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주를 향해 창문을 활짝 열은 곳, 몽골 [여행]

글 입력 2020.12.0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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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방 안이고 우주가 바깥이라면 몽골은 창문을 활짝 열고 있는 곳이다. 눈앞에 은하수가 쏟아졌고 별들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2019.07.30)

 

 

작년 여름 몽골로 떠났다. 2주간 몽골로 떠날 거라 말하면 왜 하필 몽골을 택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사막에서 별을 보고 싶다고 대답했으나 사실 나는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던 것 같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몽골에서는 속세와 문물과 거짓된 인간관계에서 멀어져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몽골 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일행을 찾아야 했다. 영어도 전혀 통하지 않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넓은 영토에 표지판 하나 없는 몽골에서는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필수다. 대부분 6명 정도의 팀을 구성해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표준화된 여행 형태다. 같이 몽골에 갈 친구를 찾지 못했기에 나는 팀에 혼자 들어갔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여행만 같이 가면 되지 싶었다. 그렇게 출국일이 정해졌고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를 탔다.

 

7월, 습한 서울 공기를 느끼다가 급작스레 맞이한 몽골의 공기는 서늘했다. 그제 서야 몽골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공항에서 일행들을 처음 만났고, 가이드를 찾아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도착한 그 날은 몽골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울란바토르의 광장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어두웠고 차가웠다.

 


[크기변환]울란바토르E7.JPG

 

 

몽골은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없는 풍경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남쪽에선 고비 사막, 지평선, 낙타를 만났고 북쪽에선 바다와 같은 호수, 끝없는 초원, 양 떼와 순록들을 만났다. 2주 동안 몽골 남쪽과 북쪽을 돌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지만, 그 넓은 땅을 짧은 시간 안에 돌기 위해서 매일 5시간 넘게, 길게는 하루의 반을 차에서 보냈다.

 

우리가 탔던 차는 과거 소련의 군사용 차량으로 사용되었던 푸르공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는 몽골 여행에 최적화된 차량으로 경사가 심한 곳, 물웅덩이와 얕은 강까지 거뜬하다.

 

하지만 ‘사람 타는 걸 깜빡 잊고 만든 차’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승차감이 안 좋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없어 33도가 넘는 고비사막에선 뜨거운 열기에 고통받고, 오프로드에선 차가 통통 튀어서 엉덩이가 아프다. 와중에 벨트나 손잡이가 없어 끝에 앉은 사람은 계속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스타렉스가 아닌 푸르공을 선택한 이유는 감성이다. 몽골 여행이 아니라면 언제 푸르공을 타보겠냐는 생각도 한몫했지만, 그냥 찍은 사진도 몽골 감성으로 만들어주는 푸르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크기변환]푸르공CD (1).jpg

 

[크기변환]푸르공CDA.jpg

 

 

“나와 일행은 하루에 7시간씩 차를 타고 똑같은 풍경들을 지나쳤고 잠시 짬을 내서 아무 표지판도 없는, 그야말로 광활한 초원에서 멈추어 쉬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산도, 언덕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대지 위에선 도대체 어디가 남쪽이고, 북쪽인지 알 길이 없었다.”

 

(2019.07.29)

 

 

차를 적게는 5시간, 많게는 12시간을 타곤 했는데 몸이 힘든 것보다 충격적인 건 10시간을 가도 똑같은 풍경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늘과 땅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막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풀도 볼 수 없었다.

 

몇 시간을 달리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산을 펼치고 볼일을 봤다. 처음엔 치욕스러웠으나 며칠 지나니 그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신기한 건 표지판도 없고, 포장된 도로도 없는 그 땅 위에서 운전사는 길을 턱턱 잘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차들의 바퀴 자국을 보고서 따라가는 걸까 싶다가도 여러 갈래로 흩어져있는 흔적들을 보고서 운전사가 신과 다름없어 보였다.

 

 

[크기변환]지평선A768.jpg

 

 

여행 초반에는 남쪽, 고비사막으로 향했다. 고비사막의 언덕 홍고링엘스는 몽골어로 ‘노래하는 모래’를 의미한다. 우리는 사막을 오르기 전 낙타를 탔는데 생각보다 몸집이 컸다.

 

낙타 체험을 할 때는 무수히 떨어지는 똥들을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버릴 바지를 입고 갔는데 나에게는 똥이 아닌 다른 시련이 있었다. 내가 탄 낙타가 아닌 다른 낙타가 다가와 혀로 내 바지를 핥아댔다. 바지가 끈적해졌다. 다른 사람은 발에 똥이 묻는 수모를 겪었다.

