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해서 위로가 되는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시]

글 입력 2021.02.1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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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승화한다.’라는 주제의식을 우리는 종종 배운다. 예컨대 문학에서는 부조리함을 유머라는 트릭으로 서사를 더 비꼬게 하고, 드라마와 같은 영상매체에서도 코미디 혹은 시트콤인척 하면서 그 당시의 시대성을 반영하여 은근하게 비춘다. 개그 프로그램에서의 블랙 코미디처럼.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솔직함이 무기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가끔은 오히려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자조적인 말들로 우리는 종종 삶에 대해 푸념한다. 일상이 블랙 코미디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웃음으로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는 그다지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 또한 ‘부조리함을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와 비슷한 캐치 프라이즈는 식상하다고 느꼈었다. 이젠 웃음으로 비극을 넘기기엔 웃을 여력도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 유에민쥔은 다시 웃는 얼굴로 대신한다.

 

 

Memory 2, Oil on Canvas 140x108cm 2000 ⓒYue Minjun 2020.jpg

Memory 2, Oil on Canvas 140x108cm 2000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만약 당신이 똑같은 웃음으로 가득한 공간에 서있어야만 한다고 가정해보자. 심지어 모두가 같은 웃음을 짓고 얼굴조차 닮았다. 즐거운가? 혹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는가? 아마 당신은 그들의 표정을 따라 웃거나 적어도 입 끝은 올라갈 것이다.

 

비속어지만, 한때 유행했던 말인 ‘웃어, 분위기 XX내지 말고.’처럼 본능적으로 주변을 흉내 낸다. 웃고 있는 그들의 내면은 전부 다르다. 앞뒤가 같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사의 불필요한 지적에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꾸해야 하거나, 과연 자신이 제대로 들은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당혹스러운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웃는다. ‘웃어, 분위기 XX내지 말고.’를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유에민쥔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미묘할 상황에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짓는 웃음을 포착한다.


 

유에민쥔.jpg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내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 유에민쥔

 

 

유에민쥔의 작품을 보고 가장 먼저 느낀 인상은, 기괴할 정도의 웃음이다. 눈을 감고 얼굴의 절반 이상이 입이다. 그 입에는 하얀 치아가 무수히 박혀있다. 무심코 보면 그저 쾌남이다. 어떻게 보면 호쾌한 웃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비슷하다 못해 복제 수준인 웃음이 한 전시회에 무수히 보이면 어떨까.

 

유에민쥔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한 작품만 보는 게 아니라, 그의 여러 작품을 함께 볼 때 작가만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아닌, 여러 작품이 연속으로 보이는 것이 다시 그 덩어리 자체가 새로운 예술처럼 보인다. 마치 ‘지금 내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라고 묻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작품 속 그들은 모두 울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유에민쥔 작품 속 인물들이 과장되어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 놀랍다. 웃음은 우리의 방어기제이다. 답하기 곤란하거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거나 말을 마무리하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웃음으로 때운다. 혹은 너무 슬프거나 허무하면 웃음만 나오기도 한다.

 

나 또한 웃음을 요긴하게 쓰는 사람이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상담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할 정도였다. “본인의 슬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는 거 알고 있어요?”라고 안타까워하며 묻는 선생님에게, 나는 다시 웃음으로 대답을 넘겼었다.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다시 유에민쥔에서 마주했다.

 

이는 상당히 부끄러우면서도 괴로운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유에민쥔이 과장된 웃음으로 블랙 코미디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때 나는 그 표정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무서워하다니. 그러나 그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가신 후에는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이라는 말이 이미 익숙하지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도 우리 모두가 당사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유에민쥔은 웃음이 우리에게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주길 바란다고 했다. 울듯말듯한 그 웃음만으로 행복이 온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저 입꼬리라도 잠깐 올려 웃고 있는 그들과 동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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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Yue Minjun 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일자 : 2020.11.20 ~ 2021.05.09

시간
10:00 ~ 19:00
(입장마감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5, 6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15,000원
청소년 13,000원
어린이 10,000원
 
주최/주관
한겨레미디어, XCI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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