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닥없는 물이 주는 모순의 미학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4.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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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럴 때가 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혼자 멈춘 것만 같을 때, 자신의 한계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용량 초과의 과제를 내어줄 때, 두 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억지로 등 떠밀어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것만 같을 때. 개개인의 상처는 각자의 몫이니 연고 칠하는 것도 스스로 하라는 것인지, 마음 편히 숨 한번 내쉬고 싶은데 그것마저 끝없이 무언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아가미」에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느낌을 주는 세상을 ‘바닥없는 물’이라 칭한다.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22p

 

 

「아가미」는 ‘바닥없는 물’ 같은 세상 속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나약하지만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가지게 된 곤, 자신의 사랑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강하, 하루하루 인공호흡 하듯이 연명하며 살아가는 해류.

 

바닥없는 물에서 별수 없이 헤엄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존재하는 공통점이자, 내가 이 소설을 완독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본 하나의 어떤 형태는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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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장소


 

곤은 한 손가락으로도 셀 수 있는 어린 나이에 생활고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와 함께 물에 잠겼다. 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물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죽음으로 가는 길 앞에서 곤의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인간에게 있을 리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어류의 상징인 ‘아가미’가 피어올랐다.

 

강하는 곤이 가진 아가미가 세상 밖으로 노출된다면 어떤 상황과 직면하게 될지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에, 곤을 숨길 수 있는 한 최대한 숨기고 감추고 지웠다. 현실적으로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사실은 많은 관심을 받게 되지만 때로는 도리어 약점이 되기도 한다.

 

강하의 강압적인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곤의 자의적인 타인으로부터의 경계는 곤의 모든 것을 집이라는 좁은 면적에 제한을 두었다. 그러나 깊은 물속에서만큼은 어떠한 제약 없이 그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 밖이 자신을 감추는 데 급급해 숨통을 죄어오는 곳이라면, 물속은 그런 현실에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삶의 도피처’였다.

 

 


모순된 감정


 

내가 가진 독서 습관이 하나 있다면, 한 권의 책을 며칠간의 간격을 두고 2회독 하는 것이다. 처음 마주하는 책 속의 글자들을 눈에 넣을 때와 익숙한 글자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새길 때, 분명 두 번 다 똑같은 집중력으로 읽었다 생각하지만, 늘 2회독을 하고 나서야 발견하는 사실에 이따금 놀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두 번째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은 ‘강하’라는 인물이었다. 처음 마주한 강하는 그저 ‘날 선 아이’였고, 그 모든 것은 자기방어에서 기인한 말과 행동이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은 자격지심을 조성하기에 충분했고, 동시에 할아버지가 멋대로 데리고 온 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생명체임을 알았을 때, 아마 강하는 한없이 초라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초라함을 인식하게 된다면 그것은 열등감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자기방어가 만든 날 선 말투와 행동이 열등감을 만나 곤에게 상처를 입히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자주 일었다.

 

두 번째로 마주한 강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실현하는 아이’였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극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 간극은 인간의 양가감정을 이해하는 순간 서서히 좁아진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할아버지와 입에 풀칠할 만큼만 사는 강하를 둘러싼 어둠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곤은 작은 빛을 내뿜는 반딧불이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대며 유유히 날아가는, 그러다 정말 내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아름답지만 일순간 사라져버릴까 두려운 존재.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남이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고 싶을 만큼 부럽거나 절실하지 않아도 공연히 질투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여요.”
 

-120p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동시에 사랑하기도 한다. 누구나 강하가 곤에게 느낀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예인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하다못해 무형의 어떤 것이든. 나도 한동안 그랬던 적이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아름다움의 크기가 너무도 커서 사랑이라는 감정이라 여겼지만, 그 뒤에 가려진 민낯은 부러움과 동경심과 질투심이 제한된 높이 없이 쑥쑥 자라나 자리하고 있음을.

 

처음 강하에게서 ‘날 선’느낌을 받은 이유는 나는 어차피 네가 될 수 없으니 너를 궁지에 몰아놓음으로써만 너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또는 너를 없애지 않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비뚤어진 믿음으로 일관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의미를 다시 곱씹어본다면 강하의 비뚤어진 믿음은 사랑을, 질투를, 아름다움을, 열등감을, 동경을 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하는 곤이 가진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에게만 보이기 바랐고, 곤을 동경했기에 질투 어린 심보로 괴롭혔다. 곤을 절실히 사랑했기에 혹시라도 그가 사회가 주는 압박으로 인해 메말라질까 겁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유를 손에 쥐여 주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강하는 곤을 생각했고, 자신의 빛이 어둠에 잠식되지 않게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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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과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194p

 

 

사람의 마음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간사하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요소에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그 요소가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면 제일 어려울지도 모른다. 당장 오늘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한 마음이 하루아침에 사소한 것 때문에,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나쁜 쪽으로 기울기도 하니 말이다.

 

솔직히 사람의 마음은 물 위의 뗏목과 같다는 말을 봤을 때 조금은 안도했다. 그동안 타인을 향해 한없이 간사했던 나의 마음이 마냥 이기적이라는 단어로 치부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말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강하보다 훨씬 묘사가 적었던 해류의 마음에 조금 더 신경 쓰였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강하보다 해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러니 많은 사람이 자신이 상황이나 어떠한 대상에게 가지는 감정을 마냥 추악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에 모든 감정은 양가적으로 작용되고, 사람이라는 생물도 양가적인 것들로 모여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부터가 모순 덩어리인데 별 수 있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양가적인 감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납득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닥없는 물에서 묵묵히 헤엄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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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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