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정 가공할 만한 것은 무엇이었나 -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

글 입력 2021.04.14 20:5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공하다.jpg

 

 

우투리 설화는 1)가공되었을 뿐이다. 진정 2)가공할 만한 것은 극본과 연출이었다.


창작집단 LAS.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예전에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을 보고 팔로우 해뒀던 계정이었다. 그 당시에도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여성 서사로 바꾸어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었다. 이번 '우투리: 가공할 만한'의 연출 역시 <줄리엣과 줄리엣>의 연출가이자 창작집단 LAS의 대표 연출가인 이기쁨 연출이 맡았다. 따라서 홍보 문구가 '우투리 설화'와 '여성 영웅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도 모를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나는 이 극의 참신한 극본과, 그것을 다양한 무대 장치로 표현해낸 연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연극이 끝나고 프로그램북까지 구매했다.

 

 

 

아주 흔해빠진 이야기


 

 

영웅이 팍팍한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돕는 이야기는 언제건, 어디에서건 있어왔습니다. 아주 흔.해.빠.진. 종류의 것이죠. 우리는 그 흔해빠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작품 시놉시스 중에서

 


그런데 이 흔해빠진 영웅 이야기가 아직도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늘 영웅을 원해왔을까? 그것은 인간사를 통틀어 인간 간의 계급과 차별이 없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항이라는 요소가 간절했던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기 때문이다. <우투리: 가공할 만한>은 전반적으로 저항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혹은 너무도 간절해서 이야기로, 노래로 수백 년을 살아내지요. 이러한 믿음과 끈기 그리고 인간다움은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와 맥을 같이 할 것입니다.

 

- 프로그램북 중에서

 

 

창작집단 LAS는 세간에 많이 알려진 고전들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작해내는 작업에 흥미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극단의 다른 작품들 또한 고전을 차용한 작품이 많다. 이기쁨 연출은 고전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던 중, 영웅은 대부분 남성이며 남성 영웅 주위의 여성 캐릭터는 영웅이 보호해 줘야 할 존재인 아주 흔해빠진 레퍼토리가 싫어서 이를 바꿔보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아주 흔해빠진 이야기를 덜 흔해빠진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까지도 없다. 이건 아주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제 여성 영웅이 특별해지는 시대도 서서히 질 테니까.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한 편의 소설


 

 

귀로 듣는 소설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극 중 캐릭터로,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극의 전달자로 변해 극 속의 인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관찰자 시점,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 부분이 이전에는 보지 못하였던 새로운 연극의 형식 같아서 참 신선했다. 특히 초반부에 스토리 설정에 대한 내레이션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한 편의 잘 짜인 소설을 귀로 직접 듣는 기분이었다.

 

 

중앙도시.jpg

 

 

그러면서도 저항소설의 기본적인 틀은 다 들어가 있다. 세계의 양극화, 차별, 인물 간 갈등, 저항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을 0도시, 1도시, 2도시, 3도시, 그리고 콘크리트 건물의 4도시와 변방 해안가 지역의 5도시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차용해 다른 세계관에서 우리 세계의 얘기를 풀어냈을 뿐이다.

 

 

눈으로 보는 소설

 

 

[크기변환]EyldWnCUcAAZi-h.jpg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활자가 나타내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곤 한다. 그런데 이 연극은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할 만한 것들을 직접 내 눈앞에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극본으로 하나의 훌륭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을 시각적으로 생생히 보여준 것은 조명과 LED 미디어아트, 그리고 안무였다. 프로그램북에는 무대디자인, LED 미디어아트, 조명디자인, 의상디자인, 분장디자인, 음악, 그리고 안무를 맡은 분들의 제작 의도가 적혀 있다. 이를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무대가 완성되었는지 느껴진다.


이 작품을 몇백억을 들여 CG 처리를 하고 영화로 냈다면, 혹은 요새 나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일 그랬다면 영상미가 더 뛰어나고 스토리를 더 깔끔하게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조명'과 '사람'을 활용하여 표현해낸 작품을 보는 것은 실로 멋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연극 장르의 묘미이다.

