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망 속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내가 죽던 날 [영화]

글 입력 2020.11.2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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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내가 죽던 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민이라고는 열댓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섬에서 지내고 있던 고등학생 세진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은 것은 유서 한 장과 절벽에서 발견된 세진의 운동화, 그리고 CCTV 속 세진의 두 눈에 가득한 분노와 절망뿐이다.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태풍에 휩쓸려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모두는 세진의 실종을 하루빨리 자살로 처리하기를 원한다. 큰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 되어버린 세진의 존재는 모두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가능한 빨리 마무리짓는 일을, 이혼 재판을 앞두고 일을 쉬던 형사인 현수가 맡게 된다. 보다 수월하게 복직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현수는 쉽게 사건을 종결하지 못한다. 세진이 남긴 흔적에서 지독한 쓸쓸함과, 그만큼 이 아이가 어떻게든 살아가 보겠다는 발버둥을 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현수 자신이 그런 것처럼.

 

영화 <내가 죽던 날>의 서사를 견인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공감’이다. 세 사람은 모두 남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것처럼 떠안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똑 닮았다.

 

현수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한 불이익은 되려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순천댁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조카를 돌보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공감은 '연대'가 되어 변화를 이끌어낸다. 현수와 순천댁은 각각 세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진을 위해 움직이며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특히 현수에게 세진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남편은 바람을 폈고, ‘꽤 괜찮았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시간을 간신히 살아내던 현수는 공무 집행 중 교통사고를 당해 일마저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현수는 자해를 한다. 누가 봐도 삶을 끝내고 싶어하는 행동이지만, 현수는 살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랬던 거’라고.

 

현수는 세진이 섬에서 지냈던 공간을 찬찬히 살펴보며, 세진의 얼굴이 담긴 CCTV 화면을 들여다보며 세진에게서 그 때의 자신을 떠올린다. 당장이라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데 그 누구도 나를 구하러 와주지 않을 때의 절망, 그렇지만 그만큼 강렬한 삶을 향한 열망을 현수는 읽어내고, 세진의 모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세진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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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수가 밝혀낸 진실 끝에는 순천댁이 있다. 순천댁은 세진이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유일하게 세진에게 손을 내밀어 꽉 잡고 끝까지 놓지 않은 존재다. 그리고 세진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조카의 이름이 적힌 신분증을 건네며 순천댁은 말한다. “아무도 안 구해줘. 네가 너를 구해야지. 인생이 네 생각보다 길어.” 그렇지만 순천댁은 세진을 구한다. 그리고 현수는 그렇게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낸 세진을 보며 스스로 다시금 삶을 선택한다. 그렇게 세진은 현수를 구한다.

 

순천댁에게 새 삶을 건네받은 순간 세진은 죽고, 해질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역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현수와 조우한다. 두 사람의 새로운 삶은 통쾌하지는 못해도 홀가분하다.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관객의 마음 역시 그 순간 큰 짐을 덜어낸 듯 가벼워진다.

 

그렇지만 되려 눈물이 가장 많이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개인적으로는 누구의 손길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져버린 한 사람을 알고 있기에 가장 가슴이 아픈 장면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순천댁 같은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 아이에게서는 더 이상 화면 가득히 빛나는 세진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내내 그 장면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랬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분명히, 위로와 치유가 되어주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에게, 당신은 충분히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며 살고 있는지 묻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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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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