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녀'라는 대명사를 어색해하는 것.-1 [사람]

글 입력 2020.12.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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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 명시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려 애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필자의 ‘누군가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이라는 신념에 의하여, 우리가 평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 관한 고민의 필요성을 설득하려 하는 글이다. 함께 고민해준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 될 것이지만, 필자가 과도하게 불편해하는 것 같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주면 되겠다.

 

 

 

‘그녀’와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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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쓰는 3인칭 단수 대명사에는 ‘그’와 ‘그녀’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그’를 사용하고,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그녀’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단어들의 생김새에 관한 고민을 해 본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그女)’라는 단어는 특정 성별의 정보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라는 단어는 특정 성별의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사전적 정의로도 ‘그’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이며, ‘주로 남자를 가리킬 때 쓴다.’라고 언급하지만, 이는 사용의 ‘경향’을 알리는 것이지 내재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를 남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그녀’를 여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19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 애초에 한국어에는 ‘그’나 ‘그녀’와 같은 3인칭 대명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소설에서 역시 제삼자인 누군가를 가리킬 때에도 대명사를 쓰지 않았다. 차라리 ‘그 사람’, ‘그 여자’, ‘그 남자’와 같은 말들을 사용하였고 보통은 이름을 반복하여 기재했다.

 

그러다 1900년대 초반에 ‘He’와 ‘She’가 사용된 기독교 서적들을 번역하기 위하여 ‘그’라는 대명사가 등장하였고, 소설가 김동인을 대표로 하는 일부 문학가들이 ‘그’라는 표현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동인의 말처럼 당시 문학가들은 성별을 구분 짓는 대명사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말에는 He며 She에 맞을 만한 적당한 어휘가 없었다. He She를 몰몰아(性的(성적) 구별은 없애고) ‘그’라는 어휘로 대용한 것 - ‘그’가 보편화되고 상식화한 오늘에 앉아서 따지자면 아무 신통하고 신기한 것이 없지만, 이를 처음 쓸 때는 막대한 주저와 용단과 고심이 있었던 것이다.”

 

김동인, "文壇 30年의 자최", '新天地 : 제3권 제9호(1948년 10월)'

 

 

‘그녀’라는 단어는 역시 일부 문학가들이 20세기 초중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이후에 점차 대중화된 단어이다. 실제로 1970년대 정도의 텍스트들만 확인해 보더라도,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3인칭 단수 대명사로 ‘그’를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에 대한 복수격인 ‘그들’은 사전에 등록된 하나의 단어이지만, ‘그녀들’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등록되어있지 않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언어에서 여성을 도외시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는 남성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그저 한 ‘개인’을 가리키는 표현이었고, 따라서 복수형을 만들 때에도 ‘그들’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영어에서 역시 3인칭 복수 표현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They’를 쓰기 때문에, 3인칭 표현들을 만들게 한 번역체에서도 ‘그들’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다.

 

‘여배우’라는 단어는 최근 들어서 사용함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배우’에는 남성의 지표가 되는 의미가 담긴 말이 포함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배우’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역시도 영어에서 남성 배우는 ‘actor’ 여성 배우는 ‘actress’이고 이를 번역하는 데에서 생긴 번역체이지만, 그럼 애초에 남성 배우 역시 ‘남배우’라고도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필자가 ‘그녀’라는 표현에 대해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여배우’라는 단어의 불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지만, 아직 ‘그녀’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불편함의 가능성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남’과 같은 새로운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를 만들거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녀’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관하여서는, 그 시선을 전 세계로 돌렸을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언어에서 ‘가르기’ 반올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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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양 문화권의 언어는 거의 모든 단어의 성별을 가른다. 한 단어에 대해 여성형이 따로 있고, 남성형이 따로 있다. 필자는 한때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있는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었다.

 

프랑스어는 기본적으로 명사의 ‘남성형’과 ‘여성형’이 별개로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명사는 한 성별의 형태로만 존재했던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교수’를 가리키는 말인 ‘professeur’가 있었다. 이 단어는 원래는 여성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 여성이 교수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따라서 ‘여성 교수’라는 단어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옛이야기이고, 프랑스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쥐어졌다. professeur의 여성형을 고안한 것인 ‘professeure(프랑스어에서는 기본적으로 남성형+e가 여성형이다)’를 만들어 사용할 것인가 혹은 ‘professeur’라는 단어를 여성형으로도 사용 가능하게끔 할 것인가.

 

우리가 ‘여배우’도 있으니 ‘남배우’라는 단어도 만들자고 주장하지 않고, ‘여배우’라는 단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많은 프랑스인들은 ‘professure’를 사용하는 쪽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거의 없는 ‘성별을 가르지 않는 말’들을 갈리도록 만드는 쪽이 언어적 평등에 이르는 더 쉬운 방안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어는 거의 없는 ‘성별을 가르는 말’들을 가르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언어적 평등에 이르는 더 가까운 길이었던 것이다. 영어 역시 한국어보다는 많지만, 성별을 가르는 말이 가르지 않는 말보다 더 적다. 그렇기에 요즈음에는 policeman이라는 단어의 대체제로 policeman과 policewoman을 같이 사용하는 대신에 police officer라는 성별의 구분이 없는 단어로 통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보고 ‘가르는’ 표현들을 반올림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였다. 해당 언어문화가 보통 성별을 ‘가르는’ 쪽이라면, ‘갈리지 않은’ 소수의 표현을 가른다(올림). 해당 언어문화가 보통 ‘가르지 않는’ 쪽이라면, ‘갈려 있는’ 소수의 표현을 가르지 않도록 한다(내림).

 

*

 

필자는 스스로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특정 단어의 사용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필자는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규정’하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 하나하나에 관해 고민하려고 노력한다. 조금은 현학적인 태도로 보일 수는 있지만, ‘사려 깊음’으로 여겨 준다면 감사할 것 같다.

 

한 번에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여, 다음 오피니언 역시 이와 동일 선상에 있는 주제로 돌아올 예정이다. 다음 오피니언에서는 ‘가르는’ 표현을 ‘반올림’하는 것의 문제점과 대명사는 ‘성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함께 고민해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참고자료

-박재희(2015), "일반논문 : 3인칭대명사 "그"에 관한 소고", '한민족어문학 71권 0호'

-안소진(2008), "소위 3인칭 대명사 "그, 그녀"의 기능에 대하여", '한국어학 38권 0호'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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