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글 입력 2020.11.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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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내가 아는 찰스 부코스키는 시인이었다.

 

그것도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처럼 멋들어진 제목의 시집을 가진 시인. 그가 쓴 산문집이라니 짐작이 가질 않았다. 시에서는 산문 느낌이 났다면, 산문에서는 오히려 시 느낌이 풍겼다. 그다지 진지하지 않게 정곡을 찌르고 폐부를 꿰뚫었다.

 

 

 

책에서 본 영화 기법


 

 

내 고백을 신파로 만들 생각은 없다. 지금 난 다른 사람들처럼 웃는 걸 좋아한다. 아니, 돌이켜 보니 엎드려 누워서 부모님이 코를 골거나 섹스하는 소리를 들으며, ‘122센티미터의 남자 애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 것이 웃기다.

 

-154p

 

 

생각이 조각조각 파편 나 있다.

 

그의 의식은 ‘A – B – C – D’의 흐름이 아니라, ‘A – B – D – F’로 전개된다. 이런 대목은 분명 책인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쿨레쇼프 효과’를 글로 읽는 기분이었다.

 

쿨레쇼프 효과는 쇼트와 쇼트의 연결에 따라 새로운 감정을 불러낸다는 영화 개념이다. 어쩌면 분절적인 부코스키의 문장들이 활발한 전자처럼 부딪히며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 같았다.

 

이런 글은 애써 한 문장 한 문장 붙잡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정신 사납다고 읽기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넉을 넣고 읽다 보면 문장들이 충돌해 이미지를 소환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무엇을 읽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무엇을 보았는지는 분명하다.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여 감정의 무게로 전해온다.

 

 

 

예술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편견 1.

예술가 정신은 가난과 굶주림에서 나온다

 

부코스키라면 화를 내며 ‘아니다’고 외쳤을 것이다.


 

고통이 작가를 만드는가?

 

고통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빈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그보다 먼저다.

 

-60p


 

모든 예술가가 살아남을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누구나 하는 생각이고, 예술가가 금전적으로 살아남지 못하면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과 같아진다고 본다.

 

-192p

 


그가 정의한 예술가는 ‘예술로 밥 벌어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다. 밥 벌어 먹기 위해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우선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는 <스토리>, <포트폴리오>, <매트릭스> 등 다양한 잡지에 시, 소설, 에세이를 연재했다.

 

그는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며 글을 썼는데, 잦은 결근과 지각으로 해고 위기에 있을 때, 출판사에서는 매달 100달러를 줄 테니 전업으로 글을 써달라고 했다. 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고정수입을 유지하며 글을 써왔다.

 

 

편견 2.

헤밍웨이나 고흐가 그랬듯 대부분의 예술가는 알코올러버다.

 

부코스키는 진실이다.


 

"난 아직 술을 진탕 마시는 게 더 흥분돼." 내가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이런 걸로는 기별이 안 가. 금방 약발이 떨어져 다시 나를 흥분시켜야 하니까.”

 

-322p



에세이 제목 중엔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이나 ‘여섯 개들이 맥주팩을 마시며 시와 처절한 삶에 대해 끼적인 글’도 있다.

 

허구와 진실이 섞인 에세이라 올바른 판단이 어렵겠지만, 그가 열렬히 술을 즐긴 것은 사실일 거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로도 술집이 한 번씩은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방탕하게 술만 들이키진 않았을 것이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타자기를 두드리기는 어려우니까.

 

 

당신의 사랑은 번개를 맞아 부서진 에펠탑. 당신의 사랑은 언덕을 걷고 산을 오르고 러시아 사람을 달로 보내지.

떠났어?

 

마침내 찾아온 죽음은 지루하다. 가림막을 치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두 동시에 죽지 않고 한 명씩 조금씩 죽는다.

…(중략)…

난 늙었고, 그래서 당신은 편견으로 날 질책할 수 없다.

 

-73p

 

 

부코스키는 전지적 시점에서 사건을 꿰뚫는 듯하다. 마치 모든 일을 미리 경험한 듯이.

 

*

 

그는 평생 평론가들도 따라가기 힘든 양의 작품을 남겼다. 소설과 시집 약 60여 권. 예술을 정복하려는 듯 썼다. 글쓰기를 간이나 창자 같은 장기로 비유하며, 쓰지 않으면 병으로 죽을 것이라도 했다. 그가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예술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불운한 예술가였다. 그 스스로 행운을 가졌다면 나쁜 예술가가 된다고 했으니까. 불운했지만 글을 쓰는 매 순간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과 독자의 쾌감을 위해 글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의 작가라는 타이틀도 거머쥐며. 그는 사후가 아닌 생전에 인정받은 예술가다. 예술가라 불운하고 인정받아 행복했을 것이다.

 

적어도 부코스키 자신만은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라 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_도서이미지_도서출판잔.jpg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외국에세이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00쪽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10-8 (03840)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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