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글 입력 2021.02.2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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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이자 21세기 IT 혁명을 이끄는 트렌드 리더의 자리까지. 인류사를 통틀어 오랜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는 사과의 그림자에 주목하라.

 

YJK 댄스프로젝트의 신작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사과'를 소재로, 선악과로부터 스마트폰(애플)에 이르까지 사과와 함께 진행되어온 '사람'에 조명하는 창작 무용극이다.

 

*

 

아날로그적인 스케치 그림으로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튼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시작된다.
 
인간들이 만든 작은 에덴 동산. 사과를 상징하는 등을 들고 나오는 뱀은 아담과 이브에게 사과를 건네고 아담과 이브는 결국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는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 현대인이 사과를 받고 세상에 나온다. 그들은 쉽게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히고 그들은 에덴동산을 짓고 허물고 짓고 허물고를 반복한다.
 
인터넷 세상의 인간들과 AI. 그들은 서로의 시선을 뺏고 빼앗기며 현대사회에서 쉽게 끌려가고 또 끌어 당기는 정보 사회의 현대인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쏟아지는 정보 사회 속에 눈에 보이는 것들에 쉽게 매료된다. 세상은 어쩌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자기들을 봐 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결국 그들은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어린아이가 사과를 가져와 베어 물고 여자가 되고 노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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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2020 ArkoCreate / ⓒ Sang Hoon Ok

 

 

극의 시작은 아담과 이브. 뱀이 주는 선악과를 먹고 현대인이 된 인간들은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AI로 상징되는 스마트폰에 매료된 그들은 스마트폰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다.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내리는 피드의 알고리즘을 서핑하는 동안 그들의 관심은 너무나도 쉽게 바뀌어버리고 우연한 만남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상황들이 반복된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진정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각자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행복이란 실은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음을, 하지만 스마트폰에 갇힌 그들은 쉽사리 AI의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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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2020 ArkoCreate / ⓒ Sang Hoon Ok

 

 

사과를 소재로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연결하는 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극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공연을 보기 전부터 소재에 무척 호기심이 생겨 있던 상태였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갭을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

 

더불어 질문형의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까먹었을까?'의 의미가 무엇일지 혼자 곰곰 생각해 보며, 까먹다의 중의적인 의미를 떠올렸다. 1) 무언가를 까서 먹다. e.g.) 사탕을 까먹다. / 2) 알고 있던 것을 잊어버리다. e.g.) 나와의 약속을 까먹은 거야? (분노)


둘 중 극에서 말하는 '까먹다'는 무슨 의미에 더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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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시놉시스의 흐름에 충실했다. 시놉의 플로우를 따라 전개되어서 직접적인 설명 없이 행위 위주로 표현되는 무용극이었음에도 이해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전개가 다소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시놉에 등장하는 중간 과정이 빠진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감상일 수 있지만 막과 막이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작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극 자체에 깊이 빠져들지는 못했던 것 같아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음악 덕분에 전반적으로 극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음악과 무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쾌감은 극을 감상하는 묘미였다. 더불어 중간중간에 영상을 삽입한 덕분에 극이 더욱 풍성하게 다가왔다. 적은 분량이었지만, 무용극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있었다는 것 역시 기억에 남는 지점이다.

 

대부분의 무용극은 대사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본 극에는 문답형 대사와 독백형 대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문답형 대사의 경우, 동일한 문답을 다른 무용수들이, 다른 시점에서 진행하였는데 함께 관람을 했던 동행의 말을 빌려 '동일한 질문임에도 시대에 따라 그 질문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된다'라는 것을 상징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극 중 A와 B가 눈을 맞추고 걸어가고 있는데, C가 등장하자 순식간에 A가 자신의 시선을 B에서 C로 옮기는 장면이 있었다. 모든 무용수들이 공연했던 장면이었는데, SNS 피드를 휙 휙 내려가며 이 콘텐츠에서 저 콘텐츠로 쉴 새 없이 눈을 움직이는 현대인의 모습을 굉장히 잘 재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수들이 시선을 움직이며 상대방의 행위를 복제하는 모습은 SNS 속 인물들의 삶을 동경하며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개개인의 사적인 행위가 공적 행위로 그 범위를 넓혀, 무대 위에서 공유될 수 있다는 것. 예술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공연장을 나서며, 극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의 질문은 2) 알고 있던 것을 잊어버리다.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기반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이때에 대다수의 우리들은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유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가 '사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만 까먹어버리고 만 것 같다.

 

극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최초의 인간에게 사과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잊은 채, 사과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맡겨버린 현대인들에게 '정녕 사과를 까먹어버린 것이냐'라고 꾸짖는 듯하다. 네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며 사과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요구한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찰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함께하는 대상은 결코 스마트폰이 아닐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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