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 기묘한 흥행이 남긴 기대감 -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영화]

글 입력 2021.03.2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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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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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업 영화조차 관객수 50만 돌파가 불투명해진 현 시국에 개봉 1주차 만에 20만 관객을 동원하고 현재 131만이라는 기묘한 흥행을 기록하는 데 성공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물론 아무리 시국이 시국이라 해도 이 정도 관객수를 가지고 기묘하니 어쩌니 감상을 내비치는 건 일견 과장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대중과 평론가 모두의 압도적인 지지와 함께 200만 관객을 기록한 <소울>의 흥행은 공전의 히트 정도로 표현해야 할 정도니까.


하지만 내가 느끼는 기묘함은 흥행 성적이 아니라, 그러한 흥행을 가능하게 만든 작품 자체의 특수성에 있다. 왜냐하면 그 특수성은 오히려 지금껏 한국의 박스오피스에서 그와 같은 장르의 영화들이 배척받아온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그것도 극히 마니아적인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첫 주 특정 멀티 플랙스 독점 개봉이라는 제한적인 상영 방식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즈니&픽사의 작품과 나란히 서서 예매율 1, 2위를 다투는 날이 올거라고. 이것이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이하 <귀멸>)의 흥행을 두고 기묘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불꽃' 그 자체라 할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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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귀멸>이라는 작품 자체의 뚜렷한 매력이 가장 본질적인 원동력이긴 할 것이다.


<귀멸>은 일본 현지에서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강점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은 성공적인 극장판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명확한 선악 구도,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단연 돋보이는 최상급의 액션. 그 퀄리티와 비중으로 봤을 때, 제작진은 일반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스케일을 과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정확히 이해한 듯 보인다.


그 결과 만들어진 <귀멸>의 액션은 과연 대단하다. 굵은 외곽선으로 형태를 강조하는 일본의 전통화 ‘우키요에’ 풍의 선 표현이 가미된 화려한 이펙트와 2D와 3D의 적절한 조화로 탄생시킨 극한의 역동성. 액션 시퀀스의 호흡은 최대한 길게, 동선은 가능한 전방위적으로 활용하며 끌어올리는 몰입감까지.


특히 결말에 이르러 펼쳐지는 염주 ‘렌고쿠’와 상현 ‘아카자’의 대결은 액션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법한 타격감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이는 이 극장판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렌고쿠’의 불꽃 그 자체인 캐릭터성에서 기인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유쾌한 등장부터 아련한 퇴장까지, 시리즈의 실제 주인공 탄지로를 압도하며 [슬램덩크]의 정대만, [원피스]의 에이스를 잇는 불꽃 남자의 새로운 계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감과 여운을 남긴다.

 

 

 

아쉬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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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점이 명확한 만큼 단점도 뚜렷하다.

 

기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연장인 만큼 TV 시리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관객들에겐 진입 장벽이 꽤나 높을 거라는 점. ‘살아가고 싶지 않은 현실’과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라는 흥미로운 구도 속에서 무난한 결론만을 내놓은 아쉬운 마무리. 의미는 알겠지만 그 표현 방식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낯간지러운 ‘탄지로’의 마지막 웅변 장면 등 걸리는 구석도 적지 않다.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부터 거론되어왔던 욱일기 논란이나,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에서 느껴지는 일본 특유의 다이쇼 로망 등 영화 외적으로 한국 관객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로컬적인 요소들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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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장판의 흥행은 기묘하고도 반갑다. 물론 이 흥행은 작품 자체의 장단점을 떠나 코로나로 인해 경쟁이 느슨해진 한국 영화 시장, 일본 현지에서의 이례적인 흥행으로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바이럴, 최근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원활한 유입 등 여러 시기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일 테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이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 수용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오타쿠의 문화라는 이유로 배척하기만 해왔던 어떤 것들이, 이번 <귀멸>의 흥행을 시작으로 좀 더 합당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아무리 문화니, 예술이니 해도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실한 수익 모델 및 실적을 제시하는 것일 텐데, <귀멸>의 흥행은 애니메이션 장르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선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믿는 한 명의 팬으로서, 나는 그러한 기대감이 그저 일시적이고 이례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척박하기만 한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활성화로까지 쭉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관객들의 인생 애니메이션 라인업에 디즈니, 픽사, 지브리와 함께 한국의 토종 브랜드가 나란히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며.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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