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잊어버린 이름들을 찾아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4.0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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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게 퍽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틱틱거리며 친한 티를 낸다고 성을 붙여 부르거나 별명으로 불렀던 것은 그런 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점차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름이 불릴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회에 속할수록 기능적인 역할로 호칭이 대체되는 것 같았다. 사원님, 대리님, 선생님, 어머님.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이름을 잃어간다는 것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호호 할머니가 될 즘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서로를 친근히 부를 대상이 있을 때 마음껏 부르고 듣겠다고 결심했다.


이름을 부르는 건 낭만적인 주술 같다고 생각한다. 근원적인 사랑과 다정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의 안녕을 기원하며 꼬박 날을 새워 이름을 정했을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 이름을 들으며 '나'라는 정체성을 세계 곳곳에 심어갔을 아이의 발걸음을 떠올리고, 세계가 지금껏 그렇게 품어왔을 수많은 이름의 발자국을 상상해본다. 이름은 불러주는 만큼씩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는 것이고 그 이름을 통해 불멸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이리라. 여기에 모두가 존재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들에는 이 주술이 이어지지 못한다. 기억되지 못하는 이름들은 이 순간에도 사라지며 점차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시대의 모든 것을 비춰주는 거울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오산이었다. 꾹꾹 눌러 쓴 누군가의 이름들은 시대에 흐려져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쉽게 지워졌다.

 

그때 한 화가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하는 이름들이 있다고. 그래서 그는 붓을 들었고 붓은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화폭을 쉴 새 없이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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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전시 공간들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소격동의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즈넉한 한옥으로 꾸려진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이름은 학고재로, 지난 2월부터 윤석남 작가의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21.02.17-21.04.03)가 열렸다.



 

1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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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혜 초상'

 

 

내부가 투명히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작품이 있다. 강렬한 눈빛으로 입장하는 이의 시선을 받아치는 여성은 붉은 천으로 싸인 함을 하나 들고 있다. 그녀의 왼쪽에는 휘장처럼 남성의 상반신이 그려져있는데 빛이 바랜 듯 회색 톤이며 핏빛의 배경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여성은 아마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사망한 후, 검은 상복을 입고 그의 유골함을 들고 있는 것 같다.


비장함이 맴도는 첫 작품에서 주춤 눈을 떼어 전시장을 둘러보면 강인하고 당당한 시선의 14인의 초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잔잔하지만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모두 역사 속에 잊혀가고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얼굴들이다.

 

 

(...) 이번 전시를 위해 윤석남과 소설가 김이경은 몇 달간 협력하며 인물을 선정했다. 김이경은 기록과 문헌을 바탕으로 14인의 독립투쟁을 소설 형식으로 각색하고 소개하는 글쓰기 작업을 맡았고, 윤석남은 김이경의 글을 참고해 그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


이번에 소개되는 14인(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은 일제강점기 여성운동과 구국을 위한 항일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이다. 여성독립운동가라면 자연스럽게 유관순을 떠올리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이름이 낯설 것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함께 독립투쟁을 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지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 『세상을 뒤흔든 여자들: 윤석남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채색 초상화'』中 발췌, 김현주(추계예술대학교 교수)

 

 

윤석남 작가는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한 방식으로 채색 초상화를 그린다. 전시 서문으로 발췌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던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찾아내고 읽으며 그들의 흔적을 탐색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14인의 초상은 그나마 사진이 남아있어 사실에 가깝게 완성할 수 있던 것들이라고 한다. 자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절망적이지만, 이 작업이 앞으로 여성독립운동가를 역사에 뚜렷이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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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강주룡의 초상

 

 

초상에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각 인물들의 상황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로서가 아니라 오롯한 인물로 독립에 기여했던 상황을 그려낸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을지 작품만 살펴보아도 추측할 만큼 섬세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바라볼 때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면 작가가 이들의 눈과 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눈인 만큼 작품 속 인물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도 눈빛이다. 실물 크기의 화폭이라 한 명씩 눈을 맞대면 정말로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자의 시간대에 잠깐 멈춰 거대한 시공간을 넘어 마주친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손이 거의 얼굴 크기만큼 강조되어 있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 작가가 표하는 존경심일 것이다.

