 자연물로, 혹은 정치인까지 다양한 소재로 작업했던 작품이 있는 [SECTION 4. PASSION: WHERE WE LIVE IN] /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과 열정이 있음을 보여주는 [SECTION 5. MUSIC: PORTRAITS OF ROCK] / 앤디 워홀의 성공 스토리 이전 내면적인 이야기를 담은 [SECTION 6. GAZE: DRAWING&INTERVIEW]로 되어 있다.

 

※ 1·2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IDOL


 

 

SECTION 1. FAME: MY LOVE, MY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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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Marilyn Monroe 1967 © 2021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한 유명인사들의 초상이 있는 공간이다. 리즈 테일러, 발렌티노, 모하메드 알리, 만 레이 그리고 자신의 얼굴까지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중 앤디 워홀의 대표작으로 20세기 모나리자라는 별칭이 붙은 마릴린 먼로의 초상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이하게도 마릴린 먼로의 초상 네임텍을 보면 <이것은 내 작품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어떤 미술사적 개념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그러나 이에 얽혀 있는 에피소드는 개념 미술과 상반되며, 오히려 지극히 상업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시작은 벨기에의 ‘선데이 B. 모닝’과 작품을 함께 제작하면서였는데, 어느 시점에 그들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앤디 워홀이 더 이상 작품에 참여하지 않는데도 선데이 B. 모닝은 벨기에로 넘어가 계속해서 작품을 생산했던 것이다. 앤디 워홀은 그들의 생산을 중단하려 했지만 이미 작품의 재료들을 그들에게 넘겼기에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에 앤디 워홀은 선데이 B. 모닝에서 제작한 자신의 작품을 마주할 때면 불만에 대한 표시로 “이것은 내 작품이 아니다”라는 서명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앤디 워홀이 직접 제작한 작품만큼이나 수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진품 그러니까 이 경우 원본(?)에 해당하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는데, 당시의 대중들은 개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면서 비교적 저렴했던 선데이 B. 모닝을 사들였다.


애초에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가 제작한 실크 스크린과 똑같은 물감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했기에 원본과 복제라는 기준 자체가 성립될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원본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스스로 원본만이 가지는 아우라를 제거해버렸다면 복제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질문의 늪에 허덕이게 되었다.


혹시라도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한 관람자가 있다면 반가울 것이며, 이후의 전시를 생각해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의 공간에서 스타의 아이콘을 가져와 제작했던 앤디 워홀의 작품은 대량생산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작품의 상품화를 이루었다는 부분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충분히 전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넘나든 앤디 워홀이라는 점을 떠올리자!

 

 

SECTION 2. ICON: NOW? NOW!

 

2021 Andy Warhol Foundation .png

Andy Warhol Campbell's Soup Cans1962 © 2021 Andy Warhol Foundation / ARS, NY / TM

 

 

전시의 티켓에 그려진 <캠벨 수프>가 있는 공간이다. 사실 앤디 워홀은 앙리 마티스와 같은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에 순수회화에 열망이 있었다. 이에 이제껏 회화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재를 찾게 된다.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어릴 적 자신의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까이했던 ‘카툰’이었다.


그러나 후에 앤디 워홀의 라이벌로 평가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먼저 카툰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미술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자신이 뒤늦게 도전을 해봤자 그의 아류로 알려질 것을 예상한 앤디 워홀은 비상한 머리로 다른 소재를 찾았다. 그것이 바로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게 된 ‘상품’이다.


앤디 워홀은 가장 대중적인 소재였던 코카콜라, 캠벨 수프와 같은 상품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당시 캠벨 수프의 시장 점유율이 70~80%였다고 하니 우리로 예를 들자면 신라면과 같은 이미지였을 것이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나 마크 로스코의 숭고미 등의 추상미술이 유행하던 미술관에 이러한 일상적인 소재가 들어오면서 관람자는 작품을 알아보고 감상하고 직접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즉, 미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Making money is art and working is art and good business is the best art of all.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그럼에도 혹자는 상업 회화라는 점에서 비판을 멈추지 않는데, 이는 앤디 워홀이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라고 말한 것과 관련되어있다. 그의 대표작인 캠벨 수프를 예로 들자면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프 캔을 작품화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만들어버렸다. 더욱이 같은 형태의 캠벨 수프의 맛과 라벨을 다 다르게 만드는 동시에 한정 생산하여 컬렉션으로 수집하도록 만들었다.


