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연하지만 필연적인 구조 - 가난의 문법

글 입력 2020.12.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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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스터는 2010년 국민연금공단이 개최한 공익 광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주제가 확실하다. 젊어서 연금을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노후를 폐지와 함께 하고 현명하게 연금을 들 경우 여행 캐리어와 함께 할 것이다. 큰 문구 아래의 문장은 더 노골적이다. 연금은 "노후를 확실하게 보장하"고, "품위 있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한다. 진작 연금을 들지  않는 실수를 경고하기 위해 광고는 폐지 줍는 노인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허름함과 빈곤한 삶의 상징으로.

 

해당 광고는 수상 4년 뒤인 2014년에야 트위터를 통해 논란이 되면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을 비하로 많은 질타를 받았고,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을 통해 노인빈곤을 방지하려는 취지를 전달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국민연금 광고 논란은 공공 기관의 무지와 노인 빈곤에 대한 형편없는 시각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폐지 수집 노인의 존재가 짧게나마 사회적 이슈에 올랐던 사건이기도 하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어디에나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의 대상으로 전시되지 않는 한 그들의 존재는 쉽게 사라진다. 그들은 누구일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우리는 이들의 노동과 생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1. 폐지 줍는, 여성, 노인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은 바로 이 문제에 천착한다. 도시사회학 연구자인 저자는 재활용품 수집하는 여성 도시 노인들의 생애사를 바라보고, 재활용품 수집 노동을 통해 가난의 경로를 되짚는다. 왜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일까?

 

노인 세대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의 비중이 가장 높은 세대다. 사회보장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되어버려 생계를 위해선 노동해야 하지만 일자리가 없다.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밀려난다. 재활용품 수집은 대표적인 제도 바깥의 노동이다. 저자는 2015년 3월, 여러 명의 여성 노인이 골목길에서 재활용품을 줍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들은 갈림길에서 뿔뿔히 흩어졌다. 아주 잠시 동안 골목길을 차지했던 노동을 마주한 저자는 이들을 외면하거나, 동정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우연하지만 필연적이었던 한국 사회의 구조가 수면에 떠오른다.

 

책은 한 사람이 보내는 하루를 제시하고 이 삶을 둘러싼 구조를 탐구한다. 이 사람은 1945년에 태어나 현재 76세인 윤영자다. 결혼했고 딸 셋 아들 셋을 두었다. 서무 일, 시장 장사, 새마을부녀회, 옷가게 등의 일을 했다. 66세가 되면서 재활용품 수집 일을 하기 시작했고 기초연금, 재활용품 수집, 노인일자리 사업 일 등을 동시에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경로당을 다닌다. 윤영자는 저자가 연구한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들의 생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다.

 

윤영자는 실존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삶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생애로서 한국 사회의 구조 속에 존재한다. 그녀가 한여름날 오후 1시, 재활용품 수집 노동에 나서는 순간부터 다음날 오후 12시 30분까지. 단 한 사람의 하루 속에 얼마나 많은 사회학적 함의가 담겨있을 수 있는지 <가난의 문법>은 담백하면서도 밀도 있게 보여준다.

 

 

 

2. 제도의 바깥, 혹은 빈틈


 

재활용품 수집, 골목길의 쓰레기를 주워가는 노인의 모습은 도시인라면 익숙하다. 이들은 왜 이걸 줍는 걸까?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주워 얼마나 수입을 얻을 수 있을까? 7-80년대 넝마주이처럼 재활용품을 주워 생계를 꾸리는 건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한 국가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하층민의 일이다. 이 노동은 현재 대부분이 가난한 노인들의 몫이다. 특히나 직업 경력이 없을 수밖에 없는 전후 세대 여성 노인들이 쉽게 유입된다. 왜 전후 세대의 노인들은 생계 노동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까?

 

앞서 보다시피 사회 보장제도의 부재의 영향이 크지만, 이들이 가족주의 가치관을 충실히 이행했던 세대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족주의 가치관이란 개인보다 가족을 우선시 하는 것이고, 여성에게 이 가치관은 끝없는 희생을 요구한다. 경제적, 감정적 희생. 윤영자의 경우 젊어서 쉬지 않고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후에도 빈곤한 이유는, 여섯 자식의 뒷바라지에 모아놓은 자산과 노동력 대부분을 바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종용된 이 가치관을 따른 대가는 일흔이 넘어서 시급 500-1,118원 사이의 노동을 하는 것이다.

