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극장] 0. Prologue: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글 입력 2020.12.2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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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예매 확인을 알리는 예매처의 메시지.

공연장을 향하는 길의 풍경.

익숙한 골목을 지나 매표소로 향하는 발걸음.

그 옆 줄지어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

티켓을 꼭 쥐고 로비를 둘러보는 들뜬 사람들.

캐스팅 보드 속 보고 싶던 얼굴들.

포토존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셔터음.

공연 시작 임박을 알리는 안내 방송 그리고

객석 내를 울리는 하우스 어셔의 목소리.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사라질 즈음,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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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암전에 발끝부터 소름이 돋는 순간 알았다. 내가 공연을 사랑하고 있구나.

 

몇 초 되지 않는 암전 사이, 모든 생각을 비우고 공연 속으로 들어간다. 인물과 서사, 조명과 음향, 무대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고, 그 안의 이야기들과 마주한다. 막이 내리기 전까지 바깥세상과는 완전한 단절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에 모든 감각을 맡기면 어느덧 공연은 절정에 이른다.

 

객석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갖던 외부로 새 나갈 일은 없기 때문에, 마음껏 울고 웃고 화내고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마음속에 있던 모든 감정의 잔여물까지 털어내고 나면, 막이 내리고 커튼콜이 시작된다. 밉던 인물도 웃으며 손 흔들어 주니 안심이 된다. 무대 위의 이야기는 무대 위에 남겨두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공연 종료 후의 텅 빈 무대는 왠지 비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야기로 가득 찬 기분이 든다. 공연장을 나서는 길, 오늘 공연에 대해 대화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관람한 공연장에서 조금 더 멀어지면, 다른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린다. 모두 다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마법 같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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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하나를 완전히 소화하는 데 하루 이상은 걸리는 것 같다. 공연을 보기 전에 많은 것을 찾아보고 가지는 않지만, 입장 정리는 반드시 하고 가는 편이다. 공연 종료 후 다시금 돌아봤을 때, 나에게 어떤 경험으로 다가왔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사소한 감상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공연이 끝나면 계속 곱씹는다.

 

공연이 끝난 후 혼자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혜화역에서 공연을 봤다면, 마로니에 공원을 걷고 낙산공원에 올라간다. 공연을 보며 느낀 감정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메모를 남겨두기도 한다. 좋았던 장면, 기억나는 대사, 잊지 못할 감정 등을 정리하며 거리를 배회한다. 밤 공연이 늦게 끝난다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낮 공연을 관람한 후 해 질 녘 걷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정리된 감상은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하고, 티켓북에 적어 놓기도 한다. 차곡차곡 모이는 기록들이 좋다. 가끔 그 기록들을 들춰보면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이 떠오르는데, 그날의 풍경과 기억이 함께 떠올라서 더 좋다. 시간이 흐르며 공연 속 간접경험과 나의 직접경험이 합쳐져서 새로운 기억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는 리미티드 공연들이라는 점에서 더 애틋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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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마니아”라는 수식어가 붙고 난 후로는 공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 주로 공연 추천을 부탁하는 것들이다. 혹은 좌석 추천이나 티켓팅에 관한 부탁도 많다. 간혹 감상평을 공유하는 연락도 받는다. 좋아하는 연락들이다. 공연에 대해 내가 가진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언제나 즐겁고 고맙다.

 

좋아하는 것을 공연이라고 답하기 시작한 지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다. 물론 공연을 즐겨본 것은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공연과 하나 된 삶을 살게 된 건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사이 참 많은 이야기를 만났다.

 

예매한 공연도 없이 혜화역 주변을 산책한 적이 있었다. 걷다 보니 열 걸음에 하나씩 추억이 서려 있었다. 오랫동안 쌓인 기억은 아니지만, 밀도 있게 차 있어서 놀랐다. 이 공간에서 공연과 함께 보내온 시간이 새삼 짙게 느껴졌다.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추억거리가 있었을 텐데. 아쉽긴 했지만, 그마저 좋았다.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으니까.

 

*

 

무언가를 깊이 애정할 수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생각만으로 설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특권이다. 공연 관람, 참 비싼 취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관람만이 공연을 즐기는 법은 아니다. 공연을 예매하고, 찾아보고, 공연 영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 역시 모두 공연 문화이다. 그 안에도 무수히 많은 세상이 담겨 있다.

 

나와 공연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 [은설극장]에 담아보려 한다. 공연 예술, 문화, 그리고 산업 이야기에 애정 한 스푼을 넣고 마지막으로 “은설” 한 방울을 첨가하였다. 공연의, 공연에 의한, 공연을 위한 이야기, [은설극장]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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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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