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하고 아름다운 초현실주의의 세계 [미술/전시]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의 삶과 예술
글 입력 2021.02.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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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사과, 숟가락을 들고 초승달에게 밥을 먹이는 여인… 스페인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활동한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 1908-1963)의 세계에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풍경이 가득하다. 바로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멕시코 현대미술관, 워싱턴 국립여성박물관 등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이 열리고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여러 유명 미술관에서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 있는 작가다. 2020년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조화 Harmony>가 6백만 달러에 낙찰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레메디오스 바로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형식적인 스타일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러 작품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견고한, 수직적인 건축물을 배경으로 단독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은 신화 속의 인물처럼 신비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에는 주로 어두운 색이, 인물에는 밝고 화려한 색이 사용되어 인물이 돋보인다는 것도 특징이다. 바로의 작품은 다양한 상징물이 가리키는 의미를 배제하고 보더라도 충분한 미적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화가의 삶을 알고 그림을 보면 화가가 그림에 담고자 했던 것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레메디오스 바로는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어려서부터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다. 공학자/발명가였던 아버지는 바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딸을 미술 공예학교에 다니게 했으며, 바로는 이후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산 페르난도 미술학교에서 보기 드문 여학생 중 하나였던 바로는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과 토론을 즐겼고, 1928년에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931년, 첫 번째 결혼 후 남편과 파리로 떠난 바로는 미술계의 유명인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초현실주의자 그룹인 ‘Logicophobiste’의 일원이 된다. 1936년 스페인을 완전히 떠난 바로는 두 번째 남편 뱅자맹 페레와 파리로 떠났고, 1941년 나치의 프랑스 점령으로 인해 다시 멕시코로 떠났다. 1950년에는 사업가인 발터 그루엔과 재혼하여 경제적 안정을 얻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성적인 세계의 질서가 붕괴하는 것을 지켜본 유럽과 미국의 예술가들은 기존의 모든 가치와 체제에 반대하는 다다(dada;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음성어) 미술로 대항했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으로부터 출발한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에 그 기초를 두고 인간 해방을 목표로 사회적인 변화를 끌어내고자 했다. 레메디오스 바로 역시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바로의 남동생은 전쟁에 징집되어 전사했고 바로 자신은 징집을 거부한 뱅자맹 페레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수감되기도 했다. 바로가 1930-40년대 제작한 작품에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전쟁의 감각이 반영되어 속박된 인물, 고통받는 인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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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티즘의 고통 Rheumatic Pain, 캔버스에 유화, 1948

 

 

바로가 40년대에 베이어 광고회사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류마티즘의 고통 Rheumatic Pain>(1948)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바로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인물이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장면을 통해 류마티즘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배경에는 어두운 하늘,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있는 붉은 땅, 멀리 보이는 고전적인 성이 있어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941년 멕시코로 이주한 후 1960년대까지 바로는 ‘창조하는 여성’ 이미지가 등장하는 작품을 여럿 제작했다. 멕시코에서 레오노라 캐링턴 등의 동료를 만난 바로는 연금술, 점성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관심사와 일상을 작품에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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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덮개를 수놓으며 Embroidering the earth’s mantle, 목재에 유화, 1961, Private Collection

 

 

<지구의 덮개를 수놓으며 Embroidering the Earth’s Mantle>(1961)에서 여성들은 어두운 옷을 입은 수도승의 지도하에 수를 놓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들은 옷감을 짜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덮개, 즉 육지를 창조하고 있다. 이들이 앉아있는 높은 탑에서 흘러나온 ‘땅’이 지구를 덮고 있으며, 그 위로 길과 집, 나무, 동물, 강이 생겨난다. 이 작품에서 바로는 여성의 일인 자수를 창조주의 역할과 연관 짓는다. 여성의 노동은 하찮은 것, 대단치 않은 것으로 취급되기 마련이었지만 바로는 그 노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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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창조 The Creation of Birds, 목재에 유화, 1957, Private Collection

 


바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새의 창조 The Creation of Birds>도 창조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어둡고 허전한 연구실에서 사람과 새를 반씩 섞어 놓은 존재가 또 다른 새를 만들고 있다. 그녀는 오른편에 놓인 장치가 팔레트에 짜주는 물감, 목에 걸려 있는 바이올린과 연결된 펜,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을 재료 삼아 새를 창조하며, 그녀가 창조한 새들은 창문을 통해 곧장 밖으로 날아간다.

