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침대에서 감상하는 루브르 1일 1작품 - 63일 침대맡 미술관

글 입력 2021.03.0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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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관람하는 루브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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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감상에는 정답이 없다. 미술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작품 감상은 취미의 영역에서 다뤄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원론적인 까닭은 미술작품의 범위가 극도로 넓다는 것에 있다. 역사적 사료가 되는 동굴 벽화부터 자유로운 독해가 강조되는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을 감상하는 방식은 작품의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한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배워온 미술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9세기 이전의 서양미술사라면 어떨까?
 
도서 <63일 침대맡 미술관>의 저자 기무라 다이지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루브르미술관에서 소장된 6,000여점 이상의 유럽 회화 가운데 각 국가와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선별해 미술사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법’을 소개한다. ‘보는 법’이나 ‘느끼는 법’이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법’이다.”

- <63일 침대맡 미술관>, p.5
 

 

그 이유는 서양 회화는 종교화에서 발전했으며 주로 종교적 가르침이나 정치적 메시지, 신화를 전달하기 위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브르미술관의 소장품들 역시 대부분 13세기에서 19세기 중반 사이에 그려진 회화이므로, 저자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읽기’ 위해 그려진 작품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작품의 미적 감상보다는 그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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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일 침대맡 미술관>은 서양미술사의 근간을 이루는 유럽 회화를 63일간 하루에 한 점씩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침대맡’에서 읽기 적합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와 그림과 설명이 한 페이지씩 짝을 이룬 구성이 인상적이다. 책의 목차는 루브르미술관의 역사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회화, 프랑스 회화, 스페인 회화, 플랑드르 회화와 네덜란드 회화 순으로 이어진다. 시기적으로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조로 구분한다면 르네상스부터 신고전주의까지를 아우른다.
 
 
 
책 펼쳐보기

 

우리에겐 유럽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루브르는 본래 센강의 서쪽 하류에 자리한 요새였다. 12세기 말에 지어진 루브르는 요새뿐만 아니라 보물고나 문서고,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훗날 샤를 5세는 이곳을 후기 고딕 양식으로 화려하게 개조했고, 16세기에 프랑수아 1세가 루브르성을 정식 왕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대대적인 건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루브르는 왕궁이 아닌 예술과 과학의 전당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 이후인 1793년, 드디어 구 왕가의 미술 수집품이 루브르에서 공개되면서, 미술관으로서의 루브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유럽의 역사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의 시작과도 맞닿아 있는 루브르미술관, 이곳의 소장품을 본격적으로 감상해보자. 루브르미술관의 소장품 중 한 가지만 뽑으라면 단연 <모나리자>일 것이다. 설사 <모나리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회화를 떠올릴 듯하다. 그러나 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처럼 웅장하거나, 프랑스의 로코코처럼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소박한 매력이 있는 네덜란드 회화에 집중해 리뷰해 보려고 한다.
 
네덜란드의 황금기는 17세기였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발달한 해상무역을 통해 상업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 역시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네덜란드만의 독자적인 특색을 구축했던 장르는 풍속화와 정물화였다. 그러나 서구 미술계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가장 낮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천한 장르로 취급받았던 풍속화와 정물화가 네덜란드 회화의 정체성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네덜란드의 국교가 프로테스탄트 신교였다는 점이다. 종교화를 포함한 성상을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는 종교개혁과 맥을 함께했고, 네덜란드가 채택한 칼뱅파는 십계명에 입각해 성상을 제작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활발히 그려졌던 종교미술이 네덜란드에서는 금지되었고, 자연스럽게 종교화 이외의 다른 장르가 발전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상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회화 시장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그림을 구입했고, 집에 걸만한 그림으로는 작은 크기가 적합했다. 또한 이들은 역사화보다는 풍속화나 풍경화, 초상화 등을 선호했기 때문에 시민계급의 수요에 발맞추어 미술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풍속화 및 정물화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그 속에 함축된 다양한 메시지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초상화 역시 크게 발달했는데, 이 역시 생생한 분위기에서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네덜란드 회화의 매력을 책에 실린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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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스 할스, 류트를 연주하는 어릿광대 Le Bouffon au luth, 1624-1626년경, 70*62cm, 캔버스에 유채
 
