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민중의 소리로서 재탄생한 우투리 - 연극 '우투리: 가공할만한'

글 입력 2021.04.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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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신 영웅들은 고난을 겪는다. 가장 잘 알려진 인물상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는 신이지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련과 고난을 겪고, 인간의 손에 의해 죽음에 이른다. 헤라클레스 역시 신적인 힘을 물려받은 반인반신이다. 그는 신적인 힘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만, 자신의 태생으로 고통받고 죽음에 이른다. 신성한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으로 자신의 유한성을 마주하고 불사의 힘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잠이 든 사이에 뱀에게 그것을 빼앗긴다.

 

신과 인간의 사이에 있는 인물의 모티브는 오늘날 미디어에서도 변형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히어로라고 말하는 인물들이 그에 해당한다.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신적인 힘과 인간의 유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들은 현실을 바꿀 힘이 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를 한 존재들이다. 이처럼 반인반신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인류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호소력은 단순히 인간을 넘어선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온다.

 

인간의 유한성을 가진 그들에게는 대중의 욕망과 의지가 투사된다. 반인반신 영웅이 시련 탓에 고통받고 위업을 달성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인반신들이 마주하는 시련의 극복과정은, 한 인간이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을 맞서는 과정과 비슷하다. 한때 자각이 이루어진 단계의 인간은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그 의지에 따라 구현된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인간은 자신,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세계와 둘러싼 세계의 괴리를 극복해나가는 것은 인간 평생의 숙제가 된다. 이 과정은 신적인 능력을 받은 반인반신 영웅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통합된 세계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으로 치환될 수 있다.

 

오늘 이야기의 모티브인 '아기 장수 우투리 설화'도 반인반신 이야기의 변형이다. 우투리 설화는 '날개'와 '곡물' 유형으로 나누어지지만, 이 글에서는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곡물' 유형의 설화로 제한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여기서 잠깐 소개하자면, 우투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옛날 어느 곳에 한 평민이 아들을 낳았는데, 태어나자마자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어 이내 날아다니고 힘이 센 장수였다. 부모는 이 장수가 크면 장차 역적이 되어 집안을 망칠 것이라고 해서 돌로 눌러 죽였다.아기장수가 죽을 때 유언으로 콩 닷섬과 팥 닷섬을 같이 묻어달라고 하였다. 얼마 뒤 관군이 아기장수를 잡으러 왔다가 부모의 실토로 무덤에 가보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막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결국 아기장수는 성공 직전에 관군에게 들켜서 다시 죽었다. 그런 뒤 아기장수를 태울 용마가 나와서 주인을 찾아 울며 헤매다가 용소에 빠져 죽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아기장수설화)

 

 

우투리는 날개가 있는 인간이다. 날개는 건국신화에서 나오는 하늘과 새와 같은 맥락으로, 힘의 근원이 되거나 평민의 꿈을 상징한다. 이렇듯 우투리는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대중의 심리가 표현된 반인반신이다. 하지만 그는 부모와 관군에 의해 영웅이 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이 점이 반인반신 우투리가 다른 반인반신과 다른 점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그를 죽였고, 두 번째에는 관군이 그를 죽였다. 현실의 고수와 안신을 위하는 현실적인 힘으로 미래의 꿈은 두 번이나 좌절되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투리는 실패한 영웅이다. 그는 현실적인 힘 때문에 세상을 개혁하지 못하고 그 어떤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로 죽고 만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상상해볼 수 있다. 꼭 우투리만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었을까? 반인반신의 위대한 영웅이 사실 우리의 욕망과 의지를 투영한 존재라면, 왜 그 당사자가 바꾸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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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연극 <우투리: 가공할만한(이하 <우투리>)>은 실패한 우투리 이야기를 '성공한 우투리 이야기'로 재가공한다. '성공한 우투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극은 우투리 상징에 대한 변형을 시도한다. 그래서 우투리를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민중의 영웅인 우투리를 그대로 가져오되, 우투리의 성별을 여성으로, 선택받은 반인반신을 스스로 영웅을 자처하는 민중을 바꾸었다.

 

이러한 변형을 통해 우투리는 엘리트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얼굴이, 선택받은 영웅이 아닌 때로는 차별에 이골이 난 민중의 얼굴이 된다. 주인공 3은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그의 정체성은 화가 난 민중에 가깝다. 그는 국가적인 폭력과 성차별의 희생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스스로 상처입히는 방법으로 우투리를 자처한다. 말하자면 그는 그 누구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고통의 당사자이다.

 

그는 영웅이 아닌, 민중을 위한 개혁가이기 때문에 민중의 의지로 움직인다. 그래서 민중의 의지를 실현하는 그의 행동은 지배자의 논리로는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연극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반란군의 수장인 '대장'과의 갈등으로 표현된다.

 

대장은 마키아밸리스트로서 민중을 조정하고 세력을 꾸리는 지도자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선택받은 남성영웅'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은 약자를 착취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중앙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민중의 목소리인 3은 다르다. 그는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며, 민중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는 대장의 선택에 반기를 든다. 그가 반기를 들기 위해 했던 선택이 또 많은 희생자를 내고, 혁명에 도움이 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가 민중의 목소리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가짜 우투리인 민중의 진짜 목소리를 대변하기 때문에, 그 당사자이기 때문에 민중의 꿈을 이룰 힘이 있다. 연극은 그가 민중의 소망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며 모호하게 끝을 맺는다.

 

구전 설화를 모티브로 한 연극인 만큼, 이 작품도 구전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연극은 이야기의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해설자를 등장시킴으로써 그 등장인물이 되어 몰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해설자는 여러 명이고, 등장인물들의 특성, 대화, 시간의 흐름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연극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적극 드러낸다. 즉, 화자는 이야기 바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기 뜻과 감정에 따라 설명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극은 입에서 입으로 전송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변형되는 유동문학의 특성을 드러낸다. 연극의 메시지를 고려할 때, 적절한 전개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미디어 아트를 활용하여 연출한 부분이 두드러진다. 무대 뒤에는 얇고 긴 막대형태로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었다. 연극 내내 색감뿐만 아니라 다양한 패턴을 활용함으로써 드라마틱한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드라마틱한 연출을 바랬던 입장으로서는 다소 활용이 아쉬웠다. 하지만 일반적인 조명만 활용하는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역동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우투리를 민중의 목소리로 바꾸어 연출한 부분은 흥미롭고, 연극 내내 재미있게 감상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평범하고 차별받은 주인공이 민중의 뜻을 이룬다는 내용이 정말 '새로운 영웅 서사'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장과의 갈등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연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다. 작품은 '우투리는 민중의 뜻을 이루었다'라고 하면서 관객의 몫을 남겨둔다. 평범한 대중에 해당하는 관람객들에게 엔딩을 결정하게 하는 그 의도는 이해가 가나, 역시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부분은 처음부터 '민중의 바람'이라는 것이 내용에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좀 더 보태보자면, 사실 '집단의 의지'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아이러니하지만 민중의 입장으로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주인공 3보다 대장의 스탠스가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대장은 윤리적인 부분에서 비판받을 수 있지만, 최소한 집단의 의지를 추상적인 하나의 상징인 우투리로 결집해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진다. 우투리가 불을 지르는 부분에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민중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목소리를 가차없이 드러내려는 주인공 3은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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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맥락에서는 삼위일체의 완전무결한 신으로서의 예수보다는, 인간적 고뇌와 신성한 임무 사이에서 고뇌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지저스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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