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 비하인드의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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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대학 시절 미술 교양수업 덕분이었다.
그러나 수업에서 접한 미술과 미술사는 어렵고 지루했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성당들을 하나하나 암기해야 했고 작품의 작가, 제목, 연도를 달달 외워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업 교재였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책은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미술이 재밌다는 생각은 오히려 열심히 암기하고 이해해야겠다는 압박감을 벗어던진 후 찾아왔다. 교환학생 시절, 한가한 미술관에 찾아가 자주 멍을 때렸다. 교환학생은 대부분의 미술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그림을 앞에 두고 멍하니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작가는 왜 저 사람만 뚱뚱하게 그렸을까?', '왜 같은 작가인데 그림체가 달라졌지?' 등 궁금한 점이 생겨났고 이에 대해 구글링 하다 보면 그림에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기무라 다이지의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두껍고 근엄한 곰브리치의 책 보단 편안히 방문해 볼 수 있던 무료 전시 같은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화에 얽힌 비하인드스토리를 1-2페이지 분량으로 담아내고 해당 작품의 이미지를 함께 실었다. 짧은 호흡과 이미지로 구성된 덕에 쉽게 읽을 수 있던 한편 궁금한 부분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아쉽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에 인상 깊었던 작품의 비하인드와 그 비하인드의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그래서 다리는 왜 안 그렸다고요??
알코올 중독을 문제 삼은 그림? - 에드가 드가의 <압생트 한 잔>
드가의 작품 <압생트 한 잔>은 낮부터 압생트를 앞에 두고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림 속 여인은 실제 손님이 아닌 드가의 친구이자 모델, 배우 엘렌 앙드레였고 엘렌은 알코올 중독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그런데 테이블 다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대체 어찌 된 일일까?'라고 물음을 남기며 끝낸다.
그전까지 그림 속 테이블에 다리가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던 나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끝맺음이었다. 테이블 다리가 없는 이유를 검색해본 결과, 구도를 위한 의도적 생략이라는 해석이 가장 많았다. 드가는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예기치 못한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압생트 한 잔>에서도 드가는 피사체를 중심에 그려 넣던 정석적인 방법 대신 인물들을 오른쪽 측면에 배치하고 가장 끝 남성의 파이프는 일부가 잘리게 그리는 등 대담한 구도를 시도했던 듯하다.
또한 하얀색 테이블 상판과 신물을 이용한 지그재그 구도로 인물들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는데 테이블 다리를 그릴 경우 이런 구도에 방해가 되어 의도적으로 다리를 생략했다고 한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인물의 우울한 표정이나 테이블 위 연둣빛 압생트에 집중한 반면 테이블 다리 부분엔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 나름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듯싶다.
# 왜 남자아이도 드레스를 입는 문화가 있었을까?
귀여운 여자아이? 사실은 남자아이 - 르누아르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의 초상>
르누아르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의 초상>은 르누아르를 후원해 주던 출판사 대표 조르주 샤르팡티에의 부인과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는 긴 곱슬머리에 파란 드레스를 입은 두 어린아이가 앉아 있는데 기무라 다이지에 따르면 이 중 작은 아이는 남자아이라고 한다.
과거 남자아이들에게 치마를 입혔던 풍속이 부르주아 계급에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책의 다른 작품들에도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경우가 자주 등장했는데 왜 이런 풍속이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남자아이임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해졌다.
남자아이들에게 드레스를 입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드레스가 바지에 비해 배변 처리가 용이했다. 당시 의복을 고려했을 때, 남자들이 입던 바지는 다양한 끈으로 고정해야 하는 복잡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는 아직 배변 훈련 중인 아이들이 입기에 너무 어려웠던 반면 드레스는 배변을 볼 때 훨씬 용이했기에 드레스를 입혔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의복을 새로 맞추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비쌌다고 한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새로운 의복을 마련하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드는데 드레스의 경우 여분의 천을 두었다가 성장에 맞춰 기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자아이들도 드레스를 입었지만 8세 전후부터는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처음 바지를 입는 날은 손님들을 초대해 이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의복이 아예 똑같지만 다른 그림들의 경우 그들의 디자인이나 장신구, 머리 모양을 통해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짧은 머리를 하고 손에 활이나 검을 들고 있으며 드레스의 목깃이 높게 올라오거나 허리 라인이 심플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머리가 길고 진주 목걸이를 하거나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드레스 디자인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잔 발라동, 그녀는 누구인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그림 속 주인공 - 르누아르의 <도시의 무도회>, <시골의 무도회>
좌: <도시의 무도회> / 우: <시골의 무도회>
<도시의 무도회>와 <시골의 무도회>는 르누아르가 그린 시리즈 작품이다.
그런데 르누아르는 사실 이 두 여성과 동시에 교제하면서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시골의 무도회>의 빨간 모자를 쓴 여인이 훗날 르누아르와 결혼한 알린 샤리고이고 <도시의 무도회>에서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많은 화가들의 모델이자 훗날 화가가 되는 수잔 발라동이다.
수잔 발라동은 사티, 로트렉 등등 다른 예술가들이 언급할 때 함께 언급되어 들어본 기억이 있다. 발라동은 항상 이들의 모델이자 연인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수장 발라동은 그냥 모델이 아니라 훗날 직접 화가가 된 인물이다. 누군가의 연인, 모델이 아닌 화가 수잔 발라동이 궁금했다.
발라동은 사생아로 태어나 훗날 몽마르트에 자리를 잡고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라 메종 로즈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다양한 예술가들과 관계를 형성했으며 르누아르, 로트렉 등 다양한 화가들의 모델이자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발라동은 모델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로트렉과 드가는 그녀의 작품을 보고 극찬했으며 드가는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사고 그녀가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해진다.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은 로트렉과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르누아르가 그린 것처럼 부드럽고 수줍은 모습이나 로트렉이 그린 것처럼 지치고 상심에 빠진 모습이 아니다. 대담한 색채 덕분에 수잔 발라동의 단단하고 강인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여러 작품에 얽힌 반전 스토리를 읽다 보면 책장 넘어가는지 모르고 읽어 하루 5분이 훌쩍 지나곤 했다. 짧게 편집된 내용으로 인해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보며 처음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엔 나만의 상상에 기반해 작품을 바라봤지만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고 봤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깊은 지식은 아니더라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술과 그 역사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해주기엔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영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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