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무도 없는 곳

글 입력 2021.04.0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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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로 잔잔한 공감을 이끌었던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 개봉했다.

 

느리고 깊은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다. 예상은 걸맞았지만, 압축된 이야기가 아닌 흐드러진 마음들을 모아 담은 작품이라는 것이 더욱 와닿는 설명일 것 같다.

 

GV 당시, 그는 작품의 해석을 내려놓는 것에 많은 망설임을 보였다. 아무래도 관객과 작품의 만남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듯 했다. 그렇기에 끄적이던 볼펜을 내려놓고, 나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화면을 뒤덮는 매캐한 연기 사이로, 우리는 흩어졌던 지난 마음들을 꺼낸다. 총 네 명과 기억의 파편을 나누는 <아무도 없는 곳> 속에서, 그들의 것과 내 것을 겹쳐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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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 거 무섭지 않아요?


 

얼마 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살 아기는 1Km의 속도로, 스물에서 서른 사이의 우리는 25Km로, 서서히 기억을 점막을 잃어가는 우리 할머니는 80Km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고.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속도에 차이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거 있던 기억과 별거 아니었던 기억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아니게, 빠르게 흘러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들의 대화는 단순하고도 단순하지 않고, 이해가 가나 싶다가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저런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내는 거야?’하는 마음이 들 무렵, 치매가 오신 할머니의 관심을 끌려 무던히 애쓰던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주말에 꽃이 진대요, 내가 어디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인데-로 시작하는 말들은 그럴싸한 결론을 쥐고 있지도 않다.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며 어디서도 쉽게 꺼내지 않는, 나의 침전물을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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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세요?


 

작품 속엔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 일전에 어떤 형식으로든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 다수가 등장한다. 어색하지만 편안하고, 또 편안하지만 나의 것을 모두 드러낼 수는 없는.

 

이렇게 암묵적으로 그어둔 선을 가볍게 침범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허공만 응시하는 것. 부옇게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잃은 기억들이 되살아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역시나 의아하고 뜬금없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가지고 있던 영화 내의 흐름을 잃고 ‘장면’ 자체에 몰입한다. ‘의미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순간 인물의 서사가 등장하여, 고민하던 순간은 없던 일이 되어 버린다. 담배도, 삶과 죽음도 이러한 경계에 놓여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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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사는 거예요


 

사랑스럽고, 박자감 있다.

 

작품 속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을 닥쳤어도, 무엇을 잃었어도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다. 때로는 그러한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평범하고 낭만적인 바,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둘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자그만 기억들을 내놓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술 한 잔을 털어 넣으며 ‘잊자’를 연발한다. 마시고 잊자, 먹고 잊자. 기억의 소멸을 기원하며 잔을 기울인다. 잊어야 마음 편한 일이 너무도 많은 탓이다. 두 인물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기억에 대한 생각을 한다. 좋은 일과 나쁜 사람, 즐거운 순간과 눈시울에 열이 몰리는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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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끝에 희망이 있더라구요


 

궁지에 몰린 이들은 바닥에 놓인 꽃병에도 기도를 한다. 내가 그랬고, 적어도 주위 사람 중 세 명은 그랬을 것이다. 심지어 모르는 이를 붙잡고 아는 사람에겐 전하지 못할 말을 쏟아낸다.

 

지하철이었나, 술에 취한 채 노선의 끝에서 끝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어폰도 찾지 못해 고개만 숙이고 있을 무렵, 젊은 나이 대의 아주머니가 말을 붙였다. 나의 안부와 안녕은 물을 새도 없이, 그녀의 말을 쏟아냈다. 당신의 삶이 이렇고 저렇고. 그것들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조차 헷갈렸지만, 멍하게 끄덕이기만 했다.


두 취객은 그렇게 어설픈 대화를 마쳤다. 머리에 남은 말이라곤 가정폭력, 쓰레기 같은 놈, 그런 종류의 짧은 단어들. 내일 아침이면 취기와 함께 사라지겠지. 하지만 의외로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사라지지 않는 숙취처럼. 둘의 이야기 또한 그러하다.


<아무도 없는 곳>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중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유는 없다. 단지 글로써 그의 작품을 미리 접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ㅡ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ㅡ.

 

작품 내에 깔린 어둠과 담뱃불부터,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눈과 입매를 가만히 바라보길 바란다. 갈피를 잃은 이들끼리 공유하는 무던함과 담백함,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촘촘한 감정의 결. 흐르는 우리의 마음. 나는 이 영화를 감히, <아무도 (마음 둘 수) 없는 곳>이라 해석하고 싶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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