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존감'을 부각하는 '자기혐오'의 시대 [문학]

인간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글 입력 2020.12.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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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달콤한 말을 해 준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나쁜 사람들에 대응하는 방법 등 내면의 자아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제시한다. 읽을 때는 지침들을 모두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몇 권으로 내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진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은 대단하다. 책의 내용은 현실 상황에서 까맣게 잊고 똑같은 문제 상황에서 비슷하게 대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개인의 성격과 습관은 변하기 어렵다. 변하지 않는 나 자신과 반복되는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은 우리들을 자기 혐오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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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죽음과 비슷한 금기로 느껴지는 자기 혐오라는 주제를,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삶을 반영해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의 삶과 유사점이 많아 자기 해명의 책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린 시절 부유한 삶을 살았으며, 약물로 인해 정신 병원에 감금되었고, 동반자살에서 자신만 살아남았다. 끊임없이 생을 마감하길 원했던 그는 4번의 자살미수 끝에 5번째 시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삶은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에 진정성을 실어 주었다.

 

요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외모도 준수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속내를 비추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했다. 가족 분위기는 엄격하고, 질서 정연했다. 그는 어릴 적 하녀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약한 유대관계와 성적 충격은 비틀어진 성격을 점점 더 왜곡시키고, 그를 내면으로만 파고들어가는 폐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미래가 기대되던 유망한 학생이었지만, 자살기도로 인해 퇴학당한다.

 

그의 내면의 왜곡, 가식, 거짓들은 음지의 삶을 살아가게 했다. 술, 마약에 빠져들었고, 수많은 여성들을 전전했다. 주도적인 삶이 아니 다른 이에게 기생하는 삶을 살았다. 순진한 처녀와 결혼해 잠깐 행복을 누리지만 그녀가 성폭행 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다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그는, 자신을 미치광이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이 인간으로서 실격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에 가식, 웃음, 익살로 자신을 치장했다. 그는 그런 자신을, 그 모든 것을 혐오했다. 하지만 그의 자기 혐오는 역설적으로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그의 서술은 항상 ‘나’에 맞추어져 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서술의 주된 요소이다. 상황적인 맥락, 타인은 그 다음이다. 그는 외적인 요소들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를 기본적으로 설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속성을 점차 이해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들이 앞날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뒷걸음질 쳤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은 1+1은 2,3, 4, 5,6,7... 등등 수많은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1+1=2 가 꼭 되어야 한다는 틀에 박힌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폭 넓은 사고를 할 수 없다. 성인이 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가 바로 이 점이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일의 과정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조건에서는 특정 사건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고정관념, 틀에 갇혀 있던 나는 이 변화가 너무 생소했고, 혼란스러웠다. 내 가치관은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객관식 답과 정해진 주관식 틀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경험하는 상황의 다양성,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하루하루는 정해진 일과와 틀이 아닌 계속 부딪히며 알아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왜 이 사람은 뻔히 잘못될 걸 알면서도 이렇게 행동하고, 판단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의무론적 윤리로 대표되는 칸트의 도덕법칙처럼,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마음을 내 자신도 명쾌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의 내면은 수많은 욕망과 금기, 트라우마로 점철된 모순 덩어리이다. 개개인은 모두 각기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삶의 생채기와 흔적들을 지닌다. 행동의 원인을 모두 명쾌히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학작품이기에 그의 정서에 대해 이해하고,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조라는 인물은 나에게 그저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각각의 경험들이 점진적으로 그를 형성해 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서 그가 더 나은 판단을 내렸다면 삶의 긍정적 면을 체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흥미롭게도, 나는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묻다 라는 다른 저서에서, 그의 심리를 분석한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요조가 사용하는 주된 방어기제는 투사 이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공격성을 가지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위험한 욕망들을 상대방에게 밀어 내어 그것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그럼으로써 그 자신은 위험한 요소가 전혀 없는 순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조는 투사조차도 완전하게 성공하지 못한다. 그의 내부에 있는 파괴적인 충동들이 끊임없이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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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조가 다음단계로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다름 아닌 투사적 동일시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자신의 위험한 속성을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그러한 속성을 끌어낸 다음, 그를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려는 시도다. 예컨대 요조는 여자를 자극해 자신에게 빨려들게 해 놓고 막상 성관계에 들어가서는 자신을 여자에게 겁탈당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여자가 나쁜 역할을 하게끔 무의식적으로 유도해 자신은 선량한 희생자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요조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는 투사나 투사적 동일시, 희화화, 회피와 퇴행, 공격성의 자기에게 로의 전향 등과 같이 미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그 결과 그는 인간 실격자가 된다.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의 이유가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자신을 너무 고귀한 존재로 여겼고, 내가 느꼈던 것처럼 ‘자아’에 너무 집중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 혐오에 빠졌다.

 

자아를 강조하는 시대지만, 나는 자아를 너무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자아는 단기적으로, 마음가짐을 바꾼다고 해서 금세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저 나아졌다는 착각에 불과하다. 경험들 속에서 단순한 결과 자체가 아니라 과정의 어려움과 고난들이 만사에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나’를 만든다. 결정적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인간이 굳건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처절한 실패에서 일어났을 때이다. 모순 덩어리인 인간이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긴 고뇌와 시간,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자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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