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봄을 맞은 윤희에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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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종종 열차 여행에 비유된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내 마음대로 내릴 수 없는 편도행 열차.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열차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윤희의 인생이 그랬다. 시린 추위를 견디며, 혹은 눈을 보면 떠오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영화 윤희에게(2019)는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시작한다. 열차에 탄 사람 대신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창밖을 가만히 비추는 오프닝 시퀀스는 홀로 외로이 감당하며 살아온 윤희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윤희는 외로운 사람이다. 정확히는 외로움을 자처한 사람이다.
영화는 윤희에게 있었던 일들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전남편의 도움에도, 딸과 함께 있을 때도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윤희는 평범한 삶 대신 자기 자신을 포기한 인물이다.
그런 윤희에게 쥰의 편지와 새봄의 여행 제안은 터닝 포인트가 된다. 쥰의 편지를 읽는다는 것, 쥰의 나라로 여행을 간다는 것, 그래서 쥰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 모두 평범히 살아야 하는 윤희가 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윤희는 처음 마주한 갈림길에서 방황한다. 가족이 강제로 쥐여 준 평범한 삶과 진짜 나의 삶 사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줄곧 내달리기만 하던 윤희는 일본 여행을 택하며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그때부터 윤희는 기존의 열차와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일본으로 향하는 열차 안의 모습은 오프닝 시퀀스와 대조된다. 의자에 앉아 있는 윤희와 새봄의 모습은 정해진 대로, 달리는 대로 주체성을 포기하고 살아온 윤희가 비로소 자신의 인생 열차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치우고 치워도 자꾸만 쌓이는 눈처럼 그리움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에게도 혼나지 않을 꿈속에서만 몰래 쥰을 되새기던 윤희는 과거에 멈춰 성장하지 못했다. 그런 윤희가 새봄과의 여행을 통해 조금씩 과거에서 벗어나게 된다.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_윤희의 편지
영화는 윤희와 쥰의 재회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윤희가 쥰(June)을 지나 비로소 새봄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윤희는 이제 자신을 부정하는 오빠에게 제 목소리를 내고, 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윤희의 인생 열차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오랜 외로움 끝에 맞이한 윤희의 봄을 가슴 깊이 응원한다.
[이다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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