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8. 매일의 기쁨

루틴이 하는 가장 큰 일
글 입력 2020.11.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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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여덟 번째 에피소드 <매일의 기쁨>으로 이어갑니다.

 

*

 

루틴을 말해보고자 한다. 그건 '반복해서 행하는 어떤 시간' 정도로 말할 수 있는데, 습관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인 반면 루틴은 의식적으로 반복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계획과는 조금 다르거나 다르지 않다. 내게 있어 루틴은 반복되는 것이나 계획은 매일 새로 세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루틴이 있어야 할까? 그런 의문을 품게 된 건 초등학교 때부터다. 방학 전날 꼭 선생님은 숫자가 쓰인 왕 큰 동그라미가 인쇄된 종이를 준 뒤 칸을 나눠 양치·세수, 공부, 독서, 게임, 일기 쓰기 등을 적게 했는데 나는 실속있게 내용을 채우기보다는 검은색으로 적힌 숫자를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겹쳐 칠하거나 동그라미 밑에 줄기를 그려 꽃으로 꾸미거나 지그재그를 둘러 태양으로 꾸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꾸미기를 더 좋아한다)

 

초딩 홍비의 의문을 풀어주자면 지금의 내게 루틴은 새로운 세계에 던져졌을 때 우왕좌왕 하지 않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말하자면 루틴은 리듬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계에 던져져 혼란스러운 나를 리듬으로 정돈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한다. 내가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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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주일 요약, <라이프컬러링 컬러루틴키트>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요즘 내가 가진 루틴은 이렇다. 저녁에 집에 도착하면 우편함을 확인한다. 우편함에서 가져온 각종 돈 나갈 문서는 집에 오자마자 계좌이체를 완료하고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린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발을 씻고 밥을 해 먹는다.

 

밥의 루틴도 있다. 미역국, 카레, 김치볶음밥, 계란국, 유부초밥, 된장찌개, 라면, 계란말이, 샐러드 등등인데 어쨌든 많은 공을 들이지 않고도 맛있을 수 있는 밥을 해 먹고 자기 전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머리를 대충 말린 뒤 밥 먹은 설겆이를 하고 아침에 돌려놓은 빨래를 넌다. 그다음에 있는 자유시간도 그림 그리기, 독서하기, 넷플릭스 보기 등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7시 30분이면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난 뒤 세수와 양치를 한다.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골라 입은 다음 냉동 도시락을 보냉백에 챙긴 뒤 지갑, 회사 출입카드, 립밤 등을 챙겨 집을 나선다. 통근하는 버스에서 40분은 책 읽고 40분은 잔다.

 

회사에 조금 일찍 도착해 커피를 내려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쉰 뒤 업무에 투입한다. 도시락을 먹으며 부쩍 친해진 회사 동료 B, E, W, D 등등과 스몰톡을 나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가 심해지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이 루틴은 잠시 중단되었다. 대신 넷플릭스를 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6시간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된다. 그리고 또 위에 나열한 루틴의 반복이다.

 

혹시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의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루해 보일까 초조하다. 루틴이 하는 가장 큰 일은 매일의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매일의 기쁨은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고른 뒤 출근 길에 나서는 것, 출퇴근 버스에서 매번 달라지는 기사님을 발견하는 것,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 점심시간에 나누는 매일 다르게 웃긴 스몰톡, 버스에서 읽은 책 중 마음에 드는 문장 모으기, 저녁을 먹으면서 보는 미드 프렌즈의 새로운 에피소드,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보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담은 인스타그램 피드, 하릴없이 손을 움직여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 머릿속에 흩어져 여기저기 떠다니는 단어들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루틴이 주는 안정성과 매일의 기쁨을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비법을 알려주자면 기억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어제는 어땠는지, 그리고 오늘은 어떻게 다른지. 작년 이맘때는 어땠는지, 그리고 올해 이맘때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매일 반복해도 좋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아보는 것이다.

 

*

 

루틴이 주는 순기능 '매일의 기쁨'에 대해서 써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사람들과 반복되는 하루로 지쳐가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매일의 기쁨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요.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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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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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숭아 그려주세요
    • 반복되는 루틴이 주는 안정성의 순가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홍비님의 글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네요..! 저는 최근 학업 , 알바의 반복되는 루틴에서 지루함과 탈피하고 싶다는 감정만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면 안정성이 주는 편안함 덕분에 소중한 감정을 잊고 불평만 해왔던 거 같아요.. 흑흑.. 덕분에 저를 둘러싼 환경과 루틴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봤네요. 날씨가 유난히 추워졌으니 옷 잘 여미고 부쩍 어려울 회사생활과 인턴 모두 힘내세요.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는 홍비님 멋지십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또 좋은 글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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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
    • 그녀의 일상 엿보기 넘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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