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초엽 작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도서]

글 입력 2021.03.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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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그랬다. 지구에서 태어나서 지금도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지만, 가끔은 가본 적도 없는 우주를 떠올리며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분명 태어나서 지금의 나이가 되기까지 매해 한순간도 건너뛰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이 담긴 사진을 보며 어색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희미해져 버린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중의 하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왜 화장실인지는 모르겠다... 그 장소가 사색하기 좋은 장소일 수도 있겠다)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던 것이다. 나는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라 나의 기억에 등장하는 집 구조를 떠올리면 언제 기억인지 알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2~13살 때이다. 초등학교를 곧 졸업할 나이인데 이때까지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니... 어쩌면 내가 철학을 공부하는 편이 적성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초등학생 때 떠올렸던 나의 존재에 관한 생각의 내용이 이제는 떠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으니 분명 반짝이는 생각이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내가 나이 들면서 잊어버렸다는 게 속상하다. 존재에 대한 고뇌의 시간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이어졌는데 다행히 상대적으로 최근 기억이라 당시 내가 상상한 세계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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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작은 사람이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한다. 마음대로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자르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멋대로 죽인다. 손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도구를 사용하더니 이제는 화학적 지식으로 존재하지 않던 물건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렇게 탄생한 재료들은 자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구에 쓰레기로만 남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과연 그렇게 대단할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사람들은 지구에서 열심히 일한다. 각자의 꿈을 찾아 좇기도 하고, 평균적으로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에 관심을 가졌다. 세포들은 어떠한가?

 

사실 난 한순간도 세포인 적이 없다. 아니 나는 내 몸속 세포인 적이 없어서 그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에게 세포는 생물 시간에 배운 매일 교체되는 존재이다. 하지만 분명 세포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건 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그 증명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세포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사람이 또 다른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생명체의 세포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매일 지구 밖, 우리 은하계 밖 우주에 대해 탐구하고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인식 영역 밖에 사람보다 더 거대하고 높은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구에서 왕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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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개의 SF 장르 단편소설이 모인 책이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책이고 주위로부터 자주 추천받은 책이지만 나는 직접 표지를 열어보기 전까지 단편 소설집인 줄 모르고 있었다. 7개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과 상황이 존재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눈팔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현실에서 벗어난 김초엽 작가의 내용 설정이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소설이 모두 같은 정도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가진 생각과 비슷한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이면 더 집중해서 읽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각 소설이 기억에 남고 여운이 남는 정도는 달랐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면서 소설 밖 내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상상하는 것을 즐기지만 책을 읽을 때는 작가가 전달하는 바만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때로 반대의 의견이 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머릿속에서 혼자 작가와 나의 타협점을 찾아 텍스트를 내면화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나에게 조금 특별했다. 인물들에 집중해서 읽어서인지 나의 상상을 곁들이고 싶었다. 특히 한 작품이 그러했고, 또 하나의 작품은 나의 정서와 잘 맞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나의 상상을 부른 작품은 책의 제목은 <관내분실>이다. 책에 담긴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리움'이 녹아 있는데 이 작품이 유독 그렇다. 나와 잘 맞았던 소설은 <공생 가설>이다. 너무 현실적이라 실제 내가 사는 세상에 '류드밀라의 행성'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 때마침 발견한 행성이 큰 역할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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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분실>


  