 

 

 

2 잊어버린 이름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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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혜 초상'

 

 

앞서 처음 보았던 인물은 박자혜이다. 박자혜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일하던 간호사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항일운동을 하며 다쳐온 조선인들을 치료하다 일제 치하에서 일하는 자신에 대한 수치를 느꼈다. 이후 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했고, 앞장서 만세 시위와 동맹 파업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남편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데 그녀가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남편 신채호의 유골함이다. 박자혜는 신채호와 아이를 낳고 경제적인 이유로 떨어져 살았지만 홀로 가정을 책임지며 남편의 투쟁을 지원했다. 남편의 긴 옥바라지 끝에 돌아온 것이 작은 궤짝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 듯 굳어있는 그녀의 얼굴에 가슴 아파온다.

 

 

"나는 당신이 남겨놓고 가신 비참한 잔뼈 몇 개를 집어넣은 궤짝을 부둥켜안고 마음 둘 곳 없어 하나이다. 작은 궤짝은 무서움도 괴로움도 모르고 싸늘한 채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신은 뜻을 못 이루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왜 이렇게 못난 주제로 내게 오셨습니까. 분하고 원통하지 않으십니까? 당신이 원통한 고혼은 지금 이국의 광야에서 무엇을 부르짖으며 헤매나이까?"


- 『가신 임 단재의 영전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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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초상'


 

비행기를 배경으로 당당히 작게 웃음 짓고 있는 이는 권기옥이다. 권기옥은 한국 최초의 여성 공군 비행사이며 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항일투쟁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숭의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에는 3.1 운동을 주도했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비행사가 되어 일본과 싸웠다. 권기옥이 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하늘을 날아 일본에 투쟁하고 싶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항일투쟁에는 무조건이었습니다. 감옥이 아니라 죽음도 두렵지 않았어요.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게 참으로 원통했습니다. 그때 하늘을 날며 왜놈들을 쉽게 쳐부술 수 있는 비행사가 되려고 마음을 다졌지요."


- 1961년 7월 인터뷰에서

 

 

그의 비행 고글에 담긴 파란 하늘과 구름이 찬란하게 보인다. 매번 파란 꿈을 눈에 담고 하늘로 날아올랐을 권기옥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했다.

 

 


3 염원으로 쌓은 붉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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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그렇게 단단하지만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열네 명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십 년의 감옥생활을 빼면 이제 겨우 스물 셋이라던 말에 울컥한 마음이 밀려오고(박진홍), 세상과 좋은 나라는 남녀가 협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김마리아)에 지금의 현실을 되돌아봤다. 서로 돕고 지탱해 주며 뿌리 내려왔을 역사에 어째서 이들의 이름은 그토록 흐릿할까.


답답한 심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가장 안쪽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붉은 방(2021)'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빼곡히 붙여진 붉은 종이가 분위기를 압도하고 나무에 새겨진 여성들은 묵묵히 무언가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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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

 


이 방은 하나의 염원으로 쌓인 사원 같았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조국을 위한 염원은 윤석남에 의해 이들을 기억해달라는 염원으로 다시 모인다. 이 염원은 전시를 본 관객에게 이어지고, 이들의 존재는 거울을 통해 저 벽 너머까지 확장된다. 언젠가는 이 땅 위 모든 곳에 닿을 것이다.


왜 나무 위에 여성을 그려 세워뒀을까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물질적으로 나무라는 무게를 갖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눈을 감은 모습을 천천히 덧그리다 나무라는 재료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생명이 다해도 나무가 버텨온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나이테를 말이다.


여성독립운동가라는 가상의 나무를 상상해 본다. 윤석남의 두른 가는 첫 테가 일 년 뒤 두번째, 세번째 테를 두껍게 쌓아갈 모습을.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 동안 기억의 나이테가 쌓이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단단한 나무가 될 것이다. 무엇으로 뿌리 뽑아도 쉽게 스러지지 않을 강인한 나무가 될 것이다. 윤석남이 시작했으나, 이 나무는 혼자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불러내어 눈앞에 드러낸 이름들을 이제는 우리가 깊게 새겨야 한다.


윤석남은 전시가 끝난 후에도 계속 여성독립운동가의 초상을 그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100인의 초상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는 거대한 타이틀에도 묵묵히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는 그의 작업이 소중하다. 이전 작품들이 그랬듯이 100명의 초상을 그리는 일은 묵묵한 긴 수행이 될 것이다. 조용히 그 수행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붉은 방에 나의 염원을 하나 조심히 쌓아 올리고 뒤를 돌았다. 마침내 마지막 작품이 완성되는 날, 우리에게 찾아올 100개의 이름이 불멸의 역사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를. 이들이 세계에 남긴 수많은 발자국을 모두가 알게 되는 어느 날이 오기를.



참고

'윤석남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리플렛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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