익숙한 사물들을 소재로 삼아 제작했던 그의 일면에서 주제의 독창성보다도 대량생산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 때문에 예술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기보다 소비에 초점을 맞춘 자본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은 이후 벽에 그림을 그려 모두가 관람할 수 있게 만든 키스 해링과 현대 미술가들의 공공작품 활동을 통해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앤디 워홀은 소재의 측면에서 이미 유명해진 그들의 인기를 빌려 유명세를 얻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미 디자이너로서 미술계에서 유명했지만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서 보았을 때) 명성을 얻고자 했던 앤디 워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선망과 욕망을 볼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소망이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대중들 역시 그러하리라 예상했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보면 과연 그의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유명해지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초반에 자신을 알리고자 그러한 아이돌로서의 이미지를 가져왔던 것이다.

 

 


ICON


 

 

SECTION 3. UNKNOWN&ORDINARY PEOPLE: 타인의 초상


아이콘을 가져왔던 앤디 워홀이 명성을 얻게 되면서 스스로 아이콘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앤디 워홀의 세계로 들어가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여기에는 유명인사뿐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무명 인물들도 있었다. 앤디 워홀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은 곧 아이콘으로서 지위를 얻는 것이었고, 대중에게 우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진기.jpg

 

 

그래서 앤디 워홀은 그들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촬영해 작업했다. 특히 앤디 워홀이 즐겨 사용하던 카메라는 배치된 카메라 중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폴라로이드의 즉시성이 실제 보고 느끼는 대상을 그대로 담아낸다고 여겼기에 자신의 팩토리에 온 이들을 자주 찍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만약 앤디 워홀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SNS 인플루언서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jpg

 

 

아이콘 생산자로서 앤디 워홀은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고, 눈길을 끄는 소재를 선택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중 <레이디스 & 젠틀맨>은 앤디 워홀과 그의 작업공간이었던 팩토리가 얼마나 개방적이었으며 창의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이 대량 생산되는 체제에 있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이 있으나,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레이디스 & 젠틀맨>에서 이전과 달리 부분적으로 색을 입혀 마치 콜라주를 한 것과 같은 표현법을 볼 수 있다.


이에 모델들의 특징이 더욱 부각 되는데, 이들은 모두 여자처럼 치장한 남성인 드래그 퀸(Drag qeen)이다. 앤디 워홀은 드래그 퀸에 대해 “이상적인 여성성의 살아있는 기록물”이라고 말하며 “남자로서의 특징을 없애고 여자의 특징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에 큰 관심과 존경을 표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화장과 치장을 여성의 특징으로 삼는 것은 논쟁의 소지가 있으나, 해당 작품을 당시의 관점으로 봤을 때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의상도착자들에 대한 인식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이렇듯 소외계층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드래그 퀸을 새로운 아이콘으로 작품에 등장시키는 모습에서 앤디 워홀은 편견 없는 아티스트,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를 결합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콘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실버 팩토리.jpg

 

 

보통 앤디 워홀이라고 하면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된 유명인들의 초상이나 캠벨 수프 작품 등을 중심으로 대량생산에 기초한 원본과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래서인지 처음 전시관에 들어가 작품을 보자마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이와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아이콘’으로서 앤디 워홀을 다루고 있었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유명인사들을 아이돌로서 작품의 소재로 그렸던 워홀은 이내 명성을 얻게 되면서 이미지를 확장하고 아이콘을 생산하게 되었다. 즉, 스스로가 아이콘이 되어 자신의 세계를 아이콘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In the future, Everyone will be famous for fifteen minute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나 틱톡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을 통해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브랜드화하고 있다. 이는 본인 스스로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한편, “미래에는 모두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예견했던 앤디 워홀의 선각자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량생산 시대에 상품을 매체로 설정하여 미술의 상품화를 이루고, 미술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만든 앤디 워홀의 전시는 더현대 서울이라는 상업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백화점의 공간 속에 너무나 완벽하게 자리했다. 첫 오픈으로 그보다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를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참고 자료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홈페이지

김찬용 전시 도슨트의 해설, 전시 설명문

네이버 ‘오디오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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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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