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샤워를 하는 두 가지 방법

글 입력 2021.03.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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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화장실에 있다. 미적지근한 온수가 나오고 머리는 깨질 것 같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머리카락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몸은 쥐어짜인 걸레처럼 기운이 없다. 나는 비척비척 목욕 의자에 앉는다. 이 의자는 이사와서 지금까지 쓴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서서 샤워를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천근만근으로 몸이 무겁고, 꼼짝도 하기 싫고, 어디 기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수밖에 없다.

 

후. 너무 마셨어. 벌거벗은 채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있으니 매우 춥고 슬프고 외로운 느낌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화장실 한켠에 놓인 세숫대야를 끌고 와 발을 집어넣고 뜨거운 물을 채운다. 데일만큼 뜨거운 물이 발목까지 차니까 몸에 온기가 좀 돈다. 후. 대야에 담긴 내 발을 멍하니 보다 문득 아주 오래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는 꼭 대야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발을 담가야만 샤워를 했다. 목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 몇 살까지 그랬더라? 열 두어 살까진 그랬던 것 같다. 유인원이 두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 인간으로 진화했듯이, 나는 어느 순간 서서 씻기 시작했고 그 뒤로 항상 서서 씻었다. 그건 빨리 씻을 수 있어 효율적이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샤워신도 다 꼿꼿이 서서 씻는다. 눈을 감은 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피와 인생의 찌든 때같은 걸 흘려보내던 무수한 영화 씬들...후.

 

하지만 나는 지금 형편없는 몰골로 쭈그려 앉아 대야에 흘러드는 뜨거운 물의 수도세와 난방비를 생각한다. 물을 꺼야 하는데. 끄면 너무 빨리 미지근해지는 걸. 안 그래도 깨질 것 같은 머리 속에선 공과금을 내는 나와, 관리비가 뭔지도 모르는 열 두살 짜리 내가 갈등한다. 후. 이게 뭐하는 짓이람. 나는 수도꼭지를 더 뜨거운 물이 나오게 돌리고 그냥 가만히 있는다. 직립 샤워를 시행한지 근 십여 년만에 다시 목욕 의자로 회귀하다니.


가만히 대야에 담긴 발을 관찰한다. 십여 년 사이 내 발은 꽤 자랐고 굳은 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발가락도 울퉁불퉁한 게 갈수록 엄마 발이랑 똑같아진다. 예전엔 굳은 살이 옹이 진 엄마 발만큼 못생긴 발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 발도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세상에. 나는 까끌까끌한 뒤꿈치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화장실을 보고 더 뜨악한 기분이 되었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침침한 조명, 코딱지만한 크기의 화장실(사실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좁다), 물때가 잔뜩 낀 바닥 타일과 그 한가운데서 욕조 대신 세숫대야에 온수를 낭비하는 나까지.

 

대체 십여 년의 세월은 어디로 간 걸까? 나는 그 동안 많은 이사를 다녔고, 많은 화장실에서 씻었지만 직립 샤워에서 쭈그린 의자 샤워로 되돌아온 지금 내가 여전히 후진 화장실에 있다는 사실에 욕지기가 나기 시작했다. 거지같은 인생. 거지같은 나. 이 문구 역시 열 두어 살의 내가 화장실에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다른 점이라면 그 때는 내가 크면 이런 후진 집에서는 안 산다는 말도 같이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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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훌쩍 커버린 지금, 난 아직도 후진 집에 산다. 열두 살때 애타게 꿈꾸던 독립은 얻었지만 그럴듯한 경제력도 생활 능력도 없이 매일 집과 나 자신의 지저분함과 싸운다. 이게 내가 꿈꾸던 미래일까? 사실 미래를 말하기도 전에 나는 내가 십 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직감에 경악스런 기분이 되었다. 몸집만 커지고 그 속은 십 년 전 그대로면 어떡하지? 건방지고 인생이 불만이며, 절대 굽힐 줄 모르는 고집으로 모두를(특히 미래의 나를) 힘들게 한 내가 주민등록증을 받던 날 사라진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다면? 아. 어떡하지! 나는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비척비척 일어나 김이 뿌옇게 서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별 볼일 없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속에서 시간이 내게 줬을만한 걸 찾아보았다. 지혜나 지성, 이지적인 눈빛 뭐 이런 거...그런 건 없고 거울에는 숙취로 푹 꺼진 얼굴에 다크서클만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럴 거면 뭐하러 나이를 먹는단 말인가. 복작대던 후진 집을 떠나봤자 돌고 돌아 혼자 사는 후진 집으로 되돌아올 뿐이라면. 인생이 계단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같은 운동장 트랙을 계속 도는 일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자라온 과거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이사를 가고, 졸업을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지난 시간에서 더 멀리 떠나올 수 있는걸까? 그렇다면 어릴 때의 습관은 어디서 잠들어 있다가 이런 유쾌하지 않은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걸까. 내가 되고자 원했던 모습은 여전히 멀리 있고 사라지기를 바랐던 면모는 그대로 나와 달라붙어 있다. 그게 지금 이 순간 나를 매우 우울하게 만든다. 난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아니었다. 나는 열 두살때와 같은 꿈(넓고 깨끗한 화장실!)을 꾸고 있고,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넓은 집에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면 앞으로도 요원해보인다.

 

묘한 건 이제 뭐든지 될 수 없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별로 뭐든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고, 나로 사는 게 좀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진작에 떠나보냈다고 생각한 건 지금처럼 취약한 순간에 들이닥치고, 한때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은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짐작도 안 간다. 남은 건 점점 식어가는 물 속에 담긴 내 발과 코딱지만한 화장실이다.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달라지더라도 아주 조금씩만 변하고, 어릴 적 환상이 체에 걸러지고 난 앙금을 가슴 속에 자갈처럼 굴리면서 사는구나. 이건 술이 가져다준 깨달음인가 목욕의자가 가져다준 깨달음인가 아니면 엉망으로 굳은 살이 박히기 시작한 내 발이 가져다준 깨달음인가...나는 슬슬 추워지기 시작해서 다시 온수를 틀었다가 이내 대야에 담긴 물을 엎어버리고 그냥 일어섰다. 너무 오래 있었다. 더 있다간 목욕의자와 이 좁아터진 화장실마저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물을 끄고 몸을 닦고 추위에 닭살이 잔뜩 돋은 채 밖으로 나갔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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