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존과학의 세계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도서]

아포카토 같은 보존과학의 매력을 알다.
글 입력 2020.12.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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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예술은 감정적이고 모호한 것이고, 과학은 현실적이고 정확한 것들이라고 말이다. 서로는 교집합이 전혀 없는, 독립적인 학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화, 그림, 예술품, 노래 등의 예술은 TV나 핸드폰 같은 IT 적 매체를 통해 볼 수 있고, 노래 등 창작물은 녹음기와 기계를 통해 세상에 나오듯 서로 잘 어울렸던 것인데 말이다.


책을 읽으며, 과학과 예술의 공생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픈 그림을 치료하는 '미술품 의사'(미술 보존가) 일을 한 김은진 작가. 그의 도서를 통해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을 ‘보존’하고, 과거의 것들과 현재의 것들을 ‘지키는’ 보존 과학에 대한 정보와 고민, 애정, 예술품의 일화를 알게 되었다.

 

동시에 예술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더 이성적이라며 정 없다 오해했던 과학이, 사실은 예술품이 가진 이야기와 감성을 지켜주는 가장 가까운 영역이란 것도 말이다.




직업 정신과 고민, 애정



 

되돌리려고 하는 모습 혹은 멈추려고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16p)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복원가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그림의 색이 변했다면 왜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원래의 색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 보존가의 역할이다. 93p

 


“되돌리려고 하는 모습 혹은 멈추려고 하는 모습”이라…. 참 예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에 대한 존중도 함께 느껴진다. 고정된 채 영원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걸려 있을 것만 같던 한 예술 작품이, 나와 함께 시간을 타고 흘러가는 것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미술 보존가는 ‘작품이 가장 그 작품다워졌을 때’를 고민하고, 그 앞으로 관객을 인도해주는 고맙고 멋진 존재다.


 

무조건적인 배접과 간섭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보존가들 사이에서 싹텄고, 작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 보존 처리에 대한 모든 결정에 신중해졌고, 재료와 기법에 관한 깊은 연구가 선행되었다. 145p

 

뭉크의 그림 앞에서 질문을 던진다. 이 먼지는 정말 제거의 대상일까? 뭉크가 살아있다면 이 먼지를 깨끗하게 제거하기를 정말 원했을까? 이 먼지는 작품에 손상을 주는 먼지일까? 어떤 재료와 방법으로 이 먼지를 닦아야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까? 나에게는 충분한 기술이 있나? 149p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은 나에게 감동과 동기를 북돋아 주었다. 고민하는 자체가 직업에 대해 프라이드와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기에 흐뭇했고,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기에 의구심이 들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그런 흥미로운 일을 직업으로 만날 수 있을까’하는 부러움과 그랬으면 하는 개인적인 염원의 마음도 생겨났다.


또,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건, 직업은 겉으로 보는 단 한 줄의 <00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간단히 설명된다고 해서, 대충 생각할 만큼 <쉬운 일이 있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간추려 말했을 뿐이지, 사실 모든 직업은 반복되긴 해도 복잡하고, 지식과 경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리라.

 

뭐 하나 쉬운 일 없다고 하기에,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이들이고, 누군갈 함부로 재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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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보존은 작품의 과거 모습, 작가가 붓을 놓은 그때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새로이 마주하게 되는 재료와 그 보존상의 문제를 예측하고 작가, 작품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즐긴다. 그만큼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숙제는 늘어나지만, 사실 그것이 진정한 미술품 보존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200p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작품의 처음, 원래로 되돌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지게 될 창작물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대비하고 공부하는 일도 겸비하는 것. 어쩌면 보존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함께하며 작품의 일대기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직업(일)을 평면화시키고, 숙제로 미뤄두느냐 아니면 입체화시켜 즐거움을 찾고 생명을 불어넣느냐는 일을 하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달려있다.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아 마땅한 각자의 마음이지만, 적어도 저 문장 속에선 작가가 후자를 말하고 있음에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숙제가 늘어나면 부담되지.’란 내 찰나의 생각을 곧이어 ‘진정한 즐거움’이라 푹하고 콕 짚어내니 민망하면서도 부러웠다. ‘보존가’란 업의 매력을 증폭시켰던 문장이다.


 

 

보존과학의 과제



도서를 읽다 보면, 이따금 “과제로 남아있다, 해결해야 할 것이다.”라는 몇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언뜻 열린 결말 같아, 알 수 없는 그 끝이 내심 궁금하고 아쉬웠는데, 작가의 에필로그에서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지만, 매 순간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이다.’란 것을 보니 이 ‘열린 결말’이 오히려 보존과학이 가진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진 건, 항상 답이 있고,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는 과학의 다른 면모를 처음 마주했기 때문은 아닐까. 과학이 매번 그렇게 정해져 있지만도 않구나, 예술과 만나면 또 다를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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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매개체



본 적도 없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경험이나 감상을 원할 땐, 책이라는 매개체가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는 말을 새삼 느껴본다. 보존과학에 대해 곁눈질로라도 알게 되어 신선한 경험을 했고, 작품들의 이야기와 보존가로서의 고민과 애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책은 그 사람만이 가진 이야기와 정의를 머금고 있다. 내게 와 닿은 문장이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정의를 볼 수 있는 문장이 있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물성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과 ‘우연’이라는 요소가 작품에 더해져 오늘의 작품이 된다.” 234p

 

‘그냥 된 것이 아니다’는 말일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말마따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모든 존재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되는 말이지 않나. 그냥은 없다. ‘시간과 우연’이 만나 지금을 이룬다.


처음 보는 미술 보존의 이야기를 보며 나 또한 새로이 느낌을 정의해 볼까 하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아포카토 같다> 책은 내게 보존과학을 그렇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온도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따로 일 때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과 달콤쌈싸름한 커피의 조합처럼, 같이 매력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닮아서다.


아포카토 같은 보존과학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작품의 이야기와 작가의 고민과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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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
 
 
지은이
김은진
 
출판사 : 생각의힘
 
분야
교양과학
 
규격
140*215mm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11월 06일
 
정가 : 17,000원
 
ISBN
979-11-90955-03-4 (03600)

 
[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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