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글 입력 2020.12.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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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콰야 어딘가 푸른빛을 한 남자의 초상.jpg

콰야, '어딘가 푸른빛을 한 남자의 초상'

잔나비 2집 '전설' 아트커버, ⓒ콰야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글을 쓴다. 나의 모든 것을 글로 토해내려 한다. 당신이 나에 대해 알아보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나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글은 나를 담고 있고,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다. 당신도 스윽 훑다 가셔요.

 

 

 

어쩌다가 글을



돌이켜보면, 2020년은 나에게 참 많은 일이 다가온 해였다. 물론 어느 해에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올해의 것들은 분명 이전까지의 것들과는 결을 달리하였다.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내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또, 그렇게 길들인 글을 쓰는 습관은 나에게 처음으로 책임이 곁들여진 애정 넘치는 소속감을 선물해 주었다.

 

미술관을 사랑한다. 물질적인 것 중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듯하다. 누구보다도 미술관을 온 감각을 다해 만끽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그곳의 공기를 호흡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자각한다.

 

그곳에서 느끼는 황홀함을 나 혼자만 누리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블로그를 열었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전시회를 소개하며, 작가와 작품에 관하여 설명했고, 내 나름의 해석 역시 작성하였다.

 

욕심이 적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테다. 점점 카테고리를 늘려 갔다. 나의 창작물도 업로드하였고,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은 터라 화장품 리뷰도 써보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기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으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에 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글도 올렸다.

 

이전부터 꾸준히 노트에 끄적이는 정도로는 써왔던 에세이도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업로드하기 시작하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채식 생활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으며,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상글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연히 블로그 이웃이 된 한 분을 통해 ‘아트인사이트’라는 사이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컬쳐리스트로, 당시에는 20기 에디터로 활동하시던 그분의 글을 보며 그곳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얼마 후 21기 에디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큰 고민 없이 지원하였다.

 

감사히도 합격하였다. 에디터로 활동한 지 두 달이 채 안 지났지만, 아트인사이트는 이미 나의 생활에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혀 있다. 이곳에서 하는 일에 책임감과 애정을 동시에 느낀다. 이제는 브런치도 만들어, 특히나 내 마음에 드는 글들은 그곳에도 올린다.

 

한 번 더 감사하게도 꽤나 많은 사람이 나의 글을 찾아준다. 도슨트와 큐레이터와 같이, 예술을 향유하고 그 가치를 세상에 널리 전달하는 것을 꿈의 직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것에 확신을 더하게 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에세이를 싫어하는 에세이스트



나는 항상 에세이를 써왔다. 그나마 자신 있게, “이게 내 에세이야”하고 들이밀 수 있을 정도의 첫 에세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에 써졌다. 써‘졌다’라니. 나는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다. 쓰려고, 쓰려고 온갖 힘을 다 쓰며 발버둥을 칠 때에도 에세이가 쓰이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그저 일상적인 고민을 하다가, 갑작스레 에세이가 나에게 찾아오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에세이가 쓰여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에세이는, 내가 쓰려고 하여 쓴 것들이 아니다. 내 머리가 쓴 에세이들은, 가식이 느껴짐에 사랑할 수 없다. 내 손을 슬쩍 빌려 누군가가 써 놓고 간 에세이들을, 나의 마음의 글들을, 나는 사랑한다.


혼자 별난 척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어쩔 수 없긴 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진지하게 쓰는 글에 진심을 담지 않은 적은 없다고 맹세하고 싶다.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세이가 작가에게 내려앉아 쓰인 글이 아닌 것임이 너무나도 선명히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쓰려고 하여 쓴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진심은 담겨 있어야 할 텐데, 그러한 글에는 진심조차 담겨 있지 아니하다. 공감을 얻기 위해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심을 담아 글을 썼더니, 공감을 얻을 수는 있다. 그것은 분명히 감사한 일일 테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 공감을 구걸하기 위해 쓰인 글은 읽기에 역겨워진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들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은 없다. 나에게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 에세이도, 그 글의 작가에게는 마음 속 깊이에서 우러러 나온 글일 수 있다. 또 나에게는 그저 공감을 얻기 위한 발버둥으로 보이는 에세이도, 어떤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눈물과 마음의 치유와 감동을 안겨준 글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삶을 함부로 단정 지을 자격이 없다.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일 뿐이기에. 누군가에게는 진심인 것을 나의 잣대로 거짓으로 결론 내어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나는 에세이를 쓴다.

