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을 마주하는 당신의 세 얼굴 [영화]

글 입력 2020.11.2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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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미국의 어느 파티장, 청년 시절의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감미로운 음악 속에서 시선을 나누던 첫 만남도 잠시, 영화는 곧바로 시간을 뛰어넘어 두 사람이 부부가 된 몇 년 후의 현재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마치 행복한 시절의 종결을 은유하듯 에이프릴이 주연을 맡은 연극은 혹평 속에 막을 내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폭력적인 다툼은 금세라도 부서질 듯한 위태로운 부부 관계를 보여준다. 침몰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리로의 이민을 결심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멋진 휠러 부부. 두 사람은 행복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레볼루셔너리(Revolutionary)'라는 단어가 주는 웅장함 덕에 장대한 시놉시스를 예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서사는 관객이 기대할 법한 큼직하고 복잡한 사건들로 차있기보다는 퍽 단순하고 깔끔한 편이다. 또한 인물 사이에서 치달을 갈등을 자극적이고 쇼킹하게 연출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물 내면에서의 갈등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역동적인 느낌과는 사뭇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매 순간 인물의 심리를 치열하게 뒤쫓는 방식으로 관객의 사고를 채찍질하기 때문에 동떨어져 멍하니 관람할 수 있는 영화 역시 아니다. 이는 전작 '아메리칸 뷰티' (1999), '로드 투 퍼디션' (2002)에서도 보여주었던, 휴머니즘적 시각을 기반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첨예한 고찰을 이어온 샘 멘데스 감독의 특색이다. 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을 비교적 친절히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방식 덕분에 관객은 쉬지 않고 갈등을 빚는 두 인물 사이를 오가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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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표현하는 에이프릴은 특별해지고픈 이상을 지닌 인물이다. 집시 여인처럼 자유분방하고도 강인한 내면을 소유한 그녀의 특별함에 대한 갈망은 영화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 있다.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꾸었다는 배경 설정과 더불어 여러 번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되듯이, 평생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꿈꿔왔고 이후에도 꿈꿀 수밖에 없는 에이프릴에게 현재의 평범한 삶은 마치 가라앉는 배와 다름없다. 이웃에게서 '여전히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다'라는 말을 듣는 그녀는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 미소를 띠지만, 관객은 그 내면의 깊은 곳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꿈틀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에이프릴에게 파리로의 이민은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진다. 특별한 곳에 가면 빛바랜 우리도 다시 특별해질 수 있지 않을까. 특별한 사람 프랭크에게 유일하게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남았다는 파리에 그녀는 이끌릴 수밖에 없다. "우린 특별한 거 없어.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우리도 결국 굴복했잖아." 파리에 가고자 프랭크를 설득하던 대사에서 사용한 '굴복'이라는 단어로 보아 알 수 있듯 그녀에게 파리행은 단순한 갈망을 넘어선 두려움이 기저에 깔린 선택이었다. 이대로 평범한 삶에 잠식되어 버릴 두려움. 이상을 포기할 수 없는 그녀는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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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역시 자신만의 이상을 가진다. 그는 좋은 남자, 능력 있는 남편으로서의 지위를 꿈꾼다.


에이프릴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되듯이 오프닝의 고속도로에서도, 결국 파국에 치닫게 된 결말 부의 싸움에서도 프랭크는 '대접'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대접이라는 건 흔히 말하는 남자다움, 즉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남자의 능력으로 얻는 지위를 뜻한다.

 

평소 그의 콤플렉스처럼 보였던 회사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그런 재미도 의미도 없는 일을 왜 하냐' 묻던 다소 모욕적인 언행에도 웃음을 보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그는 '남자임을 입증하려 임신시켰다'라는 말에는 분을 못 이겨 길길이 날뛰고 폭언을 퍼붓는 등 폭력적인 면모를 참지 못한다. '남자라고 할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라는 아내의 말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같은 언쟁은 그의 가장 깊은 콤플렉스가 단순히 '갈망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찾지 못해 자신이 원하는 남자(남편)로서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에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진짜 남자'라는 말에 결정적으로 설득되어 파리행을 결심하고, 심지어는 본인의 입으로 남자임을 확인받고 싶어 외도를 저질렀다 털어놓는 장면으로 이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랭크의 깊은 콤플렉스는 샘 멘데스 감독의 전작 '아메리칸 뷰티'(1999)에서의 레스터(케빈 스페이시)를 연상되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이라는 상품의 가치인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 권위를 잃고 끝내는 붕괴했던 레스터의 가족.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미국의 가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관한 감독의 사유가 드러나는 인물인 셈이다.