 
가장 먼저 프란스 할스의 <류트를 연주하는 어릿광대>(1624-1626년경)이다. 초상화가로 인기를 누렸던 그의 그림에서는 세속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 역시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류트를 연주하는 어릿광대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기의 네덜란드 풍속화 속 미소는 절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므로, 어릿광대의 미소 역시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삶의 허무함과 부질없는 쾌락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네덜란드의 상징주의적인 정물화, ‘바니타스’와 연결된다. 바니타스(Vanitas)란 라틴어로 ‘공허’를 의미하는 단어로, 바니타스 정물화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골이나 촛불, 꽃이나 과일 등은 유한한 삶 혹은 죽음을 암시하는 소재다. 바니타스 회화는 결국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짧은 삶을 성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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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데 헤엠, 디저트가 있는 식탁 Een tafel met desserts, 1640년경, 149*203cm,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한 대표적인 바니타스 정물화는 얀 데 헤엠의 <디저트가 있는 식탁>(1640년경)이다. 앞서 살펴본 <류트를 연주하는 어릿광대>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류트는 회중시계와 함께 공허함과 인생무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식탁에 수북이 쌓인 과일 중 사과는 원죄를, 포도는 속죄를 의미한다. 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과일과 화려한 식기는 아름답게만 보이지만 그 의미를 알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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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르 더 호흐, 술 마시는 여인 La Buveuse, 1658년, 69*60cm, 캔버스에 유채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품은 피터르 더 호흐의 <술 마시는 여인>(1658년경)이다. 화면 중앙부에 빨간 치마를 입은 여성이 술잔을 든 채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의 발치에는 잠든 강아지가, 뒤에서는 한 남성이 술을 따라 주고 있으며 가슴에 손을 얹은 나이 든 여성도 등장한다. 그림의 왼편에는 모자를 쓴 병사가 파이프 담뱃대를 들고 식탁에 앉아 있다.

 

얼핏 보기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오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은 매춘에 대한 비난을 담은 작품이다. 빨간 치마를 입은 여성은 술에 거나하게 취한 매춘부이다. 그 사실은 그림 속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네덜란드 회화에서는 그림 속의 그림 역시 작품의 내용을 읽어내는 데 중요한 요소인데, 그림 속 벽 오른편에 걸린 것은 ‘그리스도와 간통녀’를 주제로 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즉 그림 속 장소는 매춘 소굴이며 나이든 여성은 매춘업을 중개하는 인물, 왼편의 병사는 고객인 셈이다. 결국 이 그림 역시 육체적 욕망과 쾌락의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

 

미술 작품을 설명과 함께 감상하는 방식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63일 침대맡 미술관>은 루브르미술관의 소장품을 주제로, 그 안에서도 서양미술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훑을 수 있는 작품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어떤 미술관보다도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루브르미술관이기에 가능한 주제였다. 실제로 작품의 목차를 훑어보면 미술사 교과서에서 다루는 화가들의 대표적인 작품이 한눈에 정리되어 있어 루브르의 컬렉션 규모를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누워서 보는 루브르 1일 1작품’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텍스트의 양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길이로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에 작품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담다 보니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배경지식이나 화가에 대한 소개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좋은 화질과 색감으로 인쇄된 도판이 바로 옆에 실려 있는 만큼 작품의 디테일에 대한 설명이 더 풍부했다면 어땠을까? 또한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서적에 걸맞게 설명의 어투가 조금 더 친근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63일 침대맡 미술관>은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서양 회화의 계보를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정리하고 있고, 그 예시가 되는 작품을 모두 루브르에서 만나볼 수 있기에 파리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추천할 만하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루브르로 향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

 

63일 침대맡 미술관

- 루브르 눕눕 미술관 -


지은이 : 기무라 다이지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분야
미술일반/교양

규격
140*200 / 양장

쪽 수 : 204쪽

발행일
2021년 01월 28일

정가 : 16,000원

ISBN
978-89-475-4686-7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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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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