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선 지식인의 독서법 – 탐독가들 [도서]

나만의 독서법을 찾아가기
글 입력 2021.01.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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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느리게 읽는다. 책을 천천히 정독하며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어떤 책을 골라도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이 걸린다. 단어 하나씩 곱씹으며 문장에 담긴 뜻을 찾고자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붙잡고 있게 되었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것을 지양하기에 노트에 필기하곤 하는데, 이러한 행동 때문에 완독까지 더 오래 걸렸다. 생각할 거리가 많을수록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문득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읽는 이런 습관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던 내용이 읽으면 읽을수록 지루해졌고 나중에는 귀찮아졌다. 분명 재미있어 보여서 가져온 책이었는데 이제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책을 한 번 읽을 때마다 거치는 번거로운 과정에 어느새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완전히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기에 읽는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하나의 책만 진득이 읽는 것보다 다양한 책을 여러 번 접하는 것이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면서 독후감까지 뚝딱 써낼 때 하나의 책도 다 읽지 못하고 그저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러다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쫓기듯이 읽은 책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고, 현재 독서법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나와 맞지 않는 독서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방향을 잡고자 했다. 책을 읽는 방법에서 정독, 속독, 다독 중 무엇이 나에게 적합한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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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가들』은 독서 행위를 통해 지식과 삶을 일치시켰던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이야기로,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고전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을 통해 세상을 경영하는 지혜를 배웠던 세종대왕, 앎에 이를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김득신, 밑바닥까지 캐는 독서를 강조한 정약용 등 총 10명의 탐독가가 등장한다. 이들의 독서법에 관한 짤막한 일화는 과연 독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탐독가다웠다.


책을 즐겨 읽었던 탐독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독서 스타일이 있었다. 다른 이들과 토론을 하거나, 꾸준히 성실하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거나, 작은 의문 하나까지 캐내기 위해 철저하게 살피고 조사하는 등 자신만의 독서법으로 책을 읽는 행위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그들의 다양한 책 읽기 방법은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르게 구현되었지만 좋은 독서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저 읽기에 멈추지 않고 책을 통해 세상에 의문을 품으며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나갔던 것이다.

 

고전 지식인들의 제각기 달라 보이는 독서법에도 유형별로 공통되는 독서 방식이 있었다. 대부분 주자 성리학이 그 중심이 되었고 주자가 말한 독서법을 따랐다. 그러나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제2부에서는 조선 시대의 독서론을 크게 실학자, 국왕, 성리학자 셋으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실학자를 대표하는 박지원, 국왕을 대표하는 정조, 성리학자를 대표하는 양응수의 독서론은 각자가 속한 신분 조건과 세계관에 따라 서로 대비되는 독서법을 보여준다.


이중 연암 박지원의 독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독서 태도가 인상 깊었다. 연암은 책 읽기의 대상을 문자에서 사물로 바꾸어 글의 의미를 확장하였다. 활자화된 책에서 벗어나 눈앞의 사물을 살피는 현실 읽기의 독서론은 실학자였던 연암의 독서 목적까지 보여준다. 그는 독서를 통한 실천을 중요시하며 독서가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는 글을 읽는 행위인데 연암은 현실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자에 담긴 지식이 실상을 잘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책 읽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집중했던 나에게 그의 독서론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진정한 책은 글자 그 너머에 담긴 의미이며, 사물 그 자체라는 말은 그동안의 ‘읽기’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최초의 문자는 자연 사물을 재현하고자 했던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의 정신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문자는 본래의 모습을 잃고 추상적인 기호로 바뀌게 되었다. 그 때문에 후대의 문자는 실체를 온전히 재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연 사물의 의미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는 역설적으로 문자가 되었기에 더 이상 자연 사물을 재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바탕이 되어 연암은 책 읽기처럼 자연을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문자가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기에 참된 독서를 위해서는 낡은 기호 지식에 갇히지 말고 눈앞의 생생한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책이었고 눈앞의 현실 읽기는 좋은 독서였다. 그렇다고 연암이 문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지식은 문자를 통해 기록되지만, 그 한계를 깨닫고 제대로 된 책 읽기로 나아가기 위함으로 보아야 한다.


관찰의 대상을 넓혀 앎에서 더 나아가 삶을 바꾸고자 하는 그의 독서론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동안 책 읽기에 대한 방법에만 몰두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지식에 매몰되지 않고 낡은 지식을 넘어 눈앞의 삶과 현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실천을 내세운 연암의 태도는 진정 배움의 자세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서 서술한 조선 시대 탐독가들의 독서 스타일과 독서 태도는 독서의 지향점과 독서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어렴풋하게나마 나에게 맞는 ‘읽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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