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틋하다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영화]

글 입력 20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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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저께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참 좋은 영화였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진한 여운을 남기며 나의 삶에 간절한 흔적을 덕지덕지 묻히는 영화거나, 간결하고 옹골찬 구성으로 맛있는 음식을 곁들여 보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전자에 속했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jpg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대만 영화다. 2020년 9월 30일에 대만 현지 영화관에서 처음 개봉했고, 넷플릭스에서 해외 판권을 사들여 지난 12월에 독점 공개했다. 영화의 장르는 퀴어 로맨스로 두 소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개봉 후에는 대만 LGBTQ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할 정도로 흥행했으며, 중국어권 영화제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금마장 영화제의 촬영상과 주제가상을 받았다. 일반 대중과 평론가들에게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대만의 1987



대만은 어떤 나라일까. 대만 당국은 2019년에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이것만 보면 대만은 모두의 다양성을 고루 인정하는 민주적인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이 선포되었던(세계 역사상 가장 길었던 계엄이다), 아픈 과거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에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6월 항쟁이 일어났던 것을 생각해보면, 대만 현대사의 흐름이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계엄령이 해제된 대만의 1987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자한’과 ‘버디’. 두 소년은 학교 수영장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확인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국가를 에워쌌던 계엄이 풀렸다고 해서 모두가 즉시 자유를 얻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성 교제도 엄격히 금지하는 차갑고 폐쇄적인 학교에서 동성 교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보통의 퀴어 로맨스물이 그렇듯 두 소년은 그 애틋한 감정이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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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자한, 오른쪽이 버디

 

 

사랑은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행위다. 때로는 나의 본성을 내가 마주하는 것조차도 두려울 때가 있기에, 누군가와 영혼까지 깊이 공유한다는 것은 실로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에서는 사랑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대만 영화답게 짙은 감성이 더해져,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했던 두 사람의 인연을 담아낸다.

 

 

 

눈이 맞다



둘의 눈이 맞은 것은 악단에서였다. ‘눈이 맞다.’ 정말 원초적인 관용적 표현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감정이 담겨 있기에, 사람마다 눈을 마주 보고 싶은 상대가 있는가 하면 절대 눈을 바라보기 싫은 상대도 있다. 나에게도 눈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별다른 이유 없이 나를 싫어했다. 싫어하는 이유라도 귀띔해주면 좋으련만, 그저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가 하면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또 보고 싶은 눈이 있다. 우리 집 강아지의 눈이다. 순수한 감정으로 가득 찬 그 눈망울은 언제나 반짝거리면서 빛난다.


자한과 버디도 그렇게 눈이 맞았다. 둘의 눈은 서로를 볼 때마다 반짝거렸다. 때로는 말을 꺼내지 않고, 무심한 듯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이들이 있다. 그 둘의 관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과 몸짓은 사랑을 증명했지만, 이는 종교와 규율 속에서 두루 용인되는 그것과는 현저히 달랐다. 그래서 두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나 결코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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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해 쉬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 사랑에는 돌파구가 없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가로막혔다가 충돌하고, 때로는 뒤집혔다. 버디는 자한에게 손길을 내밀었고 둘은 잠시 사랑했으나, 한 여학생의 등장으로 버디는 자한에게서 멀어진다. 이후에는 자한이 버디에게 손길을 내밀지만, 미성숙한 버디는 그 손을 잡지 못한다. 밀당도 이런 밀당이 없다. 보는 사람까지 애타게 만드는 질풍노도의 사랑. 가만히 놔두면 피어날 꽃에 온갖 전제조건을 붙여 족쇄를 채우니, 괴로움에 차서 몸부림치는 두 아이의 모습에 그저 눈물만 날 뿐이었다.

 

 

 

사랑하다



상술했듯 이 영화의 초반부를 지날 즈음에는 ‘반반’이라는 여학생이 등장한다. 반반은 버디에게 호감을 느끼고, 버디 또한 반반에게 마음을 주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를 바라보는 자한은 당연히 질투한다. 버디는 왜 마음에도 없는 반반에게 연애 감정을 드러냈을까. 영화 종반부에 중년이 된 버디가 말하는 내용으로 알 수 있다. “내가 그렇게 하면 네가 포기할 줄 알았거든.” 그렇다. 세상의 눈초리를 피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자 벌인 일이다.


안타깝다. 그저 껍데기뿐인 사랑을 하게 된 ‘반반’. 그녀는 동성의 사랑을 다루는 로맨스물에 자주 등장하는 ‘이성 조연’을 담당한다. 이러한 이성 조연은 주로 주인공들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데,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적용된다.