따라서 파리로 떠나 원하는 직업을 찾고 정착한다는 그들의 계획은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이상이 모두 충족될 수 있는 유일한 합치점처럼 보이지만, 이 이상적인 플랜은 두 사람의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차이점에 의해 부서진다. 이상 없는 삶을 가장 두려워한 에이프릴과 달리 프랭크는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현재조차 잃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더욱 두려워한 사람이었다.

 

진실된 꿈을 찾고 싶다는 이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 가진 지위조차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고 갈등하게 했다. 사장이 제안한 승진에 흔들리는 모습은 그의 진정한 이상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에이프릴과는 다르게 그는 좋은 남자와 남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갈등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의 사이를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던 프랭크의 욕망은 자취를 감춘 채 합리화를 거쳐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다'로 변모하게 된다.


프랭크의 비겁함은 셋째 아이의 낙태 여부를 두고 다투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프랭크 역시 에이프릴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솔직한 욕망이지만, 동시에 현재 자신이 두려워하는 '파리행으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실패 가능성'을 제거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이때의 그는 진짜 욕망에 솔직해지는 대신 불안을 없애는 편을 택한다. '제정신이면 아이를 지우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이상한 상태라서 역겨운 생각을 하고 있다'라는 가스라이팅으로 아내를 뒤흔들고, 아내의 임신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파리행이 취소되도록 만든다. 그러면서 '불안정한 정신 상태 치료에 필요한 돈은 내가 낸다'라며 자신의 이상인 능력 있는 가장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프랭크의 모습에 에이프릴의 사랑이 식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무료했던 파티에서 유일하게 눈길이 갔던 사람, 그녀는 프랭크의 그 특별함을 사랑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지는 이 평범함에 안주하려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 그가 더는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사랑의 종말을 선언한다.


혼란스러웠던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존재였던 존(마이클 섀넌)은 내면의 실황을 일깨워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설정의 존은 가감 없는 직설적인 발언으로 휠러 부부가 지금껏 잊고 있던, 혹은 애써 외면하려 애쓰던 두 사람의 '진짜 모습'을 신랄하게 비추어 낸다. 후반부의 만찬에서 존이 뱉는 대사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배우 마이클 섀넌이 짧은 출연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유를 증명한다.

 

에이프릴의 텅 빈 눈에서 사랑의 종말을 알아채고는 '당신의 얼굴을 보니 오히려 프랭크가 불쌍해진다'라고 말하는 대사와 '감사한 게 딱 하나 있다면 내가 뱃속의 저 애가 아니라는 것'이라는 대사는 강한 임팩트를 남기며 두 사람의 갈등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존을 통해 프랭크는 자신의 용기 없고 비겁한 면모를 확인하고, 에이프릴은 그런 프랭크의 옆에서 본연의 욕망과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렇게 희망의 부재와 마주한 두 사람은 이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상을 추구하는 자와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가 끊임없이 대립하던 레볼루셔너리 로드, 에이프릴의 부고 후 프랭크는 홀로 도로를 질주한다. 이상이 사라진 채 현실만이 남은 혁명의 길은 고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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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에는 이상을 대하는 인간의 세 가지 얼굴이 담겨있다. 이상을 갖게 되면 사람은 자연스레 그 이상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출발점에서 다르게 갈리는 세 인간, 영화는 그 갈림길을 보여준다.

 

먼저, 영화는 에이프릴을 통해 행동하는 자를 보여준다. 에이프릴은 이상을 위해 지금의 절망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파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에 솔직할 줄 안다. 도덕적 가책이나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자신의 이상을 추진하는 강인함 역시 지녔다.


처음 이 영화를 관람했을 때에는 에이프릴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여겨졌으나 면밀히 뜯어볼수록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12주라는 안전한 시기는 지난 상태였기에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며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는 사람이기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최선이라 생각되는 이상을 향해 선택한 것이었다. 즉 에이프릴은 이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두 번째로 영화는 프랭크를 통해 합리화하는 인간을 드러낸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인파 속에 무표정하게 휩쓸리던 프랭크. 그는 이 일상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인생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거라며 자조하면서도, 때로는 이 길을 걷기 위해 지금껏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영화는 에이프릴의 입을 빌려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꿋꿋하게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일침을 날린다.) 실패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정한 욕망을 회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상. 이는 이상과 사람을 완전히 양분함과 동시에, '지금의 현실이 더 나을 수도 있다'라는 합리화에까지 도달시킨다.


