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배고파 죽겠다.', '아이, 예뻐 죽겠네', '힘들어 죽겠다 진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다.
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지만 막상 정말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숙연해진다. 게다가 'YOLO(You Only Live Once)'가 널리 퍼지면서 당장 내일의 미래도 불확실하니 뒷일은 모르겠고 우선 현재만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것은 무겁고, 또 무서운 존재로 여겨진다.
친구와 종종 '우리는 무병단수하자' 하자고 얘기하는 나 또한 죽음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에곤 실레(Egon Schiele), <죽음과 소녀> (Der Tod und das Mädchen), 1915, 캔버스에 유화, 150 x 180cm,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재력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죽음은 그 모든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임의로 사람들을 데려간다. 아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정한 제도(?)일 것이다.
(물론 생활 환경 혹은 그의 재력에 따라 생기는 수명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아놀드 뵈클린(Arnold Böcklin), <바이올린을 켜는 죽음과 함께 하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Death Playing the Fiddle),
1872, 캔버스에 유화, 75 x 61cm,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일을 수천 번, 수만 번씩이나 맞닥뜨린다.
당장 내일 제출해야 할 과제 또한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그런데 무슨 방법을 써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왜 나에게는 없을 일이라는 듯 잊고 사는 걸까?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오필리아> (Ophelia), 1851-52, 캔버스에 유화, 76 x 112cm,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저자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 책으로서 대답한다.
우선 죽음을 친숙한 존재로 만들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려주며 마무리로 누군가의 죽음이 그의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나의 그림 속 죽음 이야기 -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어 직접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해볼 수 있는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스물네 점의 명화, 스물네 명의 예술가, 스물네 가지 삶과 죽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스물네 개의 명언을 제시한다. 죽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재료가 됨과 동시에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스물네 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페르디난드 호들러(Ferdinand Hodler), <밤> (Die Nacht), 1890, 캔버스에 유화, 116.5 x 299cm, 베른 순수미술관
사실 이 책 한 권으로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거나 나의 죽음 혹은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냥 나에게는 없을 일이라는 듯 굴며 죽음과 대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꾸준히 생각하며 남은 인생을 채워가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 중간중간 제시한 명화들은 모두 책에서 작가가 소개하는 명화 중 하나이다. 책을 읽기 전 이 그림이 죽음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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