 

 

 

항상 예술가이고 싶었어요.



나는 항상 예술가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음악이었고, 그다음에는 미술이었고, 지금은 글이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라는 나의 욕구는 내 삶을 꿰뚫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욕구인가 강박인가,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술가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예술가가 되려 하면 할수록,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음악을 함에 있어서는 그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고 도피하듯 미술을 하려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미술을 끔찍이 사랑한다. 그리고 적어도 아직은, 여전히 미술에 대한 사모를 버리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미술을 함에, 나는 역시 그것에도 천부성은 역부족함을 깨닫는다.

 

나의 감정, 나의 열등감, 나의 삶의 목적, 나의 삶의 의미는 모두 예술가들로부터 비롯하였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나는 감탄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그리고 나는 우울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하지.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내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 나의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삶의 의미. 그럼에도 절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예술가가 되려 몸부림칠수록 나에게 천부성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것이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한다. 그렇지만, 조금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겪는 나의 고통이 예술적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이 고뇌의 과정이 썩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내가 그 정말 잘한다고 자신하는 것 역시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 예술을 온몸으로 느끼고, 작품을 사려(思慮)하며, 맥락을 공부하고, 예술가의 인생을 소화해내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소화한 것을 되새김질하여 내뱉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다. 이 재능 하나만 믿고 끊임없이 부딪혀 볼 참이다. 아트인사이트는 내게 그 부딪힘의 기회의 폭을 넓혀준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인사이트는 내게 너무나도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항상 예술가가 되고 싶다. 처음에는 음악이었고, 그다음은 미술이었으며, 지금은 글이다. 그렇지만 앞선 둘 역시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은, 적어도 아직은 없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을 사랑하는 중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타와 관용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단 한 마디를 전달할 기회가 쥐어진다면, 이리 말하리.

 

“이타와 관용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인간의 윤리적 당위와 자유 의지 간의 상충에 관한 고민을 한다. 결코 답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이고, 고민이 반복될수록 해결책은 없음에 더욱 괴로워지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매일 이것을 고민한다.


수없이 많은 고민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내게 최고의 방법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이타와 관용이다. 이타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자. 관용함으로써, 타인의 다름에 부드러운 관심을 가지자.


나는 이타와 관용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천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위의 명제에서 ‘이타와 관용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전제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타심과 관용의 태도를 가지고 세상에 도착하였든 그렇지 못하였듯, 당신이 인간으로서 우주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본성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래에 없었다면 만들어 내어야 하고, 본래에 있었다면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타와 관용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널리 퍼지게 된다면, 비폭력의 세계가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타와 관용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편함은 누군가의 불편함


 

이타와 관용의 가치를 퍼뜨리기 위하여 현재 노력하고 있는 것은 ‘설득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어쩌면 ‘칼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아직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나는 ‘칼럼을 씁니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자신은 없다.

 

어찌 되었든, 설득하는 글을 쓴다. 흥미로운 생각들을 많이 한다. 특히 언어표현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지난번에 오피니언으로 기고한 ‘그녀라는 대명사를 어색해하는 것’ 글에서도 볼 수 있듯, 사소한 표현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려고 한다. 가끔은 언어학자가 나의 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설득하는 글을 쓰는 것은 “나의 편함은 다른 누군가의 불편함”이라는 나의 원초적인 신념에 기인한다. 이대로, 편한 것이 편한 것인 대로 살아나가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편안함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 있다. 나는 그 사안들을 하나하나 집어내려 하는 것이다.


과하게 불편해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과하게 불편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문제의식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듯, 설득할 뿐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나의 머릿속에는 흥미로운 고민이 너무 많다. 쓰고 싶은 글들이 너무 많다. 다만 결코 한 가지에 매몰되지는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막스 뮐러의 말처럼,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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