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김은섭

진중한 위로의 말
글 입력 2020.12.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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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찾아온 병은 언제나 불청객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암은 예고가 없을뿐더러 치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중병이다. 사실, 병중에서도 암은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경험이라 암을 얻은 당사자의 언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병과 싸우느라 말할 여유가 없거니와 다행히 치료를 마쳤다 하더라도 치료받는 받는 동안 쏟아 부은 기력을 회복하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자신의 병을 알릴 여지는 더더욱 없다.


김은섭은 암환자가 된 날 밤, '내가 얼마 동안 어떻게 살든 현재 상황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매일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했다.

 

 

"나는 아픔과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이들의 고독에 한 뼘의 어깨를 내어줄 친구가 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 프롤로그 중

   

나는 암 환자의 가족이다. 재발도 전이도 아닌 두 번째 암 수술이 지난달에 있었고, 현재 나는 환자와 매일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래서 암이라는 주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경험이 있는 환자와 보호자만의 공감대가 나를 위로해줄 것 같다가도, 남의 이야기를 듣기엔 내가 너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배려가 담긴 제안을 받았고 그 마음이 이 책을 내게로 오게 했다.

 

*

 

저자가 암을 알게 된 ‘신의 한 수’가 우리에게도 있었고, 병원을 고르는 마음도 엄마와 닮아있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엄마도 암 판정을 받고 며칠 사이 살이 많이 내렸었다. 저자가 의료사고를 걱정했듯, 엄마의 수술이 잘못될까 잠을 설치는 밤과 울며 잠드는 밤이 뒤섞인 날을 보냈다. 이렇게 보면 암에서 마저 사람 사는 게 참 비슷한 거 같은데, 그때는 남이고 뭐고 내 감정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다.

 

"멀쩡한 사람도 몇 시간 지나면 아플 것 같은 공간, 그곳이 병실이다. 지리멸렬한 환자의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은 의사의 회진이다." - 56쪽

 

우리는 서관에서 시작해서 동관을 지나 신관까지 산책하러 다녔다. 하지만 때를 잘못 맞추면 환자들이 이송되는 어수선한 병동을 지나게 되었다. 생전 마주칠 일 없는 중병의 환자들을 보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수액 걸이 탈탈 소리 내는 울퉁불퉁한 바닥을 감수하고, 차가운 바깥 공기를 이기기 위해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옥외휴게실로 나갔다.


매일 오전 의사의 회진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일과였다. 상태를 확인하고 궁금한 걸 물어보고 위로 받는시간. 담당 교수님이 워낙 친절한 데다 환자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는 분이라 그 순간이 더 특별했다. 전날과 다른 상태에 ‘왜 그럴까?‘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걸 물어보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하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암 초보인 우리에게 선생님은 정말 커다랬다. 주말에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나와 혼자 회진을 도시며 우리에게 정보를 주는 선생님은 정말이지 풍랑 중에 만난 귀인이었다.

 

   

사실, ‘그나마 다행’이란 말은 내가 암이 생긴 후에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누군가 나와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면 나 역시 같은 말로 위로했을 것이다. (...)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나마 다행’이란 말을 들으니 그리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걸 아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 71쪽

 

나도 엄마도 다행이란 얘기를 했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서 다행이다,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만하길 다행이다. 그 말은 일부만 진심이었다. 이미 암이 생겨서 위의 절반을 떼어낸 일은 어떻게 해도 다행인 일이 아니었다. 입으로 다행이라고 내뱉으면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우리의 입이 아닌 다른 입으로 다행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암은 다행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암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너무나도 쉽게 갉아먹어서 위로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발병 사실을 알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내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좋은 일도 아닐뿐더러 내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어휴 정말 큰일이네? 그래, 상태가 어떤데? 몇 기래?”같은 어설픈 위로 따위의 말을 듣기 싫어서였다. - 71쪽

 

엄마도 저자와 비슷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걱정할 테고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할 텐데 그때 괜찮다고 위로하는 과정이 너무 피로해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처음엔 타인의 걱정조차 버거울 정도로 엄마가 지쳐있다고 생각했는데, 간병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회진을 기다리고 아침 식사를 지켜보고 한숨 돌릴 때쯤 돼서 핸드폰을 확인하면 엄마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로 메신저 상단이 가득 차있었다. 절로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관심을 주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다. 관심이 있으니 걱정도 하고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것도 생기는 걸 안다.

 

하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은 하나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걸. 그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걸.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난 지금 어린아이처럼 아프다고 마음껏 칭얼대고 울고 싶어.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가엾게 여겨주고 다정하게 다독여주며 함께 우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것이 절실히 필요해.’ - 124쪽

 

나는 부모가 아니기에 부모의 마음을 잘 모른다. 부모인 환자의 마음은 더더욱 모른다. 일을 그만두고 거의 매일 낮마다 엄마와 산책한다. 혼자서는 산책이 힘든 엄마의 팔걸이가 되어 한 시간가량을 걷는다. 가을비가 내린 뒤 날이 추워졌고 내 수족냉증이 고개를 들었다. 햇빛을 받다가 바람을 맞다가 하고 있으면 손이 따뜻한 엄마가 내 손을 가져간다. 차가운 손을 녹이라면서. 내 역할은 팔걸이에서 차가운 팔걸이로 단계가 떨어졌다.

 

엄마가 암 선고를 받은 날, 나는 우는 얼굴로 돌아온 엄마를 맞이했다. 엄마는 다 괜찮은데 내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가 아닌 마지막까지 눈에 밟히는 존재였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날 엄마 몰래 가방에 반성과 다짐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넣었다. 편지를 읽은 엄마는 나에게 걱정 말고 밥 잘 먹고 잘 자라며 사랑한다고 했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댈 수 없다. 다독임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처음엔 엄마가 강인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니 본 적 없는 엄마의 고독함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울고, 후기를 쓰면서 울고, 휴지통에 눈물 젖은 휴지가 쌓였다. 정말 부디 제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저자인 김은섭 작가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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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 김은섭

출간: 나무발전소

분야: 에세이

판형: 신국판

쪽수: 240쪽 

발행일: 2020년 10월 31일

정가: 14,000원 

ISBN: 979-11-86536-72-8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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