 

혼란스러웠던 낙타 체험이 끝나고 사구를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여행 중 제일 기대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래 언덕을 오르는 것은 그냥 언덕을 오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세한 모래에 발이 푹푹 꺼졌고 한 발자국 내디디면 두 발자국 내려갔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지기 전에 극적으로 정상에 도달했고 사막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올라가기 시작한 곳은 여행자들의 차가 있던 곳으로 사막치고는 북적였는데, 사구 너머로 보이는 반대편의 사막은 아무도 없는, 모래와 바람의 망망대해였다.

 

이 사구에서 내려가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자연에 압도되는 느낌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크기변환]홍고링엘스8C.JPG

 

 

우리는 여행 내내 게르에서 잠을 청했다. 여행자 캠프들은 모두 게르로 되어있는데 안에는 침대밖에 없어 자고 술을 마시는 공간이었다. 씻고 밥을 먹는 건 캠프의 공용 화장실과 식당을 사용했다. 샤워실이 있는 캠프는 좋은 캠프였다. 푸세식 화장실이었던 캠프도 있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캠프도 있었다. 머리를 감을 수 없는 날에는 생수통 뚜껑에 구멍을 내서 초원 한복판에서 머리를 감기도 했다.

 

일행들을 몽골에 도착해서야 처음 만났지만 잘 맞았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선 계속 게르에 머물러야 했는데 인터넷이 거의 터지지 않으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블루투스 스피커와 빔프로젝터, 감성이 느껴지는 조명으로 게르 천막에 영화관을 만들었고, 각자 가져온 에어배드에서 영화를 감상하곤 했다. 지나가던 다른 팀들이 부러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카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파티를 벌였다. 하루는 깜깜한 사막 한가운데서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놀다가 시끄럽다는 항의를 들었다. 그러면 캠프에서 더 먼 곳으로 향해 파티를 계속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아침엔 푸르공에서 녹초가 되었다. 어차피 이동하는 건 힘드니 술 마시고 죽은 듯이 자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숙취 여행이었다.

 

 

[크기변환]게르영화관0.JPG

 

 

몽골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별이다. 별이 몇 보이지 않는 서울 하늘과 달리 몽골에선 별자리와 은하수가 선명히 보이고 몇 초 간격으로 별똥별도 떨어진다. 초반에는 고개만 들어 올리면 별들이 하늘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게 너무 신기해서 한참 동안 별을 쳐다만 봤다. 요즘 유행하는 불멍(불 보면서 멍때리기)이 아니라 별멍이라고 할까나.

 

 

“밤이 되면 별들이 하늘에 대롱대롱 걸려있었다. 서울과 같은 행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나는 이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별똥별에게 말했다. 근데 다른 별똥별들도 몇십 개씩 떨어졌다. 계속 별똥별이 떨어지니 신빙성을 잃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소원을 빌었다. 무수히 많은 별똥별에게 똑같은 소원만 빈다면 하나는 들어주겠지.”

 

(2019.08.02)

 


[크기변환]별ED001.JPG

 

 

몽골 여행은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자연 속으로 뛰어드는 여행이므로 벌레와 똥을 피할 수 없다. 건조한 남쪽에서는 나방들과 한 게르에서 자야 했고, 북쪽 초원에서는 양과 말들의 똥, 날아다니는 여치를 피해 걸어 다녔다.

 

게다가 우리는 시베리아 산불로 인해 북쪽에서 내려온 벌레떼의 습격을 받았다. 게르 안에서 톡톡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벌레떼의 숫자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밝은 곳을 좋아하는 나방과 다르게 그 벌레들은 어두운 곳을 좋아해 사람 귓속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귀마개, 침낭, 마스크 등으로 무장했지만,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내야 했다.

 

나에겐 음식도 몽골 여행에 큰 장애물이었다. 양을 주식으로 하기에 대부분의 음식에 양이 들어간다. 전통 음식 허르헉은 냄비에 양고기와 뜨거운 돌을 집어넣어 익히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양고기가 들어간 만두 호쇼르, 양고기 볶음밥 등 모든 음식에 양고기가 들어간다.

 

외국 향신료와 고기 잡내에 민감한 나는 여행을 시작한 뒤 며칠 되지 않아 라면을 먹기 시작했고 후반부에는 라면도 질렸다. 귀국 전 마지막 날에는 세끼를 다 굶었다. 일행들도 해외에서 음식을 가린 적 없었지만, 고기 잡내에 지쳐 여행 후반이 되어선 양고기 먹기를 포기했고 우리들은 합심해 한국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몽골의 대형 마트에서는 참치, 김 가루, 고추장, 참기름, 김치 등을 판매한다. 질릴 대로 질린 양고기 볶음밥에 김 가루와 고추장, 참기름을 버무려 볶음밥을 해 먹었고, 김치찌개나 제육볶음을 만들어 흰쌀밥과 함께 먹었다.

