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에민쥔,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전시]

거대한 웃음 속 숨겨진 의미
글 입력 2021.02.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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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tombment, Oil on Canvas 380x300cm 2010 ⓒYue Minjun 2020.jpg

The Entombment / Oil on Canvas / 380x300cm / 2010 / ⓒYue Minjun 2020

 

 

유에민쥔(Yue Minjun)은 1980년대 이후 중국 예술 경향을 부정하는 혁신에서 출발한,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사대천왕(장샤오강, 왕강이, 유에민쥔, 팡리쥔)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의 대표작품 <처형>은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에 낙찰되어 중국 현대미술계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또한, 광주 비엔날레와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초청받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작가이다.

 

작품 속 과할 정도로 활짝 웃음을 짓고 있는 인물은 유에민쥔 스스로를 본떠 그린 것이다. 캔버스 위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자기복제를 통해 그저 무기력하게 세상을 응시하는 자신을 표현했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로 잘 웃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작가의 웃음이 캔버스에만 존재하고 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역설적이면서도 하나의 블랙 코미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전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진행 중이다. 전시 구성은 유에민쥔의 대표작 <처형>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 몰개성적이고 획일화된 군중의 웃음을 그린 [한 시대를 웃다] / ‘지금 이 순간’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死의 찬미-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 / 풍자와 비극이 녹아있는 찰리 채플린의 연극 같은 [조각 광대] / 시대의 통각을 넘어선 세상을 그린 [일소개춘一笑皆春,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 도예가 최지만과 판화 공방 P.K STUDIO(백승관, 하정석)와 협업으로 만든 도조 작품과 판화들이 있는 [Special Zone]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번 전시는 중국의 현대미술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작가가 다년간 웃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표현한 다중적 변화와 사고를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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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유에민쥔의 시대는 동구 사회주의 몰락과 천안문 사태를 겪은 Post89로,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대변되는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작품으로 체화했다. 당시 사회주의의 붕괴는 공산주의적 이상에 회의와 불신을 주었고, 중국 내부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의 비극적 결말은 절망과 무기력증을 불러왔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인간에 대한 불신이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했으며 이에 지친 지식인들은 자조와 조롱만을 그들의 유일한 대화거리로 삼았다. 따라서 유에민쥔의 작품은 지난 세기의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성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기반으로, 다수의 군중에 속한 자신을 무기력한 시선으로 바라본 모습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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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유에민쥔의 대표작인 <처형>(1995년)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그래서 전시장에는 <처형> 바로 옆에 고야의 작품을 걸어두어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먼저 고야의 작품은 스페인을 침략한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학살 장면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고발한 것으로, 공포와 고통에 휩싸인 모습을 보여준다. 구도와 색감으로 보았을 때 화면은 왼편과 오른편으로 극명하게 나뉘면서,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질린 인물들과 총을 들고 위협하는 프랑스 군인들이 묘사되어있다.


반면, 유에민쥔의 작품은 고야와 같은 배치이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다. 설명에 따르면 정치적 이상과 사회적 정의, 종교적 신앙이 모두 거세된 시대에, 학살당하는 순간에도 벌거벗은 채 웃고 있는 무지한 군중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털어놓는다.


이는 당대 지식인이었던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획일적인 군중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자조적인 설명이며 냉소적인 사실주의다. 더불어 그 순간 그의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이 되었다. 그래서 유에민쥔의 <처형>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화가 되었으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 시대를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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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내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덤덤하게 내뱉는 문장 속에 응어리진 절망감과 무기력함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중국의 미술 평론가 리시엔팅은 “유에민쥔의 작품은 특유의 표정과 풍자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향한 풍자와 비판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감상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과할 정도로 활짝 웃은 작품 속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일면만을 보았을 뿐, 이 우스꽝스럽고 지나친 웃음의 의미를 해석하기엔 아직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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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방관자>는 화면 가운데 벌거벗은 웃는 남자가 물속에 빠지고 있으며 이를 마치 하나의 쇼처럼 보고 있는 배를 탄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당장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죽을 위기에 처한 인물은 한 손만 위로 들어 올렸을 뿐 그 외에 어떠한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물속에 잠기며 하늘을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반면,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물에 빠진 이를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구경하며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위험한 일에 관여하지 않고 멀리서 방관하는 모습은 꼭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멀리서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이미는 현재의 우리와 닮아있다. 이 작품을 보고 있는 감상자들도 (물론 작품으로 들어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지만) 핸드폰을 들고 그저 찍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방관자는 그 스스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웃고만 있는 물속의 인물과 물속에 빠지는 이를 찍기 바쁜 배를 탄 인물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감상자를 말하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일소개춘一笑皆春,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The Three Musketeers, Oil on Canvas 80x100cm 2019 ⓒYue Minjun 2020.jpg

The Three Musketeers / Oil on Canvas / 80x100cm / 2019 / ⓒYue Minjun 2020


 

“만약 내 그림 속 인물들이 행복해 보인다면 그건 감상자가 행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하거나 허무하게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오독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한계까지 벌어진 입, 터질듯한 광대, 살에 파묻혀 감긴 눈이 먼저 보이는 웃는 얼굴은 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절망을 실소와 자조적인 비웃음으로 표현하는 유메민쥔 작품의 큰 특징이다. 그러나 유에민쥔은 작품 속 인물의 웃음에 대해서 느껴지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억누를 수 없는 웃음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웃음을 보며 어쩐 일인지 공허하고 구슬프며 자조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그를 표현하는 용어인 “시니컬 리얼리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중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은 작가의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무 걱정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은 익살스럽고 유쾌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행복해하는 이들이지만 어딘가에서는 절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웃음은 사회에 대한 비웃음과 수많은 군중 속에 있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한탄의 웃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유에민쥔은 웃음으로써 시대를 살아가고 작품을 그려나간다. 위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유에민쥔은 여러 번에 걸쳐 그의 작품세계가 노장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을 말했다.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경계가 없으며, 끝 모를 만물의 변화만이 있을 뿐임을 받아들였다. 삶과 죽음이 함께 순환하고 슬픔이 웃음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랐다.


따라서 혼란스러운 시대상황도, 선악의 구별도, 삶과 죽음도, 허무나 분노도 그의 작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으로 한 시대를 웃고 있는 인물을 통해 화엄의 세계에 도달하는 순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의 복합적인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감상자는 결국 크게 웃고야 만다.


이러한 이유로 ‘일소개춘’을 이번 타이틀로 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전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지은 체 전시장을 나왔다. 이번 유에민쥔 전시는 전시를 보는 동안에도 보고 난 후에도 긴 여운을 느꼈다.



참고 자료 및 사진 제공

유에민쥔 전시 설명문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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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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