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13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의 회화이므로 틀림없이 '읽기' 위해 그려진 작품이 많다. (5쪽, 서문)
이 책은 "보는 것이 아닌 읽고 이해하는 미술"을 강조하고 있다. 왜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13-19세기 중반의 회화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심상을 담아내는 단계 이전의 미술은 더욱,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며 읽어야 한다.
이 시기 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장르의 히에라르키hierarchy'다. 그림 주제에 위계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성서나 신화를 주제로 한 역사화는 최상위 예술로 대우받았지만, 인물화나 풍속화, 풍경화나 정물화는 보다 하위의 장르였다. 이 맥락에서 그림을 보아야 그 가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위계는 점점 무너진다. 역사의 흐름과 미술의 주제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책에서는 루브르미술관 속 그림을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플랑드르-네덜란드 회화로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설명한다.
유럽은 긴밀히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역사를 썼다. 각 나라의 역사를 개괄 후 해당 국가의 작가와 작품에 관한 설명을 하나씩 볼 수 있는 구조다. 아래 리뷰는 각 나라의 미술사적 특징을 요약하며 썼다.
0. 루브르 미술관의 태동
루브르 미술관은 12세기 말, 파리를 지키는 요새로서 탄생했다. 센강의 서쪽 하류 출입구에 외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건축된 요새가 루브르다.
이후 14세기 샤를 5세에 의해 후기 고딕 양식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백년전쟁 이후 프랑수아 1세에 의해 루브르성을 정식 왕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수아 1세는 현재 루브르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집의 토대를 구축하여, 프랑스의 문화 수준을 높인 주역이기도 하다.
이후 루이 14세에 왕궁은 베르사유로 이전되었고, 프랑스 회화가 크게 발달했던 17세기를 지나 계몽주의를 맞은 18세기, 루이 15세에 대중의 목소리에 따라 왕실에서 소장한 미술품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수차례 증축과 개축을 마친 루브르미술관은 19세기에 들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 이탈리아 회화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교 미술이 성행한다.
본래 그림도 우상으로 간주되었지만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가르침의 도구로서 '눈으로 보는 성서'인 그림은 허용되었다. 이게 바로 이콘이다. 비잔틴 미술을 특징짓는 이콘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었지만, 이것 마저도 8-9세기에 일어난 성상 논쟁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11세기 무역으로 인한 도시경제의 발달은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기를 데려오며,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 중심의 시선이 꽃을 피웠다.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 예술가를 통해 부흥을 맞는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는 3대 예술 도시라 볼 수 있는데 각 도시에서 부흥한 화풍을 중심으로 그림을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17세기 로마의 바로크 미술은 라파엘로를 시조로 고전파와 혁신파로 나뉘었다. 혁신파의 중심 인물이 카라바조였는데, 그의 영향은 대단해서 추종자들이 생길 정도였다. 대표적인 예로 루벤스가 있다. 하지만 니콜라 푸생처럼 카라바조의 양식에 의의를 제기하는 화가도 있었다.

2. 프랑스 회화
프랑스는 17세기가 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회화의 시대를 확립했다. 당시 로마의 바로크 미술이 유럽을 석권하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독자적인 고전주의를 확립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집권한 절대왕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로마에서 활동한 니콜라 푸생이 주창한 지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화풍은 프랑스 미술의 규범이 되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 장 앙투안 바토를 선두로 여성적인 문화, 로코코 회화가 나타났다. 이는 프랑스의 고전주의와 대립되는 양식이었다. 푸생파와 대립하는 루벤스파도 등장하였다. 앞서 푸생은 카라바조 양식에 의의를 제기한 반면 루벤스는 그 양식을 연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 대립은 예견된 일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신고전주의 시대를 맞이하며 이성 중심으로 바뀌는 듯 하다가, 19세기 낭만파의 등장으로 다시 감성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생긴다. 이처럼 프랑스 회화는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가며 발전해나갔다.
이 양상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후 등장하는 사실주의, 인상파 등 예술운동의 전조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파리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된다.

(니콜라 푸생,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1638-1640년)
3. 스페인 회화
스페인 회화의 황금기도 17세기였다. 대표적인 화가로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 등이 있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로마의 루벤스와 친구처럼 지내며 그에게서 바로크 회화를 배워 양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시 스페인은 매우 엄격한 가톨릭 사회였기에 누드화를 그리는 건 금지였다. 벨라스케스는 이 제약을 큐피드처럼 신화화로 극복했다. 이후 루이 14세의 앙주 공작 필립이 펠리페 5세로 즉위 후 스페인의 궁정과 예술 문화는 프랑스처럼 변해갔다.

4. 플랑드르 회화
플랑드르는 지금 벨기에 전역을 가리킨다. 15-16세기 경제가 발전하며 플랑드르 지방의 예술과 문화도 발전했다. 대표 화가로 얀 반 에이크,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있다. 특히 루벤스는 화가로 활동하는 초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내며 최신 예술을 배운 다음 플랑드르에서 궁정화가가 되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 리옹에서의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 1622-1625)
5. 네덜란드 회화
네덜란드의 미술은 17세기 황금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예로 렘브란트가 있으며 그는 사회적 계급이 높은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성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반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처럼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도 등장했다. 하지만 17세기 말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으로 네덜란드 회화의 봄은 끝난다.

여행은 고사하고 전시든 공연이든 문화생활의 길이 막힌 요즘, 이 책으로 루브르의 그림을 '누워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조금 위로가 된다. 언젠가 루브르에 가고 싶다. 원화 앞에 서서, 이 책에서 본 내용들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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