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글 입력 2021.02.07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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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끔씩, 너무 어이없어서 혹은 너무 기가 차서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알맞은 문장을 찾지 못해 그저 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하하' 건조한 웃음을 내뱉고 나면, 빠져나간 공기만큼 마음에 허한 구멍이 남는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부질없다 느껴질 때, 다시 한번 '하하하' 웃음을 뱉을 뿐이다.

 

유에민쥔의 작품 속에는 늘 호탕하게 웃고 있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과장되고 큰 웃음을 짓고 있다. 하지만 호탕한 그 웃음이 어쩐지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웃음 이면에 뭔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섬찟함이 느껴진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The Entombment, Oil on Canvas 380x300cm 2010 ⓒYue Minjun 2020.jpg

The Entombment

Oil on Canvas 380x300cm 2010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유에민쥔은 자기 자신을 모델로 삼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인물을 반복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인물의 함박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묘한 느낌을 준다. 그는 이 묘한 웃음을 "자조적 웃음이자 절망적인 사회를 허무와 풍자로 표현한 역설적 웃음"이라 말한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중국의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와 양립하는 시대가 펼쳐지자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미래, 그 허무함을 웃음으로서 승화한 것이다.

 

 

"나는 웃음이 억누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웃는 것을 그린다. 그것이 큰 웃음이든 절제된 웃음이든, 미친 웃음이든 죽을듯한 웃음이든, 혹은 단순히 사회에 대한 비웃음이든, 어떤 것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다."

 

- 유에민쥔

 

 

긍정을 상징하는 웃음을 통해 오히려 그 반대의 감정을 그려낸 유에민쥔은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며 자신의 웃음이 어디로부터 발현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대중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웃음이 진정 자신의 행복으로부터 나온 웃음인지, 사회의 강요에 굴복한 웃음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따라 웃기에 바쁜 사람들. 세속에 물든 웃음을 쫓아가기 위해 바둥대던 사람은 다음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A Great Laugh, A Glorious Death, Oil on Canvas 240x200cm 2012 ⓒYue Minjun 2020.jpg

A Great Laugh, A Glorious Death

Oil on Canvas 240x200cm 2012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하지만 그의 웃음은 단지 조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에민쥔의 또 다른 웃음은 위로이다. 그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상징하는 해골이 웃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삶의 웃음이 죽어서도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되, 죽음을 그리 두려워할 필요 없다 말한다. 한바탕 웃으며 매일의 하루를 살아가면서, 죽음의 순간으로부터 가장 젊은 오늘을 만끽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의 2020년 신작은 <일소개춘: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라는 주제를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가로지르는 '노장사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차용하여 인물의 얼굴에 꽃을 그려 넣었다. 내가 꽃이 되고 다시 꽃이 내가 된다는 순환의 세계관을 보여준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유에민쥔은 만물과 하나 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동시에 자연과 융화되지 못하고 있는 인간 문명의 현실을 비판하는 풍부한 의미의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 6 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전은 유에민쥔의 웃음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허무함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그의 웃음이 위로와 포용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두루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의 섹션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전시를 따라 초기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각 시기마다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 또한 비판적인 시각만을 견지한 작가라는 유에민쥔를 향한 편견을 벗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스테인리스강 조각'으로 제작된 거대 인물상이었다.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라는 제목을 가진 동상이었는데, 거대한 인물이 뒤틀린 몸짓으로 특유의 과장된 웃음을 띠고 있다. 몸짓만 봐서는 괴로워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인데, 얼굴은 웃고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몹시 괴상한 기분을 자아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에민쥔의 초기 작품들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유에민쥔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로운 현실에 몸부림치면서도 결국은, 하는 수없이 웃어버리고 마는 절망에 가까운 그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비극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라는 해석보다 '어쩔 도리가 없어 맥없이 웃고 말았다'라는 해석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 덧,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유에민쥔의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가만히 서서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채근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 좋았다. 많지 않은 방문객들 중 글로벌 방문객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는데, 그중 한 조각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케치를 하시던 분의 모습이 퍽 기억에 남는다. 유에민쥔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시장이 어떠한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작품을 보며 함께 감상한다는 것이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

 

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히 한숨을 쉬게 될 때가 있다. 당장에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 답을 모르겠고 보이지도 않을 때, 그럴 때면 난 허무함을 느끼곤 한다. 행복도 잠시뿐이며 결국 인생은 고뇌와 불안으로 점철되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픽-하는 비웃음이 새어 나온다. 한 번은 이 비웃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유에민쥔은 그림과 조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매 순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직면하며 그 순간순간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그려내었다.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감상하며, 나는 그 솔직함에 매료되었다. 문득,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이 감정을 '글이 아닌 그림을 통해 표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솜씨는 아니어도 한 장 한 장 마음을 그리다 보면,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

 

김칫국을 적어도 두 사발은 들이킨 이 심심한 기대를 품으며 그림만은 죽어도 내 길이 아니라 했던 고집을 꺾고, 내일은 펜을 들고 무지 공책을 펼쳐보려 한다.

 

 

The Three Musketeers, Oil on Canvas 80x100cm 2019 ⓒYue Minjun 2020.jpg

The Three Musketeers

Oil on Canvas 80x100cm 2019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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