죽은 엄마의 마인드 데이터가 보관된 도서관에서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인덱스가 사라졌다. 도서관과 연결될 수 있는 인덱스를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딸은 생전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책을 읽으면서 '김은하' 씨가 다시 연결되기 진심으로 바랐다. 동시에 만약 내가 '김은하' 씨처럼 고유의 물건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살면서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상상을 가장 자극한 내용은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었다. 우선 실제로 구현이 가능한 것인지에 관심이 갔다. 책에서는 아직 해당 사람의 재현에 그치는 기술이라고 설명되는데, 실제 사람이 사고하면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컴퓨터 데이터상으로 옮기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었다. 궁금함과 함께 소설의 내용과 관련된 작품으로 <이어즈 앤 이어즈>가 떠올랐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가까운 미래에서부터 먼 미래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실성 있는 미래의 모습을 영상으로 그려낸 영국 드라마이다. 작중 한 캐릭터는 '트랜스 휴먼'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디지털화에 대한 가능성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몸이라는 물질적인 형체가 없이도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관내분실>에서는 도서관에 머무르는 데이터들에 누군가가 접근을 해야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럴싸한 재현을 넘어서서 사람 그 자체를 데이터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이 물질적인 몸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면 자극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데이터가 된 사람들을 위한 다른 세상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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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가설>



오피니언을 준비하며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한 잡지에서 이 책을 읽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공생 가설>이라는 내용을 보았다. 초등학생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같았다는 게 묘한 기분이 들면서, 사람의 어린 시절에 대한 상상을 작가가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7편의 소설이 모두 그러했지만, 특히 이 작품은 나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실제라고 한다면 오래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고 자연스레 믿게 될 것 같다. 소설의 초반 부분까지 읽었을 때는 류드밀라가 평범하지 않은 소녀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던 과거를 기억하는 아이라거나, 미래에서 온 아이이지 않을까 상상했다. 김초엽 작가는 어쩌면 독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야기를 읽을 줄 알았던 것 같다. 상황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7살 때까지의 기억을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유년기 기억 상실'을 인간 뇌에 '그들'이 남긴 흔적으로 연결 지어 이야기가 전개될 때, 나는 어느새 내가 읽는 것이 소설임을 잊었다.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은 외계성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니라는 주장에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없을 것이다. 소설에 설정된 값들이 모두 놀라웠지만 난 '그들'이 류드밀라를 선택한 이유가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다.


아주 고독했던 류드밀라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녀는 천부적인 미술 실력을 지녔다. 어릴 때부터 그녀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도 '그들'이 류드밀라 곁에 오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그들'이 옆에 있음으로 류드밀라는 혼자였지만 홀로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류드밀라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느낄 수 있고, '그들'은 그녀의 창작물을 통해 수만 년 전에 사라진 행성을 멀리서나마 기억하고 그리워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기에 '그들'은 류드밀라 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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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의 행성'이 떠오르는 실제 행성 'TOI 1338 b'

 

 

* * *

 

책을 읽는 내내 김초엽 작가가 상상한 세계를 글을 통해 나도 함께 그려볼 수 있어서 몹시 즐거운 경험이었다. 특히 모든 소설이 현대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로 현실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SF임에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친숙한 분위기를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이런 특징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나이에 상관없이(초등학생도)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인 상상을 해보는 것.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독자인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던 것이다. 상상의 시작과 기본 전제를 소설의 내용으로 접해 보니 책에서는 진행하지 않았던 혹은 더 서술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그려보는 게 어렵지 않고 즐거웠다. 책의 영향력 중의 하나로 다른 이의 상상력에 자극이 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전문 과학지식이 많이 녹아있는 책이었지만 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뜨거운 예민한 감정을 지녔다. 책 내용에 빠져서 잊고 있던 사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 작가의 데뷔작이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믿을 수 없는 그녀의 창작 능력에 감탄하고 소설의 전문적인 디테일에 감격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읽고 있었다.

 

그나저나 책 표지가 이렇게나 예쁠 줄이야. 시각적인 자극이 책을 선택하는 것에 중요한 요소이긴 한 것 같다. 솜사탕처럼 연한 분홍빛과 푸른빛, 보랏빛 그리고 초원의 초록빛이 조화롭게 아름다운 책의 표지는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오늘 하루가 책처럼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명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슬렌포니아에 먼저 도착한 안나의 가족이 떠오르는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

 

 

너와 나 사이의 우주를 건너 내게로

would you like to come over to me


너와 나 사이의 우주를 건너 내게로

날아 와줘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마

 

우주를 건너(2015) - 백예린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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