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폭풍의 언덕'을 읽고, 복수와 맞바꾼 희망 [도서/문학]

용서라는 용기
글 입력 2020.12.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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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보완적인 사랑, 자기희생적인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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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에게 해를 끼치거든, 당장 앙갚음을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강가에 앉아 낚시를 하며 기다려라. 그러면 머지 않아 원수의 시체가 강물에 휩쓸려 올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거나 온 힘을 다해 증오하고 있다. 전자는 상호 보완적이며, 후자는 자기희생적이다.

 

타인에 대한 적대감은 자학과 같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노력을 감내하면서까지 나에게 해를 입힌 상대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절박함이기 때문이다. 나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쉽사리 증오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상대방이 내가 겪은 고통만큼 아파하지 않는 이상, 유일한 목격자인 내가 망각이라는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원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고서라도 타인을 나보다 더 밑바닥으로 끌어내려야겠다는 간절함이 흔히 말하는 복수의 원동력이 된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복수가 무서운 이유는 이미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마음을 품은 순간부터 그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내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과 맞바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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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은 피폐하다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고전 명작이다. 거리의 고아였던 히스클리프는 언쇼에게 양아들로 입양되어 그의 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맏아들 힌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를 혐오했다. 따라서 언쇼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학대하며 캐서린과의 사이를 모독한다. 결국 캐서린은 귀족 가문의 아들 에드거 린튼과 결혼을 하고, 이에 충격받은 히스클리프는 저택을 떠난다.


몇 년 뒤 다시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버린 캐서린과 힌들리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가문의 모든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 위한 복수를 시작했다. 에드거 린튼의 여동생과 결혼한 뒤 그녀를 학대하였으며, 캐서린을 정신적으로 괴롭혀 무너뜨리고, 두 가문의 재산을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가문 사람들은 히스클리프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이토록 잔인했던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난다. 캐서린이 남기고 간 딸 캐시와 그의 양아들 헤어튼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복수에 눈이 멀어 힌들리에게서 앗아 온 헤어튼을 보란 듯이 추악하게 키웠으나, 그는 오히려 자신의 친아버지 힌들리보다 히스클리프를 더 아버지처럼 여겼다. 과거 낮은 신분과 귀족적이지 못한 자태 때문에 자신을 떠나갔던 캐서린과는 달리, 헤어튼 그 자체를 사랑하는 캐시의 모습에 히스클리프는 허무함을 느낀다. 그리고 폭풍의 언덕에서 떠도는 영혼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결국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성공했다. 그를 괴물로 만들었던 사람들은 과거 히스클리프가 느꼈던 고통보다 더 큰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었다. 그러나 그가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복수가 유일한 삶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행복이 아닌 상대방의 불행을 바라며 살아왔다. 증오할 대상이 사라진 순간 남은 인생의 목적은 없었다.


사랑보다 더 쉬운 것이 경멸이다. 후자의 경우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 없이 상대방에 대한 원망으로 하루를 버티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기억들에 안주하기로 한 순간, 개인은 결코 발전하지 못하고 저 사람도 내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려야겠다는 불행한 미래만 바라보게 된다.

 

히스클리프 또한 그러했다.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기가 싫어서, 그 시간을 극복하는 게 두려워서 그에게 가장 쉬웠던 상대를 원망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가 복수와 맞바꾼 것은 희망이었다.

 

 

 

나에 대한 애정보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더 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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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 또한 비슷하다. 완벽한 줄 알았던 지선우의 삶은 사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기만으로 유지되던 것이었다. 처음 복수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지선우는 본래 갖고 있던 우아함과 기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복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희생이 필요했고 그녀는 점차 자신이 그토록 원망하던 남편 이태오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바랬던 대로 전 남편과 그의 내연녀는 모든 것들을 잃었지만 그 대가는 지선우라는 한 여자의 인생이었다. 자긍심, 사랑, 평화, 자존감. 그녀 인생에서 그토록 소중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싸운 결과였다.

 

추운 겨울 공허한 눈으로 바닷가에 걸어 들어가는 지선우의 모습은 복수란 나에 대한 애정보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더 강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실패와 같다는 피해자의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용서'라는 용기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권선징악 없는 세상에 피해자의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당신은 결코 당신의 원수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다.

 

비록 바라던 대로 상대방이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당신에게는 분명 그 사람에 버금가는 행복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증오를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당신의 행복이 내일의 희망이 되는 날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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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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