 

이 그림은 쉽게 해독할 수 없는 상징들로 채워져 있다. 연구실 구석에 놓인 두 개의 꽃병이 금색의 내용물을 서로 주고받고 있는 것은 예술, 과학, 화학, 자연이 순환고리를 따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물감을 만드는 장치가 알 모양으로 그려졌듯이 바로는 그림에서 바퀴나 거울, 알 등 원형 도상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는 순환 또는 회귀를 의미한다. 그림의 주인공인 ‘새-인간’은 창조자이자 과학자, 연금술사, 예술가이며 화가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바로는 종종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예술가 여성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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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harmony, 75×92.7 cm, 1956

 

 

<조화 Harmony>(1956)에서 그림 속 여성은 여러 가지 사물이 배치된 연구실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악보처럼 놓인 오선에 나뭇잎 등의 사물을 올리고 있고, 벽에서 나온 의문의 손이 작업을 돕고 있다. 방 한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벽에서 나온 인물이 또 다른 악보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고 있다. 언뜻 보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이 예술가가 ‘의문의 존재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연을 재료 삼아 음악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바로에게 창작은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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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음악 Solar music, 목재에 유화, 91x61cm, 1955, Private Collection

 

 

자연과 과학, 그리고 예술은 바로의 작품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태양의 음악 Solar Music>에서 인물은 한 손에 활을 들고, 태양광선을 악기 삼아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태양 빛이 비추는 자리에는 한 뭉치의 꽃이 피어 있다. 화가이면서 연금술, 점성술 등에도 큰 흥미를 느꼈던 바로에게 예술을 창작하는 것은 과학자의 발명, 또는 연금술사의 실험과도 같은 과정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림 속의 창조자는 레메디오스 바로와 이목구비가 닮았다는 점,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인물을 반복해서 그렸다는 점에서 화가 자신이라고 해석된다. 하지만 바로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때로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판단할 수 없는 혼성적인 존재로 표현하여 신비감을 자아낸다.

 

레메디오스 바로는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비이성적인, 신비한 영역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의 특징을 갖고 있으나 작가의 작품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 감춰진 욕망을 드러내는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몇몇 도상은 종종 성적인 함의를 담은 것으로 읽힌다.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는 여성의 누드가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레메디오스 바로의 작품 역시 그의 내면에 있는 욕망을 다루고 있으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은유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여성 이미지를 그리고 있으나 그 이미지는 타자화되지 않았고, 창조, 생산, 발명 등 특별한 행위의 주체로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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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를 떠나는 여자 Woman leaving the psychoanalyst, 1960, Private Collection

 

 

<정신분석학자를 떠나는 여자>(1960)는 바로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복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성은 각각 프로이트, 융, 아들러의 약자인 ‘FJA’가 새겨진 명패가 달린 진료실에서 막 나오는 길이다. 그녀의 왼손에는 잔뜩 쪼그라든 남성의 머리가 들려 있고, 그녀는 지금 그 머리를 바닥의 우물에 버릴 참이다. 정신분석학자의 진료실을 나오며 남자의 머리를 우물에 버리는 여자. 이 그림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아버지’라는 개념은 개인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자 욕망을 촉발하는 근원, 또는 권력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중요한 개념인 ‘아버지’를 버리는 이미지는 자신이 독립적인 주체라는 선언과도 같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찾고자 한 작가의 다짐이 엿보인다.

 

레메디오스 바로의 회화에 담긴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초현실주의 그룹에 속했으나 항상 주변부를 맴돌아야 했으며, 고향을 떠나 멕시코로 이주해 다른 화가들과 교류하며 화학, 연금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한 작가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다.

 

 

참고

워싱턴 국립여성박물관

USA Art News “The mystical scene by Spanish surrealist Remedios Varo set a world record”

김현화, 「연금술적 심리학 관점에서 본 레메디오스 바로의 삶과 작품」, 『연세상담코칭연구』, 5, 2016

신혜성, 「멕시코의 여성 초현실주의자들: 레메디오스 바로와 레오노라 캐링턴」, 『기초조형학연구』, 20(5), 2019

이주은, 「오컬트를 통한 조화로운 세계의 추구 - 레메디오스 바로의 회화를 중심으로」,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 8(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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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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