학교에는 반반과 버디가 연애한다는 소문이 돌고 버디는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반반은 퇴학당한다. 버디는 학교에 남게 되었으나, 반반은 그저 여성 후배라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은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이는 당시 학교에 성차별과 군대식 문화 같은 악습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통해서, 계엄이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직된 대만 사회 곳곳에 어떤 피해자들이 생겨났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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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동성 연인 사이에서 희생당하는 설정은 고루한 클리셰라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창작물에서 이러한 인물과 서사가 곧잘 쓰이는 배경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우리 곁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대와 관계를 이어나가 서로의 삶을 모두 망치는 안타까운 일을 벌인다. 영화라는 미디어 콘텐츠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에, 해당 설정이 불편하고 안타까울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계속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감추지 않고 조명하고자 클리셰를 사용할 수 있다.


둘째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하나의 비극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일조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을 보듬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자한과 버디가 여행을 갔던 타이페이에서는 동성 결혼 합법화를 외치던 치자웨이가 사복 경찰에게 끌려갔으며, 학교에서 게이로 의심받던 버디는 자신을 쫓아오는 아이들을 피해 난간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랑이 무엇인지조차도 잘 모르게 된다. 나는 버디에게 ‘너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라는 훈계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사랑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 버디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 자한이라면, 반반에게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관계를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학교는 이들을 갈라놓고자 징계와 퇴학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사랑의 열병에 고단했던 아이들은 역풍을 맞아 쓰러졌다. 이런 혼돈에서는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조차도 무색할 지경이다.


결론은, 이러한 클리셰가 없어도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십시일반, 하나둘씩 손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얘기 아니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대만 사회는 그렇게 손길을 모으고 모아 바뀌었다. 1987년에서 약 30년이 흐른 지금의 대만은 동성의 사랑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었고, 영화 속에서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두 남자가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냐’라며 감탄하는 장면은 이를 대변한다.

 

 

 

애틋하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의 감독 류광휘는 이 영화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캐릭터를 다루는 그의 시선은 매우 조심스럽다. ‘동성애’라는 프레임에 갇혀 자극적인 서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 또 사랑이다. 우리 모두의 유전자에 담긴 그 애틋한 감정에 집중한 것이다. ‘애틋하다’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사랑이란 언제나 밝고 긍정적일 수만은 없어서, 섭섭하면서도 아련한 무언가를 남기고 떠난다. 이것을 심장에 꾹꾹 눌러 담은 것이 ‘애틋함’이다. 그렇게 영화 속 자한과 버디도 서로에게 애틋함을 남긴다.


여기서 잠깐 음악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화면과 음악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루어져 관객의 명치를 콕콕 찌르듯이 자극하는 영화가 종종 있는데,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그중에서도 최고에 속한다. 자한과 버디의 저릿한 인연으로부터 스며드는 트럼펫 선율부터, 서로의 존재와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인 <刻在我心底的名字(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까지. 모든 음악이 남긴 먹먹한 여운은 영화 속의 잔상과 더불어 내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OST - <刻在我心底的名字(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

 

 

촬영 또한 뛰어나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은 이유가 있다. 화면 안에 담긴 모든 것에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특히 관객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끔 만드는 80년대 대만의 ‘빈티지’한 모습이 눈에 남는다. 여기에 싱그러우면서도 살짝 설익은 연기를 훌륭히 소화하는 배우들이 더해지니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이야기 전개가 이따금 끊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설명이 다소 부족해 앞뒤 연결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간혹 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이 영화의 매력으로 남을 정도로 영화 전체가 주는 먹먹한 감성이 있기에 이를 찬찬히 음미하며 이해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도망가자



영화 속 두 청년은 해변에서 마지막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이후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날 때까지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아무도 없는 해변으로 갔을까. 그냥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가수 선우정아의 노래를 떠올렸다.

 

 

나를 봐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도망가자> - 선우정아

 

 

가끔 그저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어깨 위에 짊어진 의무와 책임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곳이 어디든 막막한 숨통을 트이게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도망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이는 문자 그대로 가끔 드는 생각이다. 아주 완벽하게, 어쩌다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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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화 속 도망의 소산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누구의 시선도 없는 바다에 뛰어들어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느끼고 기억에 담았을까. 그 순간은 무엇으로 남았을까.


이 ‘도망’의 몸짓은 결말에서도 나타난다.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자한과 버디는 젊은 날의 그들 자신을 마주한다. 노래를 부르며 해맑게 장난치는 두 소년은 다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나는 서서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보았다. 계속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입에 굴려보았다. 사랑, 사랑, 사랑. 입 밖으로 내어 부르는 사랑, 사랑, 사랑. 그리고 내 마음에도 새겨진 그들의 이름까지, 모든 것은 애틋함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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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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