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랙퀸, 나를 표출하는 것 -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예능]

그것이 드랙퀸이다.
글 입력 2021.01.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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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세계의 드랙퀸들이 모여 화려한 쇼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TV쇼가 있다. 바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이다.

 

이 쇼는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쇼 호스트인 루폴은 가수, 배우, 프로듀서 등으로 활약하며 드랙퀸을 대중들에게 선보인 선두자이다. 드래그 레이스 속 화려한 옷과 메이크업은 드랙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시청자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았으며 그들이 펼치는 무대와 입담들은 드랙퀸에 열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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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드랙퀸은 무엇일까? 이 쇼를 보기 전까진 드랙퀸을 보면 남장여자,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쇼를 보고 난 뒤 깨닫게 된 드랙퀸의 진정한 의미는 ‘크로스 드레싱’을 일컫는 ‘드래그(drag)'와 ’퀸(queen)'을 합친 말로써 반대 성별이 입는 옷을 입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드랙퀸'은 화려한 여장을 하고 무대 위에서 장기를 보여주는 사람을 지칭한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은 모두 성소수자이다. 보통 성소수자라고 하면 게이, 레즈비언, 바이 만 생각한다. 그래서 드랙퀸은 생소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여자가 되기 위해서 드랙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도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드랙퀸이 된 것이다.


출연자들은 서바이벌을 진행하면서 드랙퀸으로 변신하는 메이크업 룸에서 성 소수자로서 느꼈던 슬픔과 아픔,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보수적인 동네에서 자라 자신을 숨겨야만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성 소수자인 것을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고 난 뒤 더 이상 부모님과 볼 수 없었던 아픔을 공유한다. 출연자들은 이러한 아픔에 모두 공감하고 위로하며 그 순간만큼은 경쟁 관계가 아닌 동료이자 친구로서 그 아픔과 외로움을 겪었던 서로를 안아준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은 드래그 레이스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한다. 이 쇼에는 탈락자는 없다. 그들은 쇼에서 퇴장할 뿐, 그들의 드래그에 대한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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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퀸이 되기 위한 정답은 없다. 여자처럼 예쁘게 보이기 위해 드랙퀸이 된 것이 아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드래그를 선택한 것이다.

 

이들은 평소의 자신과는 자아를 탄생시킨다. 출연자들에게 드랙퀸이란 또 다른 자신이다. 그들에게 정해진 것은 없다. 펑키, 럭셔리,  트렌디, 코스튬 등 다양한 컨셉을 섞고 과장하고 표출한다. 즉, 그들은 드랙퀸이 되었을 때 그 누구의 억압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나’를 마음껏 보여준다.


드래그 레이스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출연자들 간의 갈등과 싸움이다. 그들은 진정한 나를 보여주는 경쟁 상황에서 그 누구의 것을 흉내 내지 않은 자신만의 드랙퀸으로 대결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능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정해진 의상과 화장이 아닌 예상을 벗어난 코스튬은 과해 보일 수 있지만, 출연자들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전혀 과해 보이지 않고 멋있어 보인다. 예민한 상황 속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부딪히며 리얼리티 쇼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드랙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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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쇼를 보다 보면 드랙퀸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메이크업, 패션 디자이너, 가수, 연기자, 코미디언, 모델 등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경쟁마다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은 드랙퀸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주겠지만 그들이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들의 삶은 나와 다르지 않다.

 

인생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드래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나를 표현한다. 이 자체가 드래그인 것이다. 그래서 이 쇼를 보다 보면 어느새 드랙퀸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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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중 드랙퀸이 아닌 자신과 드랙퀸일때의 자신이 다르다고 말한다. 쉽게 내 안의 억압된 것을 표출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가상의 나를 만들어 표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 방식 자체가 전부 드래그인 것이다.


드랙퀸은 남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여자 또한 드랙퀸이 될 수 있다. 드랙퀸은 정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드랙퀸인 동안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통념적인 틀을 벗어난 드랙퀸은 젠더의 경계를 허문다.


다수가 아닌 소수는 늘 주변의 시선과 차별을 받는다. 진정한 자신은 마음 속으로 숨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은 나를 드러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갈 순 없다. 그 누구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차별당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드랙퀸이 되어 차별에 앞장서고 소수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드랙퀸을 통해 이겨내고 치유한다. 그 방식이 점잖지 못하고 과해 보이지만 그 또한 그들만의 삶이자 선택이다. 그것이 드랙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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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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