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인간적인 - 잠수종과 독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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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릿터》 2021년 2/3월호에 발표된 이장욱 작가의 단편소설 「잠수종과 독」이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제목에서 미묘한 기시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장욱 작가의 「잠수종과 독」은 실제로 2007년 프랑스에서 개봉한―그리고 우리나라에는 2008년에 개봉한―줄리언 슈나벨 감독의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이야기를 차용한 메타 픽션이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왼쪽 눈의 깜빡임만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내려간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이장욱 작가는 새로운 문제적인 소설을 완성하였다. 전 세계의 관객을 감동시킨 한 프랑스 영화의 이야기는 이장욱 특유의 소설 구조 속에서 새로운 분위기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 사연 있는 소설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소설가 이장욱에 대한 소개와 함께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대한 소개를 함께 진행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이장욱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장욱 작가는 199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또 2005년에는 문학수첩작가상에 장편소설로 수상하였다. 그는 지금까지도 좋은 시와 소설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어 제도권 문학의 두 분야 모두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장욱의 시와 소설은 오늘날의 한국문학에서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장욱의 작품은 이성적, 과학적 논리로는 접근하기 힘든 감각과 감정들로 수놓여 있고, 특히 그런 측면에서는 그의 소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잠수종과 독」을 발표하기 이전에도 그는 장편소설 『천국보다 낯선』, 단편소설 「유명한 정희」, 「트로츠키와 야생란」 등을 발표하며 소설 속에 다른 작품 혹은 현실의 사건들을 기반으로 메타적인 소설을 완성한 바 있으며, 각 작품들은 오늘날의 소설들로는 범접하기 힘든 새로운 감각세계를 독자에게 선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의 다른 소설작품들에 대해서는 [Opinion] 시베리아의 한기 속으로 - 트로츠키와 야생란 [문학]에서 소개한 바 있다.)


차용한 모티프들로 다양한 문제적 소설을 대중에게 소개해 주던 그가, 이번에는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이야기를 끌어왔다. 《잠수종과 나비》는 패션잡지 《엘르》의 최고 편집자였던 쟝 도미니크 보비가 교통사고 이후 전신 마비 환자로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에서 보비는 의식과 기억 등의 뇌 활동은 모두 정상적이지만, 전신마비로 인해 왼쪽 눈 이외에는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수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을 깜빡이는 것밖에 없는 그를 위해 언어치료사는 눈의 깜빡임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시킨다.

 

보비는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고, 세계 최고의 패션지를 편집해내는 상상력으로 그는 전신마비 환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책 『잠수종과 나비』를 펴낸다. 실제 쟝 도미니크 보비는 책이 출간된 지 열흘 뒤에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잠수종의 삶”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나비처럼 자유로운” 여생을 살아간 보비의 이야기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위안과 감동을 선사하였다.


이장욱 작가의 단편소설 「잠수종과 독」은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이야기로부터 모티프를 가져왔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가 쟝 도미니크 보비의 저서 『잠수종과 나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메타 영화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장욱의 소설은 메타 영화에 대한 메타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잠수종과 나비》가 그리고 있는 감동의 세계는 이장욱에 소설에 와서는 일종의 불편함과 기이함의 세계로 변주되고 있다. “나비”라는 소재가 본래 잠수부를 가두고 있는 다이빙벨의 굴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이장욱의 소설에서 자유로운 “나비”의 이미지는 치명적인 “독”의 이미지로 치환되었다. 그렇다면 소설 《잠수종과 독》은 세계적인 영화로부터 어떠한 전환을 이루어 내었는가. 그러고 그러한 전환은 과연 우리의 마음속 어느 지점을 자극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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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잠수종과 독》은 외과 전문의인 공, 그리고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연인 현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은 5년 전부터 현우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 의학적 지식과 이성적 판단으로 무장한 공과 달리 현우는 세계의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을 포착해내는 감성적인 사진작가이다. 그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며 같은 공간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분쟁 지역에서 사진작가로 활약하며 전쟁의 참상을 사진 작품에 담아온 현우는 극한 환경에서의 활동을 관두고 일상적 장면들로 관심사를 돌리게 된다. 난간에 매달려 베란다 건너편의 화초들을 찍는 등의 일상은 공의 걱정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현우의 모습들은 공의 마음속 공허한 부분들을 채워주기도 한다.


현우는 사진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언론사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종종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역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던 현우는 자신의 목적지인 언론사 건물을 두 블록 남겨두고 건물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현우는 운전 중 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조수석의 카메라를 집어 들었고 카메라에 정신이 쏠린 사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숨지게 된다.


