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에 기대어 한 번 더 살아보려는 마음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사람을 살리는 시의 힘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글 입력 2020.12.0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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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파리에서 강도를 만나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야 패닉이었지만 핸드폰이야 보험처리 하면 그만이고, 사진들은 클라우드에 저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아까운 건 따로 있었다. 몇 년 동안 메모장에 모아둔 시들이 다 날아간 것이다. 어쩌다가 내 마음을 울리는 시를 마주할 때마다 메모장에 넣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읽곤 했다. 마음이 어지럽고 괴로울 때 시를 읽으면 조금이나마 잠잠해지곤 했다. 그래서 시로 자주 도망치곤 했다.

 

뮤지컬 <팬레터> 넘버인 ‘해진의 편지’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새삼스레 말이 맴돈다. 너의 말들로 그때를 내가 버티었다.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랑했던 시들로 버틴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생진 시인의 <꽃과 사랑>의 한 구절처럼 꽃은 시들더라도 ‘시는 시드는 일이 없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들지 않는 꽃들로 내 안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

 

지금도 힘들 때 마다 시에 기대곤 한다. 그래서 일까.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라는 제목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나태주 시인은 과연 어떤 시들에 기대어 삶을 버티어 냈는지 궁금해졌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_평면.jpg

 

 

나태주 시인은 본인이 기대어 살아왔던 114편의 시를 5가지 분류로 나누어 싣고, 시마다 짤막한 감상을 남겼다. 나태주 시인이 일종의 시 큐레이터가 된 셈이다.

 

나태주 시인이 주로 활동한 시기 때문인지,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박재삼 작가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처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작품들이 많다. 학창시절에도 시를 좋아해서 문학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다. 교과서나 모의고사에서 좋은 시를 발견하면 포스트잇을 붙여놓곤 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달라져서 일까 아니면 나름대로 시를 즐겼다고는 했지만 한국의 고등학생답게 입시에 매몰되어 있어서 시야가 좁아져 있었던 탓이었을까. 그 시절 읽었던 시들을 다시 읽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의 시들은 대부분 낯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 쓴 시들을 즐겨 읽은 탓인 것 같다. 내가 혼자서 찾아 읽었다면 잘 읽지 않았을 시들을 나태주 시인의 소개와 함께 읽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추워진 탓인지 요즈음 마음이 자주 무너졌다. 무너진 마음을 붙잡고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를 읽었다. 몇 편의 시들이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하려 한다.

 

 

<비망록>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정희

 

 

나태주 시인은 이 시에 대해 ‘도대체 우리는 자기가 자기에게 걸었던 기대의 몇 퍼센트나 이루며 사는 것일까.’라고 이야기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나에게 많은 기대를 했었다. 나는 정말 멋진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고, 분명히 그렇게 살면서 행복할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마주하는 건 필연적인 실패와 초라한 나였다. 그리고 나는 애쓰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타협이 나를 더 안정시켜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더 자주 슬퍼졌다. 내가 너무 나라서,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라서 서러웠다.

 

내가 너무 나라서 서러울 때에는 왜 꼭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날까. 이 시를 읽던 새벽에도 그러했다. 내가 너무 나라서 서러웠다. 그래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존재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시절들을 떠올리다 버틸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에 시집을 들었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목이 메어도 불러본다. ‘사랑하는 사람아’ 라고.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최승자

 

 

최승자 시인의 시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특유의 에너지를 사랑했다. 자신에 대한 혐오와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파괴적인 문체에 담긴 에너지가 있었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최승자 시인의 시를 발견했을 때 더욱 반가웠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시들이 사랑을 노래한다.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다. 어떤 이는 사랑은 모든 문학을 관통한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렇게 사랑은 낭만화 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외치는 비극적인 청년의 이미지는 너무도 흔하다.

 

하지만, 최승자 시인은 아무리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고 하여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고 노래한다. 나태주 시인은 최승자 시인이 이 시에서 ‘인간 사랑의 허구성, 잔인성’을 노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낭만화 된 사랑은 사랑이 있다면 모든 아픔을 잠재워 줄 것이라고 우리를 매혹한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사랑을 해도 매일같이 어깨에 얹어지는 삶의 짐을 지어야 하고, 아픔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시인은 사랑은 꽃처럼 언젠가는 꺾이기 마련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문체에 담긴 에너지 때문일까. 언젠가 꺾일 것을 알면서도 ‘살아,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그리하여 시의 화자가 허구적이고 잔인한 사랑의 비극적 피해자가 아닌 숭고한 순례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덧붙이자면, 시의 마지막에서 ‘네 꽃병에 꽂아다오.’를 세로로 적어 내려간 것은 꽃 병에 꽂힌 꽃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의 배치로 꽃의 이미지를 표현한 이 시는 꽃병과 동시에 내 마음에 날아와 꽂혔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종종 나는 한 사람이 통과한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들은 휘발되는 것일까. 하지만 정현종 시인은 그 시간조차도 그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떤 이를 만나고 그 사람이 좋아지면, 나는 그에게 무한한 궁금증이 생긴다. 나를 만나기 이전에는 어떤 시간을 통과하며 살았는지, 지금의 그는 어떤 마음으로 나와 함께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기대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은 어떤 모습일지.

 

나태주 시인은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썼으며 스스로를 위로했으며 또 자신에게 용기와 축복을 주고자 했을까.’ 라고 이야기한다. 때로는 내 안에 그리고 내가 마주한 이들의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여 왔는지, 그리고 우리의 앞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겹겹이 놓여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아득해 지기도 한다.

 

여태껏 쉽게 부서졌던 마음들이 저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부서지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함께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이 축복이길 바라며 함께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잡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나의 일생과 누군가의 일생이 만나 부서지기 쉬운 마음들을 감싸 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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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를 보내곤 한다.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해주고는 싶지만 나의 언어로는 자신이 없을 때 시인의 언어를 빌려 나의 마음을 보내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이 이 시들을 엮어낸 마음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시를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늘어진 어깨를 일으켜주는 시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사람과 동행하는 시들입니다.

 

이 책에 모은 글들이 그렇습니다. 많이 힘들고 고달픈 날들, 나를 살리고 나를 위로해 준 시들이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살려주고 일으켜주고 용기 또한 빌려줄 것으로 믿습니다.

 

한 시절, 나에게 와서 나를 살린 이 시들에게 머리 조아려 간절히 주문합니다. 그들에게 가서 그들도 살려달라고.

 

 

사람을 살리는 시의 힘을 믿는다. 그 힘에 기대어 조금은 더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 시는 찬란한 나의 편 -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한국시

규격
117*198㎜

쪽 수 : 260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927-96-3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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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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