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정을 담는 것도 페미니즘 - 연극 '작가'

글 입력 2020.12.05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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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분노는 상업적으로 이용된다


  

 

Summary

 

빈 극장에 두고 간 가방을 찾으러 다시 돌아온 여성은 극장에 남아 있는 남성과 마주치게 된다. 여성은 작가, 남성은 연출로 오래전 남성은 여성의 예술성을 치켜세워주면서 성추행을 시도한 전력이 있다. 이번에 연출은 그 여성 작가의 분노에서 상업적 잠재력을 인지하고 다시 한번 글을 써 보라고 권한다.

 

<작가>는 현재 여성 예술가가 겪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작해 작가는 어떤 작품과 어떤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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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여성의 자신을 향한 분노를 보며 반성은 느끼기는커녕, 매력적이라며 상업적으로 바라본다. 여성은 허탈해진다. 여성에게 예술은 신성한 곳이고, 사회에게 던지는 메시지지만, 남성은 그 분노 모두가 돈이 되는 것뿐이다. 그리고 자본을 이용해 오히려 여성을 입막음하고 커리어로서 유혹한다. 누군가의 분노는 그렇게 상업적으로 이용된다.

 

 

 

연극인지 아닌지 모호한 경계의 연극



화내는 여성과 그런 그를 오히려 상업적으로 바라보는 남성 연출가의 말싸움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극 중의 극이었다. 그 극이 끝난 후 관객들과의 비평회로 연극은 또다시 시작된다. 관객석에서 질문하는 사람조차 배우다. 무대에서 현실이라고 표현되는 것조차 연극처럼 묘사되어 어느 것이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여성 작가가 집에서 남자친구와 다툼하는 장면도 나레이션이 추가되는 등 연극적으로 표현한다.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고 혼란스럽다.

 

이런 모습마저, 모호함까지 주인공의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매번 실제 연출가와 다툼이 일어난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지만, 연출가에게 글이란 상업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더불어 인간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점을 들어온다. 영화 제안이 들어와서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길 바라는 남자친구의 모습에서 주인공은 괴리감을 다시 한번 느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글에 대해 매번 수정을 거듭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일상 속에서도 동일한 과정이 일어난다. 점점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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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이야기, 소재를 넘어 형식에 대하여


 

연극 <작가>는 페미니즘을 단순히 소재로써만 사용하지 않는다. 여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적절한 형식에 대한 고민을 같이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에 맞는 형식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포함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믿는 여성 희곡 작가가 끝날 것 같지 않은 수정의 과정을 거치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무엇이 진정한 글쓰기인지, 무엇이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구축하는지, 진정한 글쓰기에 대한 노력은 무엇에 부딪히고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형식에 대한 정답은 당연히 없다. 연극 <작가>는 어떤 형식이 정답인지 결말로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했던, 자신은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관이 흔들리며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과 고민마저 일종의 페미니즘으로 보인다.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페미니즘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로서만, 소재로서만 표현할 때 다소 평이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상만 이야기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 속 여성 작가도 표현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듯이 엘라 힉슨의 실제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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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혐오했던 모습은 나 또한 가지고 있었다


 

‘나만의 글쓰기’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작가의 모습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했다. 그런데 과연 작가는 자신만의 것을 잘 지켜오긴 했을까? 지켜오긴 했다. 그리고 자신도 혐오했던 모습을 답습하기도 했다.

 

그동안 작가는 자본, 가부장제와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했으며, 그러려고 노력했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던 그는 이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가부장제라는 단어는 그에게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그는 깨닫는다. 그 여자친구에게 강압적이었으며 가부장제를 답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자신보다 연상인 여자친구는 만나지 않고 연하만 만났다. 단 한번도 연상을 떠올리지 않았다.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타파를 위해 목소리를 냈음에도 오히려 자기 자신이 여성에게 강압적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마치 남성 연출가에게 자기에게 세뇌를 걸었던 것처럼 “너 또한 (가부장제를) 즐겼잖아!” 가 맴돈다.

 

답습했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혼란스러워하고 극은 끝을 내린다.

 

 

 

어렵고 애매해서 공감됐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연극은.’ 그만큼 경계가 흐리고, 무엇이 현실이고 연극인지 알 수 없었다.

 

연극은 특정한 내러티브가 없었고 다소 의식의 흐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가 떠오르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계속 써 내려갔듯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의 주인공 속 머릿속을 보는 듯 했다. 누군가의 뇌 안에 있는 것은 정말 머리가 아팠고 어려웠다.

 

'아, 어렵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메시지인가?' <작가>의 작가는 끊임없이 글에 대해 고민하고 어려워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의 글쓰기 방식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렇게 어려웠고, 이렇게 싸웠어. 나는 벗어나고 싶었는데 못 벗어났더라. 어떤 방법이 좋은지 모르겠어.’

 

그래서 공감이 갔다. 무엇이든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없다. 처음, 낯선 곳, 적대적인 곳에서는 누군가의 메아리만 존재하고, 대답은 들려오지 않기도 한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갔다.

 

모든 과정이, 고민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가장 여성의 이야기를 했던 연극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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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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