그리고 공의 눈앞에는 혼수상태의 방화범이 누워 있다. 방화범인 중년 남성은 건물 복도에 온통 기름을 뿌리고 스스로 분신자살을 시도하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고는 혼수상태가 되어 누워 있는 것이다. 공은 방화범의 곁에서 그를 치료해주고 있다. 현우가 불타는 언론사 건물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꺼내다가 사망한 장면은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현우의 사망에 대해 이 방화범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공 역시 알고 있다. 공은 방화범을 수사하기 위한 경찰의 압력으로부터 환자를 지키고 있고, 또한 매일 환자의 상태를 세심히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수액을 투여하기 위해 방화범에게 주삿바늘을 꽂는 순간들마다, 공은 현우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


「잠수종과 독」에서 공이라는 인물이 방화범을 대하는 감정은, 층위가 다른 여러 사건과 추억들에 얽혀 있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작품의 충격과 혼란을 가중시킨다. 우선 이 작품에서 가장 전면으로 제시된 공의 감정은 현우에 대한 사랑이다. 현우를 사랑하던 감정, 특히 그의 재기발랄함과 위태로움에 대해 느꼈던 사랑은 방화사건으로 인해 극적인 이별과 상실감으로 전환된다. 방화범에 대한 공의 가장 주된 감정은 사랑을 빼앗긴 데에 대한 원망일 것이다. 한편 언론과 경찰의 요구와 압박에 대해서 자신의 환자를 지켜내야 하는 의사로서의 신념도 있다. 자신이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공부하며 쌓아온 의료인의 가치관으로 이 방화범을 사회로부터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리적으로―그러니까 매일 진찰하고 치료를 하며 시각, 후각, 촉각으로 환자인 방화범을 감각하며―방화범과 형성한 인간적 유대감이 있을 것이다. 사랑의 상실에 대한 분노, 의사의 신념 그리고 인간적 유대가 한 데 합쳐져 공은 이 방화범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인간 깊숙이 머물고 있지만, 문학이 다른 방법론으로는 접근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이장욱 작가는 확실히 인간의 이러한 지점을 잘 포착하는 작가이다. 분노와 신념과 유대감이 혼합된 묘한 감정 속에서 공은 방화범에게 주삿바늘을 꽂는다. 이러한 독특한 소설 구조는 이장욱 작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고, 이 ‘이장욱스러운’ 구성이 궁극적으로 이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그 복합적인 감정에 분노와 신념, 유대감이 들어있다고 표현하였지만, 사실 신념이라는 것은 분노 혹은 유대감과는 약간 다른 층위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분노 혹은 유대감은 일차적으로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접촉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누워있는 환자의 앞에 서서 온갖 감정을 느끼고 있는 공의 모습이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쩌면, 오랜 시간 훈련되어 온 ‘신념’이라는 것이 해체되어 버리고 인간적인 분노 혹은 유대감이 더욱 강하게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한편, 방화범의 입장에서는 현우가 사망하게 만들 의도가 전혀 없었고 건물 방화와 현우의 사망 사이의 연관관계가 굉장히 약하게 느껴질 것이다. 현우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자신의 재기발랄함과 도전의식이 스스로를 방화범의 불 속으로 몸 던지게 만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렇다면 공의 분노는 무엇을 향한 것인가. 방화범의 범죄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과 방화범이 매일 함께해야 하는 상황을 향한 것인가. 혹은 현우와 현우의 위태로움과 현우의 추억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감정이라는 것은 방향을 가진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성과 논리는 세상의 현상들을 인과관계 혹은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렇게 설명되기 힘든 현상들, 감정들도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순간에는 이성과 신념이 해체되고 오직 감각에 의한 일차적인 감정들만이 남는 것이 아닐까.


*


이장욱 작가의 소설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첫 번째는 감정의 발견이다. 분노나 살의, 도취 같은 감정들은 일반적으로 탈일상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장욱의 소설 속에서 이러한 감정들은 너무나도 그럴듯하게 그려진다. 평소에 미처 신경쓰지 못한 인간의 감정을 이장욱 작가가 한 번씩 지적해주는 것을 읽고 있으면, 내 자신의 생활과 감정과 감각을 더욱 세심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장욱의 매력 두 번째는 일상의 붕괴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성과 논리를 토대로 세워진 것이다. 현대사회는 특히 첨단 기술과 대규모 정보를 바탕으로 굴러가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정확한 정보와 빠른 속도에 대해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가령 최근 잇달아 등장하고 있는 유명 스포츠인 및 연예인의 학교폭력 이슈의 양상을 보면, 개인의 과거와 현재가 샅샅이 분석되고, 잘잘못의 판단은 스포츠 기록지를 읽듯이 사실과 사실을 개연적으로 연결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공방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치부되는 것은 제기된 사실의 진위여부이다. 폭력 사건 참여자들의 감정은 객관적 사실에 가려지고 실제로 존재했을 참여자들의 감정은 언론 및 대중적 담화 생성자들의 임의적 사실 해석으로 대체된다. 객관성과 사실 판단에 대한 집착은 감각과 감정 차원의 논의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것의 결과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삶과 사회를 지향할 자유가 있지만, 오늘날의 사회현상에서 감각과 감정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들이 점차 외면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장욱의 작품은 이성과 객관성의 논리 위에 세워진 현대 사회의 흐름에서, 스스로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금 점검해 줄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모든 문학, 그리고 모든 인문학이라는 것은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깊이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장욱 작가의 소설이 특별한 것은, 우리의 눈앞에서 이성과 객관성의 상아탑적 질서를 분해하여 독자의 감정과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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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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