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절감 에세이 1편 - 봄바람과 새와 꽃 [사람]

완연한 봄을 기다리며
글 입력 2021.03.24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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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이렇게 오는 것 같다. 열어둔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훈기 도는 바람, 겨우내 들리지 않던 새 지저귀는 소리 조금씩 실려 오고, 길가에는 매화와 산수유 꽃이 피어 봄의 색을 예고하는 것으로.


2월 말부터 바람이 바뀌었다. 여는 순간 싸늘한 바람이 들어올까, 어깨를 움츠리고 창을 열다가 의외의 따스함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때부터 환기를 하는 방 안에 봄기운이 새록새록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창문과 맞붙은 책상 앞에 앉을 때 두터운 담요를 덮을 일은 더 없을 듯하다.


완연한 봄날은 아직이어서 봄바람은 가끔 차가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겨울의 칼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춥긴 해도 살이 에이지 않는다. 아직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는 어딘가 따스함이 묻어 있다. 나는 그 변화를 한 점이라도 더 맛보려고 창문을 평소보다 길게 열어둔다. 추우면 차라리 옷을 하나 더 껴입는다. 이때 들어오는 새소리를 사랑해서, 머리카락과 옷감 겉 부분이 조금 선득해져도 괜찮다.

 

겨울에는 들리지 않더니 다들 어디서 이렇게 때맞춰 돌아오는 걸까? 날이 풀리는 시기와 새 지저귀는 소리 돌아온 시기가 겹친다. 새들은 온몸으로 날씨를 읽고 우리보다 빨리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겠지. 사람들은 새들의 노래 같은 대화를 들으며 한 번 더 날이 풀린 걸 실감하고. 전에 살던 곳에서는 이 소리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다. 거기서 내가 들었던 건 건물을 공사하는 소리, 인근 점포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 건물 바로 아래서 들려오는 담배 타임의 수다. 그다지 정 붙일 일 없는 소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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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외출한 김에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어느새 3월 중순, 봄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겨울 코트를 입어도 덥지 않은 날씨였다. 비가 오면 날은 더 차다. 3월까지는 패딩 집어넣지 말라더니.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3월 말에 갑자기 추워져서 정리 않고 그대로 걸어둔 패딩에 다행스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3월은 생각보다 춥네.

 

매번 겪는 환절기인데 한 해 가면 그 감각을 잊어버린다. 한 해가 긴 시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기후변화 때문에 내가 체득한 감각이 시간과 조금씩 어긋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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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아주 오려면 멀었나. 애써 찾아온 온기가 이렇게 쉽게 지워지나, 하며 조금 실망스러워졌다가도 이내 매화와 산수유 꽃에 시선을 빼앗긴다. 점으로 찍은 듯한 샛노란 작은 꽃들과 새하얀 백매화, 진분홍색의 홍매화.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색들이 아직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총총 걸려 있다.


누가 뭐래도 꽃이 피니까, 눈 덮인 흰색이었거나 불투명하고 흐린 얼음의 색이었거나 앙상한 나뭇가지 색이었던 겨울이 이제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거야. 따뜻한가 하면 어떤 날은 기온이 뚝 떨어지고, 고작 하루 안에서 일교차에 당해 감기에 걸려도. 시간은 뒤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겨울 특유의 포근함을 좋아하는데도, 막상 봄이 온다니 설렌다. 겨울의 포근함은 실내에 있고 봄의 포근함은 밖에 있으니까 이제 다른 계절감을 즐길 때도 됐다.


걷다가 새 지저귀는 소리를 녹음하고, 집 근처에서 처음 보는 식물과 다시 보길 기다렸던 꽃을 찍으면서 봄을 즐길 생각을 한다. 작년에 본 푸른색 들꽃이 다시 핀 걸 확인했다. 산책 중에 녹음한 새 지저귀는 소리를 집에 돌아와 들어보니 생각보다 음질이 괜찮아 만족스럽다.

 

봄은 시시때때로 얼굴을 바꾸니까 화단과 공원 산책을 자주 할수록 좋다. 물론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 이번 주 주말이면 목련이 도톰한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고, 역시 작년에 보고 기다리고 있는 이름 모를 하얀색 풀꽃이 피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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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에 본, 아직 봉오리 상태인 목련

 

 

봄에 대해 몇 자 쓰며 완연한 봄을 기다린다. 4월이 되면 자연이 생동하는 모습을 한 주 한 주 새롭게 볼 수 있고, 5월이면 장미가 피기 시작한다. 봄 안에서 봄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눈과 얼음의 세상도 좋았지만 뒤돌면 각기 다른 나무의 새순이 돋는 이 계절은 툭하면 새로워서, 어서 봄이 만개하길 기대하게 된다.


사람 많은 곳, 먼 곳은 자유로이 가기 힘드니 올해도 우리 동네의 봄꽃과 초록을 부지런히 눈에 담고 다녀야지. 제약 안에서 낙관해 보다가도 지금의 상황이 못내 아쉽다. 무엇보다 팔이나 다리 말고, 얼굴 피부로 느끼던 봄바람이 그립다. 봄내음은 또 어떻고. 이번 봄은 무리겠지만 살랑이는 바람을 마스크 안 쓴 맨 볼로 느껴보고 싶다. 바람에 몇 가닥씩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내 검은 머리칼도. 내년 봄이면 그래 볼 수 있을까.

 

점점 따스해지는 봄햇살 아래서 나는 작년과 올해에 걸친 고난이 눈 녹듯 사라진, 또 하나의 완연한 봄을 그려본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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