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무중력의 사람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0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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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감은―매일 해가 진다는 것을 알리는―

잔디밭의―저 기나긴 그림자―

화들짝 놀란 풀잎에게 어둠이―

막 지나가리라는 것을―알려주는 기별―.

Presentiment―is that long Shadow―on the Lawn

Indicative that Suns go down―

The Notice to the startled Grass

That Darkness―is about to pass―


『무중력의 사람들』 p.39 中

 


위의 시는 현대 영미시에서 모더니즘 시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여겨지는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의 「예감 Presentiment」이다. 예감이라는 눈앞에 일이 벌어지기 이전에 찾아오는 감각 같은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적어놓듯이, 해가 지기 전에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이 느껴지고 어둠이 지나갈 때 잔디는 징조를 느낀다.


이 짧은 네 줄의 운율 속에서 ‘예감’이라는 막연한 감각은 선명해진다. 예감은 추상적인 직감이자 감각인데, 에밀리 디킨슨의 표현 속에서 ‘예감’의 정체가 물질적이고 논리적인 현상들보다 더욱 명확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예감」은 근대의 세계관을 점령한 (과학과 역사로 대표되는) 이성적인 힘을 뒤로 하고 감각과 감성의 세계를 정면으로 가져온 것이고, 인간의 감성을 복구하고자 하는 모더니즘의 움직임이 여기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가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장편소설 『무중력의 사람들』 속에서 공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어떤 ‘예감’들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감각들이 이 소설의 장면들을 연결해갈 수 있는 것일까.

 

 

무중력의 사람들.jpg

 

 

 

2.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작품 속에서는 현실의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이 서로 엉켜 이야기를 조직한다. 에즈라 파운드, 루이스 주코프스키, 힐베르트 오웬 등, 20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의 시인들과 오늘날 맨허튼에서 거주중인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교차되며 제시된다. 그런데 각자의 시간, 각자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물들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중첩되는 모습을 보인다.


30대 여성 주인공은 보고타 출신의 문학인으로서 출판사에서 일하며 원고작업을 하고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개의 언어와 문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녀는 20세기 시인인 오웬 힐베르트의 기록들을 추적한다. 그녀는 두 개의 시대와 두 개의 언어권이 중첩된 생활을 이어나간다.

 

한편 그녀의 일상은 가정에서의 생활과 원고 업무로 이루어져 있고, 원고 업무를 하는 시간 동안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동거인들, 직장 동료들과의 추억 속을 더듬어 나간다. 이러한 소설적 형식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는 독자적인 시간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각 이야기는 묘한 연관성을 바탕으로 중첩되고 혹은 합병되기도 한다. 결국 『무중력의 사람들』 속에서 상이한 시간과 사건들이 융합되고 구별불가능해지는 지점들이 포착된다.

 

 

 

3.


 

소설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에게는 절대적인 선인 혹은 악인의 역할이 부여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대와 장소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서술자도 수시로 변한다. 맨 처음에는 주인공의 목소리로만 나타나던 소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목소리, 더 나아가 시인 오웬의 목소리로 진행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1인칭 서술을 수용하면서 주인공의 말만을 곧이곧대로 믿던 독자들은 서술자가 바뀌면서 주인공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주인공의 말을 끝까지 믿을 수도 있고 소설 속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사실의 여부, 다시 말해 현상의 객관성과 정당성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다만 각 인물간의 관계, 유사성과 상이함, 그리고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는 특유의 방식만이 중요한 것이 된다.


이러한 획기적인 관점은 소설의 작품성에 있어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굉장한 시사점을 가진다. 우리는 (예컨대) 사회적 현상이나 인간관계를 이해할 때, 겉으로 명확하게 보이는 사건들의 진위 여부를 중심으로 심판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누구의 손에 돈을 쥐어주는 정책인가,하는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인간 관계에서라면 누구의 어떤 행동 때문에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말 그대로 최종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특정한 형식의 사회적 관계망, 혹은 (미시적으로는) 가정환경과 성장과정에 의한 결과인 것이다.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이전에 놓여있는 배경, 그리고 그로부터 찾아오는 ‘예감’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배경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묘한 분위기나 (소위) ‘쎄한’ 느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감각적인 정보에 사실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이고, 그곳에 민감해져야 더욱 다각적이고 풍성한 삶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4.


 

소설의 감각적 분위기를 즐기는 독서를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그로부터 의미를 도출하려고 한다.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말하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라는 것이 특히 대표적이고, 이럴 때 어떠한 의도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소설을 읽어 가게 된다. 당연히 소설을 읽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고 각각의 방법에 대해 정답이나 오답은 없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문학비평 이론가들이 수 세기 동안 다루어온 문제이고 그들 역시 (신비평부터 독자 반응 비평까지)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어, 현대에는 어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다만 정답을 찾는 식의 한 가지 방법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현대사회는 인간으로 하여금 즉각적이고 명확한 피드백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점점 빠른 속도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학교, 언론,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논리적 명확함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성적 흐름에 대한 20세기 모더니스트들의 대항이 무화된 현장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말하는 ‘예감’을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오늘날의 소설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조로운 현실을 극복하고 감각적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독서 방식을 경험할 수 있길 바라고,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무중력의 사람들』이 그러한 경험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발레리아 루이셀리.jpg
발레리아 루이셀리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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