 

시급 500원에서 1,118원 사이. 2015년 기준으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수입을 계산한 것이다. 당시 최저시급은 5,580원이었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골목길의 재활용품을 수집해 고물상에 판다. 고물상마다 받아주는 가격은 달라지며, 이들의 수입은 고물상의 상황,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폐지 가격의 시세는 국제 상황(중국의 재활용품 수집 중단 정책 등), 국내 경제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다. "2020년 9월 현재, 폐지 가격의 전국 평균은 (1kg당) 66.6원이다." 손수레를 가득 채우면 60kg정도가 나온다. 이는 3996원이다. 이는 거래 가격으로 노인들이 고물상과 거래하는 가격은 그보다 더 적다.

 

하지만 쓰레기가 이런 이윤 창출의 대상으로만 여겨져도 될까? 자원을 만들고, 처리해야 할 일차 책임 주체는 누구일까? 골목길을 깔끔하게 유지해서 가장 만족스러운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치우는 일은 누구의 몫이지? 코로나19로 쓰레기 대란이 더 심각해진 지금, 쓰레기 처리를 더 이상 시장 논리에 전가할 수는 없다. 쓰레기 처리를 시장 논리라는 무책임한 방조는 환경 문제와 함께 형편없는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 문제를 낳는다.

 

 

"이 생태계는 보다 젊은 세대들 혹은 보다 부유한 계층의 책임을, 더 나아가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의 의무를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노인은 젊은 세대와 부유한 계층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셈이다. 착취하는 세대와 계층은 재활용품 수집에 나선 노인들을 보며 그 이유를 두고 골목에 상자가 널려 있기 때문이며, 노인들은 가난하기 떄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 사실 착취의 문제는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서 시작된다. (...)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 92p

 

 

 

3. 자립(自立)과 자구(自求)


 

윤영자의 삶은 일견 평범하며, 그녀가 재활용품 수집 노인으로 살아가는 지금까지의 경로가 터무니 없지도 않다. 서사의 무서운 점이다. 하지만 가난에 이유가 있을까? 노인 가난을 '열심히 살지 않은 젊은 날의 결과'라거나 '부양해줄 자녀와의 어떤 문제'가 있어 저렇게 사는 사람이라고 단언해도 될까?

 

저자가 확실하게 꼬집듯이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 개인의 선택이 우연한 이유로 잘못되었다고 한들, 왜 국가와 사회는 그녀를 구하지 않았을까?"(127p) 한 사람의 생애는 유동하는 국가 및 사회의 영향을 받고, 그 풍파를 헤쳐나간다. 하지만 "개인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며, 우리에게 적응하길 요구한다."(128p) 재개발, IMF 경제 위기 등 개인의 선택이 아닌 것들에 휘말린 삶에 그 사람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마을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고,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공동체의 자산이 되던 시대는 끝났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소모하며 생애 주기를 지날 수밖에 없다.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 무언가의 상징이나, 표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먹고, 마시고, 쉬지 않고 일하며, 경로당에 가거나 자식과 전화 통화를 하며 일상을 보낸다.

 

다만 지금의 청년층보다 60년 일찍 태어났을 뿐이다. 그 60년의 생애사 속에는 한국 사회가 (능력만 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피할 수 없던 구조가 낱낱이 녹아들어 있다. 재활용 산업은 국가의 책임 부재 아래, 빈곤한 이들의 노동을 최대한 착취한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우리가 노인들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쓰레기를 둘러싼 노동과 착취 문제에 등을 돌린채 60년이 흐르면 지금의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가난의 문법>이 보여주는 노인의 현실 속에는 멀지 않은 미래에 늙어갈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도시에서 쓰레기를 버리며 살아갈 모든 사람들에게 <가난의 문법>을 권한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책임과 대책을 산업과 정부에 요구할 수는 있다. 노인의 현재를 두려워하기보단 서로에게 정당한 삶을 지켜주고자 하는 용기가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이끌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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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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