 

2주 동안 매 끼니마다 고기를 먹다 보니 해산물도 그리워졌다. 어느 날 캠프에서 미역국을 해준다기에 제발 양고기를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가 아닌 해물의 맛에 마음속에서 눈물이 흘렀다.

 

 

[크기변환]한국음식F.JPG

 

 

북쪽으로 향하다가 푸르공이 고장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가 고장 난 곳은 아무것도 없는 초원 한복판이었다. 무거운 짐들을 내리고 우리는 차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좁은 차 안에서 구부려졌던 관절들을 하나씩 피기 시작했다. 운전사는 우리한테는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있는 게르를 보고 도움을 청하러 떠났다.

 

그는 게르에서 전화를 빌려 가장 가까운 마을에 도움을 요청했고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차를 끌고 올 동안 우리보고 그 게르에서 쉬라고 했다. 게르에 도착해보니 몽골 유목민의 게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잠을 자는 여행자 게르와 큰 차이는 없었으나 게르 한쪽에는 부엌과 음식도 있었고, 전화기도 있었다.

 

게르에 사는 유목민 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안나와 엘사가 그려진 겨울왕국 티셔츠를 입고 우리를 신기한 눈을 쳐다보는 아이들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몽골 전통 음식을 조금 떠 주었다. 양의 우유로 만든 발효 식품으로 크림치즈와 비슷했다.

 

마을 사람들은 먼 거리를 달려 우리를 데리러 왔고 유목민의 게르에서 발걸음을 뗐다.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모로 몽골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크기변환]유목민A6.JPG

 

 

북쪽으로 향한 곳에는 홉스골 호수가 있었다. 호수는 제주도의 5배가 되는 크기로 우리나라의 호수와는 비교할 수 정도로 크다. 호수에서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는데 위도 50도에 위치한 홉스골 호수의 물은 8월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몽골 여행의 막바지를 앞두고 여행자 캠프에선 캠프파이어를 벌였다. 많은 여행자가 몰려들었고, 몽골을 여행하는 몽골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캠프파이어 앞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고 술을 마시며 놀다가 가이드를 통해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우리와 나이대가 비슷한 몽골의 청년들이었다.

 

캠프파이어의 불이 꺼졌지만 우리는 스피커와 술잔을 챙겨 호숫가로 가서 몽골 청년들과 파티를 계속했다. 비가 오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실 사람을 지목했던 광란의 파티였다.

 

 

[크기변환]캠프파이어2.jpg

 

 

분명 나는 몽골 여행을 떠나기 전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핸드폰을 꺼두면서 혼자서 생각할 귀중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되려 몽골에서 만난 일행들, 유목민, 마을 사람들, 청년들은 더 소중한 것을 일깨워줬다.

 

진정한 소통.

 

당시 나는 삭막한 도시에, 거짓된 인간관계에 지쳐있었고 표면적으로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진정으로 연결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 같다.

 

도시에선, 너무 바쁜 하루가 흘러가지만 공허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사람으로 가득한 길을 걷지만 텅 비어있는 공기를 마주한다. 오히려 10시간씩 달려도 집 하나보이지 않는 넓은 자연 속에서, 메세지나 SNS 알림도 울리지 않는 그 공허한 시간들 속에서,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따뜻하게 보냈다.

 

그 온기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크기변환]몽골.JPG

 

 

그래서인지 한동안 한여름 밤 꿈같은 몽골의 풍경이 계속 아른거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의 중력은 똑같았고 귀국일은 찾아왔다.

 

8월 중순, 건물을 나오자 아스팔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로 숨이 턱 막혔다.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어질어질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해를 보니 그 햇빛이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빛났다. 끈적한 공기와 눈이 부신 햇빛 아래를 걸으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고요한 지평선을 떠올렸다.

 

몽골 여행의 환상 같은 기억을 잠재우며 나는 혼자 길을 걸었고, 혼자 잠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외롭고 허전한 마음은 여전했다.

 

언제나처럼 별을 보다 보면 내 소원은 어디로 증발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2019.08.15)

 

 

몽골 여행은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고 동시에 정말 재밌던 여행이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에 다시 몽골에 방문할 마음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2019년의 몽골을, 계속 떨어지던 별똥별을, 끝없는 모래 언덕을 그리고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평생토록 추억할 것 같다.

 

 

[크기변환]마지막69.JPG

 

 

[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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