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곱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세상의 모든 온실 속의 화초들을 대표하여
글 입력 2020.11.2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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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백작 부인이 아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곱게 자랐다는 말에 면역이 없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눈치 없게 행동했나?' '사회생활을 잘 못 하나?' 같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부모님의 진심 어린 애정과 보호가 훗날 나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어린 시절 든든했던 나의 울타리는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순간 구속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식은 부모님을 빨리 실망하게 할수록 편하다'라고 말한다. 한때는 공감했던 적도 있지만, 나는 이를 '실망'이라는 단편적인 단어가 아닌 '성장통'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자식은 언젠가 자라서 부모가 되고, 그들이 또 다른 자식을 낳기까지는 분명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는 나의 자녀만큼은 그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부모의 성장통이다.

 

내 자식이 영원히 마주하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해왔던 세상과 부딪히고 무너지고 그런데도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고통스럽다.


 

험한 세상 너 사는 이유, 이 모든 걸 알고 싶다면 너 혼자 여행 떠나야만 해. 사랑이란 구속하지 않는 것, 사랑은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때로는 아픔도 감수해야 해. 사랑은 눈물, 그것이 사랑.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엄격한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님을 실망하게 한다. 그리고 이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그 일탈은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데미안에서 '알을 깬다'라고 표현했던 성장의 과정은 우리말로 하자면 '온실 속의 화초가 울타리 밖으로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

 

때로는 온전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던 부모님의 눈이 그리워지는 날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성장과 맞바꾼 대가이다.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에게 상처를 입힌다. 괴롭지만 처음으로 맞이한 세상은 소중했던 것들을 아주 잠시 잊게 만든다.

 

 

 

저린 다릴 부여잡고 난 슬피도 울었어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혁오 밴드가 부른 '멋진 헛간'이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는 가사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흥겨운 컨트리 음악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장담하며 떠나왔는데, 막상 마주한 세상은 너무 넓고도 험했다. 처음에는 흔히들 말하는 청춘의 패기로 아파도 견뎌보고 무서워도 참아보지만, 이기적이게도 오랜 날들이 그리워진다.

 

                

시간은 또 금세 흘러 기댈 품을 떠나서 / 못 찾을 외딴 곳에 멋진 헛간을 지었지 / 발 디딜 틈도 없이 나름 가득 채웠는데 / 어느 날 문을 여니 이런 도둑이 들었네 / oh Holy Mama Mama Papa 내 두 눈으로 봤어요 / 세차게 담았는데 다 텅 비어 있네요 / Be Born Again gain gain gain and gain gain 너무 늦었나 봐요 / 다시 돌아간다 해도 누가 날 받아 줄라나요 Hey Hey Hey / 저린 다릴 부여잡고 난 슬피도 울었어

 


지난날 내가 상처 입혔던 부모님과 호기롭게 내뱉은 무모한 약속들이 없는 곳,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자신을 잠식한다. 별안간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은 두려움에 뒤늦게 방황한다. 분명 열심히 달려왔건만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공간에, 없는 도둑을 만들어 책임감을 덜어본다.

 

그렇게 후회하고 떠돌다 보면 언젠가부터 가슴 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어린 날의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는지, 또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울타리가 되었는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더 자책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때쯤 깨닫는다. 지난날 내가 구속이라고 느꼈던 애정과 사랑은 사실 내가 무너지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나를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의 모습을 온전히 잃어버리더라도, 그 기억들은 오직 나만이 꺼내어 볼 수 있는 한 조각의 희망이었다.

 

살아가면서 외로울 때마다 나는 하나씩 그 기억을 되새겨 보고는 한다. 과거의 어느 날, 실수하고 우는 나를 달래주던 엄마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마다 항상 해결책을 가져다 주던 아빠, 그 외에 행복했던 순간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자랄 수 있게 해주었던 울타리 안의 시간.

 

그것은 내 마음속의 등대였다.

 

 

 

나보다 더 나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특정한 순간들에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 너의 삶을 살아라!

 


가수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뮤직비디오는 딸이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엄마와 보낸 시간들이 이야기처럼 전개된다.

 

공부하라고 하는 엄마와 싫다는 딸, 뜻대로 자라지 않는 딸에게 세상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고 하는 엄마. 웨딩드레스를 입고 엄마와 포옹한 뒤 딸은 돌아서고 엄마는 쓸쓸히 뒤돌아 앉는다.

 

언젠가 책에서 딸이 엄마에게 연민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었다. 행복한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웃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그리고 걱정이라고 보았다. 더 나은 엄마가 되어달라는 그 말속에는 자식이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내 자식이 또 다른 누군가의 울타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하고 행복하며 가슴 아픈 일일까.

 

 

 

온실 속의 화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자식일 수도 있고, 자식이었던 경험이 있는 부모일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을 대표하여,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나를 온실 속의 화초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디터_허향기.jpg

 

 



[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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