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계의 한계점 [영화]

글 입력 2021.04.0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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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는 SF 장르로 분류되는 영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유전자 조작이라는 SF적 요소보다는, 영화가 지닌 휴머니즘적 메시지와 이를 관객들에게 전하는 방식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가타카는 SF라는 형식을 택한 휴머니즘 영화라고 조심스럽게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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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러닝타임 내내 수많은 상징을 마주하게 된다. 가타카 안의 상징들은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꽤나 직설적이다.

 

우선 배경이 되는 장소들이 그렇다. 빈센트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또한 그 한계를 부수는 장소는 바다이다. 동시에 바다는 빈센트가 아이린과 하룻밤을 보낸 후에 스스로를 벗겨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빈센트는 부적격자인 자신의 신원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매일 소각장에서 피부 각질과 머리카락, 손톱 등을 벗겨냈는데, 이 모든 행동은 자신을 부정하는 행동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는 동생 안톤과의 재회 후에 다시 한 번 더 바다에 이르고, 안톤을 뛰어 넘으며 유전적 한계를 뛰어 넘는다. 바다는 빈센트의 근원이자 자아를 형성-재형성하는 장소이다.

 

한 편 빈센트가 한계를 뛰어넘는 매개가 되어준 수영은 또 다른 주인공 유진에게 상이한 의미를 가진다. 유진은 수영선수였다. 그 중에서도 매우 우수한 수영선수였다. 그의 우수함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있었다. 그러나 사고로 다리에 장애가 생겨 생계가 어려워지자 유전인자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팔게 되면서 빈센트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앞선 문장에서 수영은 유진에게 상이한 의미를 가진다고 했는데, 사실 그 의미는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단지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빈센트는 수영을 통해 비참함과 한계를 느꼈으나 결국 영화 후반에서 그 한계를 부수었고, 유진은 수영 선수로서 예정되었던 성공을 이루었으나 사고로 수영을 그만두면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마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진이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소는 물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불, 소각장이다. 어쩌면 그도 그의 한계를 마지막에야 뛰어넘게 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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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한계’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문장은 영화 안에서 대놓고 등장한다.“운명을 결정하는 인자는 없다.”

 

살인범의 추적이 이루어지는 동안 가장 의아했던 것은, 아무리 빈센트의 외모가 달라졌다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수로 흘린 눈썹이 복도에서 발견되어 불안해하는 빈센트에게 유진은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너를 볼 때 네가 안 보여. 내가 보일 뿐이야.”라고.

 

빈센트가 정말 결정적으로 신분을 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한 번 정해둔 선 바깥의 것은 도무지 보지 못한다. 모든 사람에게 제롬으로 정해진 빈센트는 더 이상 빈센트가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알려주고 규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유전인자와, 사람이 사람에게 긋는 선-차별적 시선, 규정, 한계 등-중 더 견고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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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 초반에서 가타카의 배경을 ‘멀지 않은 미래’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SF영화는 흔히 관람객들에게 긴박감, 몰입감 등을 주기 위해 정확한 년도를 설정한다. 그런데 가타카는 명확하게 년도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저 멀지 않은 미래라고만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유전자 조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유진과 제롬이 살아가는 현실과 크게 다른 점이 있을까? 우리는 유전자 조작과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어도 이미 현실 속에서 수많은 외적 한계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성소수자라서, 장애인이라서, 혹은 또 다른 무엇이라서. 한계를 정하는 명분은 어디에나 있다. 가타카 속 차별은 언뜻 먼 이야기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 앞에 있는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타카는 그런 한계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모순적인지를 명백히 알려준다. 빈센트라는 존재 자체가 모순의 증거이다. 그는 분명 유진의 신분 증명을 위조하여 가타카에 입사했다. 하지만 최고 항해사라는 자리는 온전히 빈센트의 능력만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유전적 한계인 심장 질환이 있으나, 항해사를 가리기 위한 체력 테스트까지도 포커페이스와 연기로 무사히 넘긴다. 만약 빈센트가 자신의 유전적 한계와 주변의 만류로 좌절했더라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그리고 우리 주변에 숱하게 있는, 좌절된 꿈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존재 자체로 한계와 모순의 증명이 되는 것은 빈센트 뿐만이 아니다. 유진은 우수인자 중에서도 특별히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런 그가 우울증을 가질 확률은 극히 낮았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유진의 우울증이 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유진은 수영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을 때조차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빈센트와의 취중 대화로 드러난다. 그의 우울증은 살아오면서 몇 명에게나 받아들여졌을까. 빈센트가 가진 우주에 대한 열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듯, 유진의 우울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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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진의 우울증은 영화 전반에 걸쳐 암시된다. 그의 집에는 시종일관 술병이 굴러다닌다. 빈센트와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그는 습관적인 음주를 하고 있다. 그리고 유진은 지나치게 많은 것들에 그저 초연해보인다.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거나, 예상하지 못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는 빈센트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빈센트와 유진의 사이가 너무 좋아서 약간 놀라웠는데, 유진이 혈액 검사를 한 형사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그도 유전인자에 기반한 계급주의적인 생각을 분명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쩌면, 유진도 빈센트에게 일종의 열등감 내지 부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유진은 자살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빈센트는 꿈이자 목표였던 타이탄을 바로 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유진이 남몰래 가지고 있었으나 좌절되었던 우울감과 자살에 대한 열망은 빈센트가 유전인자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발현되었던 것 같다. 유진은 빈센트를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에게 몸만 빌려줬지만, 너는 나에게 꿈을 줬어.”

 

한편 유진은 빈센트를 빈센트라고 불렀던 유일한 -동생을 제외한- 인물이기도 하다. “네가 자랑스러워, 빈센트.”라고. 유진은 제롬을 연기하는 빈센트도, 빈센트가 연기한 제롬도 아닌 빈센트 본인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유진은 빈센트의 친구였기에.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빈센트는 마침내 우주로 나아간다. 아니, 돌아간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빈센트가 우주선에 올라타는 장면은 유진이 소각장에 들어가 문을 닫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둘 다 꿈을 이루는, 그리고 돌아가는 순간이다.

 

우주선에 앉아있는 빈센트 위로 빛과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림자가 지나갈 때 빈센트의 눈은 언뜻 그 본연의 눈동자색인 짙은 고동색으로 보인다. 유진의 자랑이자 족쇄이기도 했던 그의 은메달은 소각장 속의 불이 비춰져 금빛으로 반짝인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유진은 유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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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를 마친 빈센트는 과연 누구로 살게 될까. 그 말고도 수없이 많이 존재할 다른 빈센트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게 될까. 또 다른 가타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많은 질문이 남았지만, 우리는 이미 106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타인이나 외부가 정한 한계는 이토록 나약하고 모순적이라는 사실과, 결국에 당신은 당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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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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