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반 고흐라는 '사람'을 조명한 영화, 러빙 빈센트 [영화]

Le monde vous aime, Van Gogh 세상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반 고흐
글 입력 2020.11.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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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응노 미술관에서 그림이 영상으로 살아 숨쉬는 구글아트 전시를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역동적인 움직임,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이미지 변화, 리듬감 있는 노래가 어우러져 작품을 직접적으로 머릿속에 옮겨 놓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글아트로 재구성된 작품 영상들은 작가의 의도와 장점들을 극대화해, 친절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명화의 힘을 증폭시키는 기술과 영상의 힘 또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에서 대전 이응노 구글아트 전시에서 경험했던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컷 한 컷 모두는 예술가들이 고흐 화풍에 따라 그린 그림들로, 고흐 명화들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그의 생애와 철학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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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흐가 죽은 이후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우체국장의 아들 아르망은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직접 전해주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르망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미술상을 만나 테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서 가장 눈에 띄었고, 고흐의 의사이기도 했던 가셰를 찾아 가라는 조언을 듣게 됩니다.

 

가셰 의사를 만나려면 며칠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머무는 기간 동안 그는 고흐를 알았던 사람들, 고흐의 흔적들과 행적들을 쫓아가며 그의 죽음과 삶을 파헤칩니다. 비밀을 지닌 사람들과 추궁하는 아르망을 보며, 처음에는 추리극, 스릴러 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범인을 찾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보다는 고흐의 삶의 끝자락의 사건들을 풀어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합니다.

 

타살 가능성이 높은 고흐의 ‘자살 사건’ 은 쓸쓸함, 외로움, 안타까움 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집니다. 고흐의 죽음은 여러 가지 악재들이 겹쳐서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무리에 접어들면 접어 들수록, 그의 마지막은 전처럼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아마 별 것 아닐 지 몰라. 별을 볼 때면 언제나 꿈꾸게 돼. 난 스스로 말하지. 왜 우린 창공의 불꽃에 접근할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걸까? 늙어서 편안히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게 되는 걸까? 늦었으니까 자러 가야 겠어. 잘 자고 행운을 빌게. 악수를 보내며, 사랑하는 빈센트가

 

 

영화는 고흐의 편지 일부분을 되뇌이며 끝이 납니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보이는 몇 개 안되는 별 중에, 불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수많은 별들 중에 반 고흐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잘 자고 행운을 빌게.’ 하는 이 단순한 인사말에서 고흐가 힘내라는 응원의 말을 해 주는 듯 합니다.

 

고흐의 생애 고흐의 삶은, 항상 비틀거렸습니다. 그는 안전한 평지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벼랑 끝에 매달린 위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고흐는 유년기 때부터 가족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첫째이긴 했지만 첫 자식은 아니었습니다. 빈센트라는 사산된 아이가 있었고, 항상 고흐는 자신을 빈센트의 그림자처럼,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남들과 융화하지 못하던 그를 잡아주던 끈은 테오였습니다. 테오는 빈센트를 지지했고, 빈센트는 테오에게 의존했습니다. 빈센트에게 필요한 물감과 캔버스, 생활비는 많았지만, 그는 생애 그렸던 2000여 점의 그림 중 오직 1그림만 그가 생존했을 때 팔렸죠. 고흐는 살아가는 내내, 이웃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경제적인 궁핍을 견뎌야 했습니다. 바닥에 가까운 그의 생은, 유명세를 타 화려한 미술관에 전시되고, 어마어마한 고가에 거래되는 그의 그림들과 극명히 대조됩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말은 가셰의 딸이 톡 쏘아 말했던 이 한 구절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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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사람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한 개인을 그저 단편적인 대상, 조각난 경험들과 정보들로 판단합니다. 인식의 순간, 평가가 이루어 지는 것이므로 평가 자체는 선악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평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전파하면서 잘못된 소문과 편견을 만들고, 그를 인간이 아닌,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대중매체, 저널리즘입니다. 프루스트는 신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신문 읽기라고 불리는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는 지난 24시간 동안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불행과 재앙들, 5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전투, 살인, 파업, 파산, 화재, 독살, 자살, 이혼, 정치인들과 배우들의 잔인한 감정을, 그런 것들에 신경도 쓰지 않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흥분되고 긴장되는 아침의 오락거리로 변형시키며, 이것을 카페오레 몇 모금과 대단히 잘 어울리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알랭 드 보통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신문형식으로 서술하며, 풍자적으로 문제점을 일깨워 줍니다.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저는 프루스트와 알랭 드 보통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언론은 가십거리와 구경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정확한 정보보다는 어느 한 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보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하죠. 본연의 목적보다, 이익, 돈을 얻기 위한 활동에 더 치중합니다. 그 속에서 한 개인의 감정과 생각은 자극적, 충격적인 몇 개의 단어들로 단순하게 축약되죠. 그런 기사들을 볼 때면, 기사 속에 나오는 조각조각 난 실제의 인물들이 안쓰럽습니다. 연예인들, 큰 사건에 휘말린 일반인들, 혹은 권력에서 밀려난 정치인들까지. 그들은 더 이상 타인의 눈에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편향된 저널리즘에 싫증을 느끼던 저에게, 이 영화의 줄거리와 연출방식은 하나의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과 삶, 그의 생각과 신념 등 그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려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관객의 입장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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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내내 눈이 호강했습니다. 영화관에서 볼 기회를 놓친 것이 서운할 정도였죠. 세계 최초로 손으로 그린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125명의 화가들이 6만장이 넘는 유화 프레임을 제작해 만들었습니다. 유화를 직접 제작해야 하는 만큼, 실 제작 기간이 5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고흐의 명화들을 재현해 그의 명작들을 새롭게 알고, 또 복기할 수 있었습니다.

 

아르망이 고흐의 흔적을 추적하는 설정을 제외하고, 아를 사람들의 고흐 추방 청원, 고흐와 가셰, 마르게리트와의 관계, 고흐 사망 몇 주 전의 말다툼, 동네 불량배들의 괴롭힘 등 영화의 스토리는 모두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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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를 보고서, 마음이 편안해 지고, 따스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부드러운 곡선, 보색의 대비로 밝음,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의 화풍과 닮았습니다. 빈센트를 사랑하시는 분들께, 빈센트를 알고 싶어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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