휠러 부부의 마지막 아침 식사 씬에서 프랭크는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라 판단했을까? 생기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는 에이프릴의 얼굴을 보면서도 정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반복해서 영화를 관람할수록 무지가 아닌 무의식적 회피일 거라는 답이 굳어졌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아마 그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껏 그래왔듯 다시 한번 회피한 것일 테다. 그 회피가 어느 때보다도 절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을 뿐.


마지막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상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내면을 갉아먹는 사람이다. 이러한 괴리감이 지속되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이 틀린 방향이라는 생각에 초조하고 불안해하다, 끝내는 그 이상을 폄하하고 깎아내리기에 이른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인간을 비추기 위해 휠러 부부의 이웃인 밀러 부부에 꽤 큰 비중을 둔다.


아내 밀리(캐서린 한) 에겐 그들 부부의 삶 자체가 이상이다. 저녁 식사에서 휠러 부부의 파리행 소식을 듣고 돌아온 뒤 뜬금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열등감에서 오는 불안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무모하다 느끼면서도 그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끼던 밀러. 그녀는 남편이 허무맹랑한 발상이라는 말로 그들의 행동을 일축하고 나서야 마치 이제야 인정받았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다시 한번 자신의 욕망을 외면한다. 그러나 온전히 현실에 안주하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업자인 헬렌(캐시 베이츠) 부인 역시 마찬가지로, 처음 만난 순간부터 눈에 띄었다는 말을 반복하며 휠러 부부의 삶을 부러워하던 그녀는 결미에는 '사실 좋지만은 않았다'라며 그들을 헐뜯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루지 못하는 이상을 앞에 두고 꼿꼿이 이상을 좇는 이와 뒤틀려가는 여러 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나 영화는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에이프릴을 긍정적으로, 회피하는 프랭크를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들은 유형으로 상징화되었을 뿐 각기 다른 세 인물로 나뉘기보다는 한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모습에 가깝다.

 

실패가 두려워 진정한 욕망을 회피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지금 사는 삶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변명하는 사람. 사실은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고 부러 흠을 찾아내 잡는 사람. 모두 어디에선가 본 듯하지 않은가? 영화는 관객에게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기시감을 이용해 맹목적인 비난을 어렵게 만들고, 대립하는 두 가치 중 어느 한쪽이 맞았다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게 만든다. 누구 하나 행복하지 못하는 결말이 그를 증명한다. 무작정 '이상을 추구하라' 혹은 '헛된 꿈을 꾸지 말라'라고 외치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고집하던 중립적인 시선을 결말부까지 집요하게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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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부부의 남편이 보청기의 볼륨을 줄이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엔딩은 그와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형성했다. 아무리 부부라도 모든 걸 나누고 이야기하며 살 수는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따라서 때로는 현실을 회피하며 살아야 한다는 프랭크의 입장과 맥이 통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내 날이 선 채 대립하던 두 사람에 대해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을 드러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수미상관의 배치를 통해 첫 싸움과 마지막 싸움에서 반복하여 보여주듯 휠러 부부의 다툼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에이프릴은 그만 말하길 원하지만 프랭크는 도저히 그만둘 수 없어 극으로 치닫는 식이었다. 그리고 엔딩에서의 남편은 겉으로는 아내의 말을 듣는 척 평화로운 얼굴이지만 몰래 보청기의 볼륨을 줄여버림으로써 소통을 일방적으로 절단시킨다. 이는 갈등의 해소가 아닌 눈속임일 뿐이라는 점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다. 흔히 사랑과 결혼을 바라볼 때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노부부조차 실은 소통이 부재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노부부의 사랑을 예찬하며 긍정적으로 비추기보다는 오히려 참된 의미의 여부를 관객에게 되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이상이라는 절대로 타협될 수 없는 두 축처럼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각자의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어긋났기에 함께 걷기가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엔딩은 그들이 겪었을 법한 부정적인 미래상을 보여줌으로써, 설령 함께 늙어 노부부라는 미래에 도달했다 해도 어차피 이와 같은 껍데기뿐인 사랑으로 종속되었을 것이라는 휠러 부부에 대한 조그마한 연민과 위로처럼 느껴졌다. 비록 끝은 좋지 못했더라도 매 순간 치열하게 모든 감정을 다하며 함께 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더욱 의미 있는 길이었다며 휠러 부부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건네고픈 감독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상을 좇든 현실에 흔들리든, 그 삶은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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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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