 

 

 

인물들의 저항 서사


 

[크기변환]EyldWnBVIAApLyJ.jpg

 

 

이 연극의 주인공은 3이지만, 3의 일대기를 통해 주변 인물인 1, 2, 4, 5의 서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들 각각의 서사를 살펴보는 것도 큰 재미 요소이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 저항해야 하는 2와 4, 1에 저항하는 3, 불의에 저항하는 5. 이렇듯 그들 각각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굳이 이름은 필요하지 않다.


이야기의 흐름대로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해보겠다. 3은 어렸을 적부터 항상 "왜?"를 묻던 인물이었다.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3은 같은 학교를 다니던 2와 결혼하게 된다. 2는 빵집 아들이자, 빵처럼 따뜻하고 달콤하고 푹신한 사람이다. 언제든지 3이 돌아올 수 있는 포근한 집이 되어준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포근하고 안락한 빵집에서 3은 떠나려 한다. 떠나서 새로운 도시로 가고 싶다고 한다. 자신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그렇게 떠난 새로운 곳에서 3은 4를 만나 친구가 된다. 4는 '불안해서 발작할까 봐 불안한' 발작 증세를 가진 인물이었다. 발작이 올 때마다 4가 읊조리는 대사와, 극 중에서 4의 발작을 표현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하지만 3이 더 이상 4를 볼 수 없게 된 뒤, 감옥에 들어가게 된 3은 그곳에서 저항군 5와 저항군 대장 1을 만난다. 처음에는 1이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곳에서 배척받던 3을, 오로지 그의 능력을 보고 인정해 줬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1이 그저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대의가 과연 무엇을 위한 대의인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오히려 5야말로 진정으로 대의를 위한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3뿐만 아니라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서사가 때로는 우리를 웃기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를 울리기도 한다. 그래서 각 캐릭터들의 서사를 더 자세히 다루고 싶었으나 그 서사를 확인하는 것은 실제 연극을 보러 가 확인하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우리 모두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 권리가 있잖니


 

내일이 궁금한 삶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크기변환]EyrbMl1VgAIYpCK.jpg

 

 

연극은 3이 마지막에 총을 쏜 이후의 결론을 알려주지 않으며 끝이 난다. 결말이 궁금하도록 남긴다. 하지만 나는 극이 굳이 희망적인 결말로 끝내지 않아도 결말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3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한 3은 결국 또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내일이 궁금하기를, 관객으로 하여금 의도한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의 내일이 궁금한가? 당신의 내일에는 또 무엇이 가능할까? 무슨 이야기가 가능할까?

 

 

난 새로운 도시로 갈래. 그냥 가고 싶어졌어.


어디든, 여기가 아닌 곳으로.

내일이 궁금한 곳으로.

난 뭐든 잘 고치니까. 할 일이 있을 거야.

아주 많을지도 몰라.

대단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의 결말이 개인 편차에 따라서는 허무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요새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무얼 위해서 이렇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작품을 보고 리뷰를 쓰고 있는 건지. 근데 그냥 하고 싶어서, 내가 글을 쓰는 행위를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다 보면 3이 저항군에 들어가듯 그리고 그 꿈이 무너지든 그 꿈이 무너지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듯 나도 뭐라도 되어 있겠지. 적어도 이전과 똑같은 회색빛 시멘트 집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어제'가 애틋하고 '오늘'이 자연스러우며, '내일'은 궁금하시기를 바랍니다.

 

홍단비 작가의 글 - 프로그램북 중에서


 

그래서 만들게 된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좋겠습니다.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회피하지 않고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주는 이야기라면,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이기쁨 연출의 글 - 프로그램북 중에서

 

 

새롭지만 평범한 여성 영웅과 그 일행들의 저항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참신한 이야기와 무대가 궁금하다면, 각 인물들이 펼쳐낼 그들의 서사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당신의 내일이 궁금해지길 원한다면.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이 공연을 한 번 관람해봤으면 좋겠다.

 

 

썸네일 및 이미지 출처: 창작집단 LAS 트위터, ⓒ Sang Hoon Ok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채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8359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9.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