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이영지" [음악]

글 입력 2021.04.1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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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영지” 다섯 글자로 이름을 납득시키는 래퍼. 그녀의 이름은 이영지다. 첫 등장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영지는 지금 떠오르는 스타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름이다.

 

그녀의 등장은 혜성 같았다. 음악을 시작한 지 반년밖에 안 된, 고등학교 1학생이었던 그녀는 고등 래퍼라는 큰 무대에 나가 단번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현재 이영지는 유튜브, 예능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중이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그녀를 만든 건 강렬한 무대들이었다.

 

 

 

고등래퍼 3


 


 

 

약속해 성공의 흔적 밟고 이리로 와주겠다고

No no you don’t have to say sorry

Money 그게 그리 당신을 숨 막혀 떠나게 만들었다면

알러지 생길 정도로 벌어 놓길 약속할 테니

Please come back home my daddy

 

-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진짜 나

 

 

신서 고등학교 1학년 이영지. 랩을 시작한 지 반년. 그녀가 세상에 처음으로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아픔이었다. 잠깐 훔쳐본 그녀의 삶엔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그녀는 아버지에게 돌아와달라고 떼를 쓰지도 왜 떠났냐고 비난을 쏟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처지를 이해하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꿈을 자신이 이뤄주겠다고 말한다. 원망은 쉬우나 용서는 쉽지 않다. 이영지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결핍을 인정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조용한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단정한 교복을 입고 단정한 머리를 한 이영지의 무대가 내게 폭탄처럼 날아와 묵중하게 울렸다. 오랜만에 느낀 깊은 울림. 태연한 표정으로 부르는 꾹꾹 눌러 담은 가사가 이영지를 자꾸만 찾게 만들었다.

 

 

 

퀸덤 <암실>


 


 

 

여성 싱어들로 구성된 프로그램 퀸덤을 보게 만든 것도 영지의 역할이 컸다. 2019년 11월에 발매된 그녀의 첫 곡 <암실>이 퀸덤의 첫 무대였다. 어떤 장신구나 다수의 댄서들 없이 오로지 혼자서 구성된 무대. 고등 래퍼와 퀸덤 사이의 짧은 시간 동안 이영지는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아직 잃을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좀 많이 두려워

돈 명예 시계 전부 얻어도 날 다 채울 수 가 없으니

더 날 불러줘 막연한 회의감 가득한 방 안에서도 듣게끔

 

- 암실

 


이영지의 가사에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이 들어있다. ‘잃을 준비’, ‘막연한 회의감’. 높아지는 인기에 대한 이영지의 두려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so please 날 나가게 날아가게 해줘’라는 후렴구를 부르며 마무리하는 이 노래는 암실 속에서 두려워만 하지 않고 어둠을 뚫고 나와 날아가겠다는 그녀의 다짐 또한 볼 수 있다.

 

적절한 순간의 움직임, 자연스러운 호응 유도, 여전히 최고인 그녀의 깊은 목소리. 세 박자가 딱딱 들어맞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 더 보여줄 게 남아있을 것 같은 그녀의 빛나는 가능성을 볼 수 있던 무대였다.

 

 

 

“나는 이영지”


 

 

 

도망쳤어 같은 암실에서

다 닦아놓은 새로운 방안에서

전부 긁어내 창의력 MAXIMUM으로

 

덜어 놔야 돼 덜어 놔

난 가진 욕심이 적고

흑심 덜어낸 토지는 비옥해지는 법

 

뛰는 놈 위의 나는 놈 위의 길이 보이는 나는 이영지

 

다음 내길은 아마

없을거야 지름길이

but i don't care

이길이 아냐 말하고

아둔한 포기를 말할게 아니라면 뭐든 해도 돼

 

- 나는 이영지

 

 

터졌다. 내게 떨어진 ‘이영지’라는 폭탄이 펑 하고 터지고 말았다. 주황색 양갈래머리, 하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이토록 나를 울릴 줄이야.

 

“아둔한 포기를 말할 게 아니라면 뭐든 해도 돼. Just do do.”

 

암실을 뛰쳐나온 이영지는 방금 날개를 단 마냥 맘껏 날았다. 그녀의 조용한 자신감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일단 해보고, 이 길이 아니면 멍청해 보여도 그냥 포기할게! 또 다른 시도를 하면 되니까. ‘아둔한 포기’란 그런 말이었다. 우리는 멍청해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자꾸만 움츠려든다. 아는 것만, 날 멋지게 보이는 것만 하려고 해서. 이영지는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나는 이영지”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자신이 이영지라는 의미와 하늘을 ‘나는’ 이영지라는 뜻. 암실로부터 힘차게 날아오른 그녀의 도약은 내게도 강한 바람으로 불어와 날 날게 해주었다.

 

*

 

무대로만 이영지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영지가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 또한 최근에 예능에 나온 이영지를 보며 웃다가 이 무대들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영지는 바닥부터 단단한 예술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술적 영감은 결핍에서 오기 마련이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이영지의 가사에서 여실히 보인다. 새가 날기 위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는 그녀.

 

그 울림이 세계에 자꾸 닿아서, 우리가 그녀에게 반응하는 가 보다.

 

 


박소희 태그.jpg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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