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101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 -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

글 입력 2020.11.2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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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짝사랑했다. 이과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는 침대 맡에서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시리즈를 읽어주곤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딸의 머리는 숫자보다는 글자에 조금 더 발달되어 있어서 문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의 과학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나는 별과 행성, 우주와 같은 천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과학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수학과 과학은 별개의 과목인데 왜 이과는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하는 거지?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문과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길로 과학과 ‘손절’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니 수학과 과학은 더욱 나와 엮일 일이 없어졌다. 교양 과목으로 뇌 과학에 관련된 수업을 한 번 들어본 후로 다시는 교양으로도 이과 과목은 듣지 않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고 나서는 과학과 더욱 멀어졌다. 가끔 TV나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는 과학 상식 영상을 보고 신기하다며 감탄하는 것 정도가 내 일상 속 과학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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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과학을 싫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앞서 말했듯 나는 과학을 좋아했으나 과학은 나를 썩 좋아하지 않은 탓에 우리의 관계가 진척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항상 과학과 친해지고픈 욕심이 있었다. 교양 과목으로 과학 강의를 신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무 오래 전에 놓아버린 탓에 이제는 가늠도 하기 힘든 배경지식 때문에 전문적인 과학 서적이나 다큐 프로그램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 발 한 발 더욱 더 과학과 멀어졌다.


그런 나에게도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는 편했다. 내가 찾던 바로 그런 책이라는 느낌이 한 번에 다가왔다. 가벼우면서도 진중하고, 수월하면서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그런 책. 과학과 관련된 101개의 길고 짧은 편지글을 모은 이 책은 그 어떤 과학 서적보다 진솔하고 솔직하며 방대하다. 종교, 철학, 인문학, 그리고 삶 전반을 과학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저자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어, 과학책이라기보다는 삶을 공부하는 교과서와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우주적 관점은 겸허하다.

우주적 관점은 같은 생각 안에서 크고 작은 것들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주적 관점은 지구를 티끌처럼 보이게 하지만, 이 티끌은 소중한 티끌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집이다.

우주적 관점은 지구상의 생명체와 우리의 유전적 연대의식뿐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우주 안의 모든 생명체와의 화학적 연대의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더 나아가 우주 자체와 우리의 원자적 연대의식까지도.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이다.

 

(184~185쪽)


 

호모사피엔스의 게놈은 수십조 개 이상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이 말은 수십조 명 이상의 고유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고,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그 수십조 명 중에서 극히 일부인, 인생을 살았던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입니다.

 

(197쪽)

 

 

흔히들 우주와 과학을 공부하면 인간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의 하찮음에 집중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우주의 먼지이며 지구는 광활한 우주 가운데 티끌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유일한 티끌이라는 관점이 새삼스레 희망적이었다.

 

인간은 어차피 죽게 될 미물이라는 비관적인 관점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호오와 별개로 이따금씩 속에서 이런 생각이 비집고 나올 때가 있다. 나의 존재가 하염없이 작게 느껴질 때, 나 하나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무기력에 빠질 때를 누구나 겪은 적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 글의 메시지가 와 닿았다. 작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담담하지만 힘 있는 메시지였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101가지의 편지 답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지의 발신인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답신의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글부터 초등학생의 재기발랄한 질문이 담긴 글까지 다양한데, 그중 가장 유쾌했던 글은 명왕성의 태양계 퇴출 후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의 편지였다.

 

 

명왕성이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면 명왕성을 뭐라고 불러요? 아저씨가 그걸 다시 행성으로 만들어주면 과학 교과서가 다 맞게 되잖아요. 명왕성에도 사람이 살아요? 만일 거기에 사람이 살면 그 사람들은 사라지게 되잖아요. (...) 어떤 사람들은 명왕성을 좋아해요. 만일 그 행성이 없어지면 그 사람들은 좋아하는 행성을 잃어버리게 돼요. 제발 답장을 해주세요. 하지만 필기체로는 쓰지 말아주세요. 전 필기체를 못 읽어요.

 

(112쪽)

 

 

저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 탓에 저자는 다양한 비판과 비난에 맞닥뜨려야 했다고 밝혔는데,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비판보다도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편지가 더욱 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이의 순진함과 따뜻함에 있다. 명왕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행성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은 장난이 아닌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 편지에 대한 저자의 가상 답신(수백 장의 편지에 떠밀려 아쉽게도 답장을 보내지는 못했다고 한다.)도 굉장히 유쾌하고 따뜻했다.

 

 

명왕성이 누군가가 좋아하는 행성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난쟁이별이 되는 거예요. 해로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 아래에 내 필기체 서명을 써볼게요. 이건 닐 D. 타이슨이라고 읽으면 돼요. 대략 이 정도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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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책의 매력은 ‘편지’에 있다. 과학과 큰 연고가 없는 일반인의 편지가 대다수이기에 오히려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인문학과 과학은 대척점에 있는 학문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사실 과학도 우리의 삶과 우주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철학이나 인문학과 충분히 유사한 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이 드디어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온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다. 혹여 과학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면, 나와 하등 관련 없는 허무맹랑한 학문처럼 느껴진다면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를 권한다.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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