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닥없는 물속을 유영하는 세상의 어떤 '곤'을 위하여 [도서/문학]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글 입력 2021.04.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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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을 짙게 남기며 우리 삶에 은밀히 침투하는 작품이 있다. 꼭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공감해서가 아니라 마치 작품 속 인물과 배경이 이 우주 어딘가 실재할 것만 같이 느껴지는 착각과 향수가 이는 작품. 그런 작품들은 꼭 언젠가 다시 우연히 마주치거나 약속된 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라 기어이 꺼내어 보도록 만든다.


내게 그런 작품 중 하나인 소설이 바로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다. 이 년 전쯤 이 책을 읽고 알 수 없는 습한 우울에 허덕인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다시 생각났다. '곤'이라는 이름과, 녹조로 둘러싸인 어느 여름의 웅덩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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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빛나는 것들은 쉽게 떠나버린다



<아가미>에는 아가미를 가진 인물 '곤'이 등장한다. 곤의 아버지가 어린 곤과 동반자살을 시도하며 그를 안고 호수에 몸을 던지지만 한 노인에 의해 곤만이 살아남는다. 노인은 딸 이녕이 맡기듯 버리고 간 아들 강하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노인과 강하가 우연히 곤의 귀 뒤에 상처처럼 벌어진 아가미를 발견하게 되고 곤란해하다가 강하의 강한 설득으로 곤은 그들의 집에 머물러 살게 된다.


여기서 강하라는 인물의 심리가 모순적이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다가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이해되기도 한다. 강하는 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를 많이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변기통에 곤의 머리를 처박기도 한다. 곤을 '고기새끼', '물고기새끼'라고 부르곤 했으며 횟집을 지날 때면 횟집에 팔아넘길 거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강하는 곤에게 따뜻하게 굴기도 한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준다. 시간이 쌓이며 남기는 흔적을 제거한다.


그러나 결국 곤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강하는 그런 곤이 멀리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도망치듯 마을을 떠난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해류라는 이름의 여성이 곤이 일하는 작은 마을 슈퍼를 찾아와 그 모든 긴 시간 동안의 강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류를 이야기를 들으며 그간의 종적을 한 뼘씩 따라가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강하는 곤을 아주 많이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고. 좋아하니까 괴롭힌 거라는 유치하고도 구시대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때로는 그렇게 모순적인 감정이 뒤 엉기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상기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로 나약하고 흠집 가득한 나를 숨기고, 한 번도 탐낸 적 없었던 것을 가진 존재를 시기하기도 한다.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이녕이 언젠가 강하에게 이렇게 말했듯이. 눈부신 것, 빛나는 것, 귀한 것, 좋은 것은 숨겨놓고 혼자만 아는 거야. 남하고 나누는 게 아니란다. 아마 강하는 곤을 마주치고 나서야 진창에서 피어난 제 삶 가운데 드디어 처음으로 눈부시고, 빛나고, 귀하고, 좋은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론 아무것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라는 사실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괴리감을 견딜 수 없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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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



강하. 강과 하천을 아울러 이르는 말. 해류.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이동하는 바닷물의 흐름. 이녕. 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 그리고 우리들의 곤.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아가미 속 인물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물과 관련되어 있다. 정말 인생은 이름을 따라가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이들의 삶은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강하는 어느 날 제 인생에 뚝 떨어진 물고기를 품어야 했고, 해류는 의도치 않게 물에 빠지게 되고 그 우연으로 강하와 곤의 삶에 휘말리듯 이끌린다. 이녕은 말 그대로 진창 같은 삶을 살다 그 말로 역시 좋지 않게 끝나버리고 만다.

 

 
물이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한다니까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 없는 물이기도 하고.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모순으로 점철된 마음 때문에 어느 한 대상에 목을 매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사건 사고에 휘말려 평생 모를 수도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진창 같은 삶의 구간을 지나며 도망치듯 벗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어쩌면 정말 해류의 말처럼 세상은 바닥없는 물이고, 우리는 세상을 헤엄치는 한 명 한 명의 곤이 아닐까?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라는 뜻을 지닌 곤. 그러나 강하는 한 가지 이유로 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곤이라는 물고기는 '붕'이라는 새로 변신해 남쪽 바다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곤이 한 번 박차고 날아오르면 구만 리를 날아가는 거대한 새 '붕'이 되어 떠날까 봐 강하는 늘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작 강이 아닌 더 넓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 '곤'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본인이면서도 말이다.


언제 어떤 일로 떠날지 모르는 아이였잖아요.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상처 같은 아가미. 누구나 하나쯤 숨기며 살아가고 있을 그 아가미. 곤은 이녕의 예쁘다는 한 마디에 구원을 받은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나를 조악하게 만드는 그 무엇, 그냥 고작 흉측한 퇴화 기관과도 같은 그 무엇에 대한 혐오를 걷어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강하의 한마디에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는다. 존재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사랑. 곤은 강하를 헤엄치며 구원을 느꼈듯이 우리는 세상이라는 물속을 헤엄치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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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에게 물은 죽음과 동시에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도피처이기도 하다. 생과 사의 경계를 헤엄치며 살아온 곤은 해류의 이야기 끝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우리의 곤은 붕이 되었을까?


또 우리는 언제 어떻게 붕이 되어 날아가게 될까?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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