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가 봄을 데리고 온다 -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시인 나태주가 엮은 명시 모음집
글 입력 2021.03.03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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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 푸시킨, 랭보… 참 익숙한 이름들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들. 언젠간 꼭 읽어보고 싶어서 메모장 뒤편에 적어 놓고 잊어버린 이름들.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에서는 이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시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일상도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모든 순간이 시어를 통해 표현되면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 나태주 시인이 엄선한 120편의 국내외 명시를 통해 잊고 있던 감각을 깨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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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각 부분을 대표하는 시가 제목으로 선정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기에’, ‘서러워 마라 머지않아 때가 온다’, ‘희망에는 날개가 있다’. 익숙한 제목도 보인다.

 

모든 시에 나태주 시인의 덧붙이는 말이 함께 한다. 시 자체에 대한 감상, 시와 관련된 나태주 시인의 기억, 시인에 대한 생각 등. 짧은 글을 통해 나태주 시인과 잠시나마 연결된다. 덕분에 한 편의 시를 읽더라도 더욱 풍성한 감상을 즐길 수 있다.

 

다음은 인상적인 세 편의 시를 소개해볼까 한다.

 

 

 

나의 형 미겔에게 - 그의 죽음에 부쳐


 

 

형! 8월 어느 날 밤에

형은 새벽녘에 숨었어.

그런데 미소 지으며 숨는 대신 우울해 보였지.

가버린 시절, 그 오후의 동생인 나는

지금 형을 못 찾아 마음이 무거워졌어.

벌써 어둠이 영혼에 가득한걸.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약속해, 엄마가 걱정하시잖아.

 

세사르 바예호

 

 

이 책에서 가장 슬픈 시다. 나태주 시인의 덧붙인 말에 따르면, 시인의 형이 자살하던 밤에 시인이 적은 시라고 한다.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은 밤, 작은 일탈을 할 생각에 슬며시 미소 짓는 아이와 슬픈 눈을 하고 숨을 곳을 찾는 아이가 보인다. 경험해본 적 없는 시간이지만, 시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초대했다.

 

 

 

네 가지 물음


 

 

무거운 건? 바다 모래와 슬픔

짧은 건? 오늘과 내일

약한 건? 꽃과 젊음

깊은 건? 바다와 진리

 

크리스티나 로제티

 

 

나태주 시인은 이 시를 독백이지만 대화의 내용이라고, 그것이 시의 근본이고 대화의 근본이라고한다. 그는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데 그것이 살아 있음의 증거라고 덧붙였다.

 

존재자로서의 고독과 슬픔을 대변하는 시같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무거운 명제가 가볍게 풀어진 순간이다. 한껏 무거울 수도, 한껏 가벼울 수도 있는 게 시의 매력이다.

 

 

 

봄 같지 않은 봄


 

 

오랑캐 땅에 꽃이 피지 않으니

봄이 와도 통 봄 같지 않아요

허리띠 저절로 헐거워진 것은요

몸매를 위해 그러한 것이 아니랍니다

 

동방규

 

 

마지막으로 뽑은 시는 순전히 나태주 시인이 덧붙인 말 때문이다. ‘봄이 와도 통 봄 같지 않아요’를 두고 옛사람들은 한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뜻도 모르고 최예근의 ‘춘래불사춘’이라는 곡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시 덕분이다.

 

*

 

벌써 3월이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왔다. 시가 봄을 데리고 온다. 머지않아 피게 될 봄꽃을 기다리며 시를 읽어야겠다.

 

다음은 나태주 시인의 말이다.

 

계절이 바뀌면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아니다. 바람이 계절을 바꾼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 그래, 기다려보자. 언젠가는 좋은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오직 이 한마디를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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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태주가 국내 명시 114편의 눈부신 위로를 담은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에 이어, 해외 명시 120편의 가슴 벅찬 감동으로 엮은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를 펴냈다.
 
춥고 가난하기만 했던 시절. 1959년의 소년 나태주가 서천중학교 3학년 시절에 교실 복도의 벽 게시판에 붙어 있던 시를 보고 시인의 꿈을 품었던 유장경의 [설야]부터 고교 시절 김춘수 시인의 편집으로 읽은 아이헨도르프의 [산에서], 한 구절 읽다 보면 속수무책 눈물부터 솟게 하는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괴테의 [옛날을 생각함], 지금은 곁에 없는 어머니를 향한 고백으로 세상에 남겨진 모든 자식들의 아픈 마음을 대변하는 헤르만 헤세의 [높은 산속의 저녁] 그 외에도 지구 곳곳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출과 일몰에 대해 태양을 배턴 터치한다고 표현한 다니카와 슌타로의 [아침 릴레이]까지. 나태주 시인의 해설은 시보다 더 시적으로 다가오는 '나태주만'의 청량한 시적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시절 사랑의 감정을 품어본 적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잘못 초대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하는 시인 나태주의 울림 가득한 해설은 그 자체로 한편의 시적 잠언(箴言)이며 명상 언어이고 또한 아름다운 생의 금언(金言)이다.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가 격 14,500원

엮은이 나태주

펴낸날 2021년 1월 29일

판 형 117*198㎜

분 량 264쪽

ISBN 979-11-91209-80-8 03810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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