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 인간의 추악한 본성 [영화]

글 입력 2021.02.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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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개봉 | 2018. 07. 12.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러닝타임 | 121분

 출연 |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건, 래피 캐시디, 서니 설직, 알리시아 실버스톤, 빌 캠프

 

 

"이 악몽을 끝내줘. 할 수 있어?"

 

 

 

이피게네이아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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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holet Flémal, Le Sacrifice d'Iphigénie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치러 가는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2년에 걸쳐 그리스 각지의 군사와 배를 아울리스항에 집결시킨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아 배를 띄울 수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마저 돌게 되었다.

 

고심 끝에 아가멤논은 점술가 칼카스를 불러 점을 보는데, 그는 아가멤논이 얼마 전에 죽인 사슴이 아르테미스가 아끼던 사슴이라고 말한다. 이어 사슴의 죽음에 화가 난 아르테미스가 바람이 불지 않도록 저주를 걸었으니 그를 풀기 위해서는 아가멤논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얘기한다.

 

결국 아가멤논은 전쟁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세 딸 중 순결한 영혼을 지닌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그런데 칼끝이 이피게네이아의 목 앞으로 다가온 순간 아르테미스는 이피게네이아를 구름에 숨겨 빼돌리고 암사슴을 대체 제물로 보내 눈앞에는 피를 흘리는 사슴만 남게 된다.

 

 

 

예언자 혹은 신,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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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의 아버지는 스티븐에게 수술을 받다 세상을 떠났다. 마틴은 그에 앙심을 품고 집도의였던 스티븐에게 맹랑하게 다가가 그의 집안을 파멸로 이끄는 인물이다.

 

그저 독특한 아이인 줄 알았던 마틴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스티븐은 갑작스레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스티븐이 자신을 피한다는 걸 눈치챈 마틴은 그를 겨우 잡아두고 충격적인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줄줄 늘어놓는다.

 

거기서 마틴은 만약 당신 가족 중 한 사람을 선택해 죽이지 않으면 차례차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이 이야기를 스티븐이 믿게 만들도록 가족들이 죽게 되는 과정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1. 사지가 마비된다.

2. 거식증에 걸린다.

3. 눈에서 피를 흘린다. (이 과정이 시작되면 곧 그가 죽을 것임을 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조항을 그대로 적용해 내 가족이 죽었으니 당신 가족도 죽어야 공평하고 정의로운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 말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여기서 마틴이 꼭 누군가를 죽여 복수하는 것을 공평하고 정의로운 행위라고 여겼다면 고민할 것 없이 깔끔히 스티븐을 죽였어야 한다.

 

하지만 마틴이 번지르르한 말을 내뱉으며 스티븐을 죽임의 대상이 아닌 죽이는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잃은 자신의 아빠를 스티븐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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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은 자신이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이 아빠와 똑 닮았다는 것으로 '마틴과 아빠' 그들만의 공통점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둘만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스파게티는 그렇게 먹는 거였다.

 

이를 알게 된 마틴은 그 사실이 아빠가 죽었다는 것보다 더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아빠와 나처럼 스파게티를 그렇게 먹을 중년 남성인 당신(스티븐)은 우리 아빠를 대체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간의 잔혹한 이기심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본인이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설사 그 일이 가족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도, 심지어는 그 일이 가족을 죽이는 일이더라도 일단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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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인 밥은 살기 위해 아빠의 말을 무시하고 쭉 기르던 머리도 숭덩숭덩 잘라버리고, 그렇게나 가꾸기 싫어했던 화초도 누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물을 주겠다고 한다. 거기에 아빠를 따라 심장 전문의가 되겠다고 하며 아빠에게 잘 보이려 기를 쓴다.

 

이 과정에서 밥은 어떠한 감정의 요동도 없이 덤덤하게 얘기했으나 오히려 그 차분함이 밥을 더 처절해 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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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킴은 더욱더 적극적이다.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저를 낳아주셨으니, 아버지만이 저를 죽일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본인을 죽이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동생과 엄마를 살리기 위한 마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스티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었다.

 

이 행동이 거짓말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은 킴이 밥을 대하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사랑에 눈이 멀어 동생 대신 본인이 살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하며 밥에게 "네가 죽으면 네 MP3를 가져도 돼?"라는 질문을 한다(개인적으로 이 말이 너무 끔찍해서 메슥거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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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엄마인 애나는 대체할 수 없는 본인의 자리를 내세우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갑자기 옷을 벗더니 잔인하지만 논리적인 선택은 아이들 둘 중 하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하며 우리는 아직 애를 다시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시험관까지 언급하며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애는 죽여도 내가 있으면 다시 낳을 수 있으니 나는 죽음의 후보에서 제외해달라는 거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을 단순히 대체물로만 본다면 잔인하지만 셋 중 누가 죽어도 대체는 가능하다. 애나가 죽으면 새로운 배우자로 대체하면 된다. 만약 아이들이 죽는다면 애나의 말대로 함께 새로운 아이를 낳거나 다른 누군가와 낳아 대체할 수 있다.

 

 

 

성스러운 사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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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내용과는 달리 영화는 내내 평범한 일상과 같이 그려진다. 모든 상황이 어쩌면 아름답고 밝게 보이지만 그와 반대로 음산하고 귀를 찌르는 듯한 음악이 굉장히 자주 깔린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상황임에도 그와 상반되는 음악이 깔려 보는 사람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겉만 치장해놓고 막상 까보니 속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꽤 갈리는 영화인데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마틴이 어떻게 스티븐 가족을 파멸시켰는지(대체 어떤 방법으로 신의 자리에 오른 건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마틴 엄마가 스티븐에게 한 행동 또한 마틴이 조종한 것인지 혹은 진심이었는지 등 궁금증이 남는 지점이 많다.

 

그럼에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특함이 내 취향에는 잘 맞아 만족스럽게 본 영화였다.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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