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흐는 익숙하지만 한국화가의 이름은 셋도 대기 힘들다면 - 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

글 입력 2020.12.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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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이면 친구들끼리 툭하면 하는 말이었다. 학년이 점점 올라가고 여전히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나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미술 작품들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면서, 아니 사실은 함부로 말했다간 남들이 무식하게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점차로 줄어들었지만.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이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도대체 이게 왜 잘 그렸다는 거지?’


이 해소되지 않는 물음은 유독 한국 미술에 대해서 커져 갔다. 고흐, 모네, 피카소 등 서양 회화는 여러 매체에서 자주 다뤄줬기 때문일까. 이해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 교양 수준의 서양 미술의 조류를 물어보면 앵무새처럼 읊을 수는 있었다. 고흐는 이래서 위대하고, 모네는 저래서 위대하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이유를 듣고 외다 보니 정말로 어렴풋이 좋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한국 미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더더욱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누군가 위대하다는 이유를 여기저기서 알려주거나 주입시켜주는 것도 아니었다. 미술 교과서 속 덩그러니 놓여진 이중섭의 소나 박수근의 거친 돌 표면 같은 그림들을 도대체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갈피를 못잡았다. 이건 고흐, 모네, 피카소 그 누구와도 달랐다.


어떤 것을 보고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친절한 인도자 없이 나는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쉽게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나와 비슷할 거라 믿는다. 훈련 받은 서양 미술사 상식에 포섭되지 않는 이 그림들 앞에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잠시 교과서 지면을 빌려 우리 삶 속에 들어올 뻔 했다가 도리어 거부감만 잔뜩 안은 채 평생 멀어지게 된 수많은 한국의 미술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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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은 “반 고흐는 아는데 왜 김환기는 모를까요?”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미 2018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예술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는 미술 교양서 《방구석 미술관》 1탄에서 작가 조원재는 특유의 이야기 솜씨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술 문지방’을 넘게끔 만든 바 있다. 이번에는 그가 20-21세기 한국미술의 거장 10인의 예술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술 서적 하면 먼저 떠오르는 수많은 학술적 용어와 번역투에 미리 지레 겁먹지 말자. 혹여나 ‘난 고전주의가 언제 부상했는지도 모르는데…….’, ‘난 인상파와 신인상파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는데…….’ 등등 남몰래 미술사적 지식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필자가 그러하다) 전혀 문제 없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졌으니.


어떠한 어려운 말 없이, 마치 오랜 친구를 소개시켜주듯 <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은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미술 거장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각 거장들의 삶을 하나의 제목으로 뽑아내는 작가의 스토리 텔링이 돋보인다. 작가 조원재는 이 화가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려주기에 앞서, 각 장의 제목에서 미리 이들에 대해 한 줄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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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파리 시내를 걷고 있는 김환기와 김향안, ⓒ (재)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 (오른쪽)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1957, 캔버스에 유채, 55x37cm, ⓒ (재)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그런데 이 소개가 꽤나 친절하다. 제목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앞 부분은 흔히 그 화가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미술사적 평가이며 뒷부분은 그 화가의 인생을 관통시키는 단어를 작가가 뽑아낸 것이다.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카멜레온도 울고 갈 변신의 귀재였다고?”,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 그의 예술은 일심동체 사랑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고?” 등, 교과서적으로 알려진 미술사적 의의를 넘어 그 화가의 예술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일생의 어떤 순간들을 한 가지 주제로 풀어내는 것이다.


한 화가의 작품들과 그 사이사이를 메워나가는 그의 일생을 영화처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샌가 이중섭의 소는 그냥 소가 아니게 되고, 김환기의 파란 점들은 그냥 점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나에게는 놀랍고 귀한 경험이었다. 이런저런 미술관을 돌아다녀도 흔히들 말하는 전율의 순간은 허상처럼 보이던 미술 문외한이었다.

 

상대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은 간혹 생기더라도 (이 경우만 해도 운이 좋았다 느낄 텐데), 하나의 그림에서 하나의 인생이 오는 경험은 여지껏 해보지 못했다. 미술과 친해지길 바라면서도 ‘나는 태생적으로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인간인가’ 하며 여러 번 좌절한 적이 있었기에, 그것이 더더욱 ‘방구석 미술관’에서 가능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미술편>을 처음 받고 ‘생각보다 재밌게 읽힌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 장을 넘겼다. 단순히 ‘소를 좋아하는 독특한 작가’라고 생각했던 이중섭의 일생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소설을 읽어내려가듯 아내 마사코와의 사랑 이야기에 내가 대신 간지러워 하다, 이것이 미술 교양서인지 가독성 좋은 소설인지 슬슬 의문스러워 질 때 쯤 또 한 장을 넘겼다가, 나는 드디어 그 경험을 했다.

 

어둑한 종이 위에 그려진 사실적이지도, ‘예쁘지도’ 않은 소. 거친 붓질로 그어진 굵은 흰 선들 만이 소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마음이 내리눌리더니, 꽤나 오랜 시간동안 이 투박한 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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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흰 소>, 1954, 종이에 유채, 30x41.7cm

 

 

“불과 2년 전 통영의 기운을 받으며 그린 초인적 소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소는 마치 냉동박제가 된 듯 뻣뻣합니다”(43쪽). 이런저런 교양서들을 읽으며 그림에 대한 설명이 따라올 때마다 나는 늘 나의 감상과는 무관하게 작가의 감상 만을 강요받는 것 같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에서만은 더 이상 작가의 설명을 열심히 읽지 않아도, 어느 순간 직관적으로 와닿게 되었다. 엄청난 이야기 기술과 흡인력이 뛰어난 그림들과 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은 단순히 뛰어난 이야기 기술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 조원재는 독자의 이해를 최대한 돕고자 다양한 분야에서 비교와 비유를 시도한다. 함께 비교해볼 만한 서양 회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장르를 넘나들며 시대와 국적을 불문한 여러 국가의 시나 음악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응노가 얼마나 혁신적인지 와닿지 못할 독자들을 위해, <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은 잠시 국경을 넘어 뒤샹을 데려온다. 뒤샹과 이응노는 어떻게 다르며, 이응노는 어떻게 뒤샹 이후 세대를 표상하기를 시도하는가? 백남준의 미디어아트가 도대체 왜 의미있다는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면, <4분 33초>(1951)을 작곡한 존 케이지를 작품 속에 들여오는 등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방구석 미술관 2: 한국미술편>은 우리가 익숙할 만한 다른 장르들을 최대로 가져오고, 그렇게 미술관의 문턱에서 머뭇거리던 수많은 독자들을 미술의 세계로 인도한다.

 

다정하고 섬세한 도슨트와 함께 ‘왜 잘그렸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던 수많은 거장들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면, ‘방구석 미술관’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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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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